‘엠퍼러스 클럽’은 비슷한 배경과 소재를 다룬 ‘죽은 시인의 사회’와 대척점에 있는 영화다. 키팅이 인생의 기쁨을 놓치지 말라고 ‘카르페 디엠’을 속삭여주는 동안 헌더트는 “바보는 평생 변하지 않는다”며 학업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엄하게 나무란다. 사진 IMDB
‘엠퍼러스 클럽’은 비슷한 배경과 소재를 다룬 ‘죽은 시인의 사회’와 대척점에 있는 영화다. 키팅이 인생의 기쁨을 놓치지 말라고 ‘카르페 디엠’을 속삭여주는 동안 헌더트는 “바보는 평생 변하지 않는다”며 학업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엄하게 나무란다. 사진 IMDB

“자네들은 어떤 업적을 남길 텐가? 역사는 자네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미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헌더트 선생님의 역사수업을 처음 듣는 신입생들은 질문에 답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대신 교실을 에워싼 채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저와 그의 후계자였던 아우구스투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흉상과 그림들을 빙 둘러본다. 그들의 눈빛에 압도되면서도 역사에 이름이 남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대를 초월하여 불멸하는 인간의 업적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서 그리스·로마 역사에 귀를 기울인다. 지식에 대한 자부심, 학문에 대한 사랑, 무엇보다 과거의 지혜를 미래 세대에 전해주려는 열정으로 선생님의 가슴도 뜨겁다.

‘엠퍼러스 클럽’은 비슷한 배경과 소재를 다룬 ‘죽은 시인의 사회’와 대척점에 있는 영화이다. “지금 당장 너만의 길을 찾아라. 너만의 걸음걸이와 너만의 페이스로 어느 방향이든, 네가 원하는 대로 걸어라.” 역사 속 시인들의 자유로운 사색을 뿌리 삼아 전통에 도전하라고 가르쳤던 키팅 선생님과 달리 헌더트 선생님은 교정의 잔디밭을 뛰어가던 학생을 불러 세우고는 “사람이 지나가도록 만든 길이 보도라네. 자네는 선배들이 앞서 걸었던 길을 따라가도록 하게”라며 훈계한다. 키팅이 인생의 기쁨을 놓치지 말라고 ‘카르페 디엠’을 속삭여주는 동안 헌더트는 “바보는 평생 변하지 않는다”며 학업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엄하게 나무란다.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일으킨 사건과 연대를 외우게 하는 것도 모자라 훗날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면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영화 속 선생님이 현실에서 인기 있었을 리 없다. 2002년 개봉 당시 미국에서도 대단한 흥행성적을 거두지는 못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교육현장에 자유의 바람이 몰아치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색다른 재미와 의미를 찾아보는 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역사수업의 열기가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상원의원의 아들 세드윅이 전학을 온다. 그는 삐딱하게 앉고, 엉뚱하게 대답하고, 우스갯소리로 무안한 순간을 모면하려고 한다. 아이들은 세드윅의 언행과 반항적인 태도에 동화되고, 진지하던 수업 분위기는 깨져버리고 만다. 헌더트는 학부모 면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보려 하지만 상원의원의 독선적이고도 권위적인 태도를 접한 뒤 세드윅이 느꼈을 압박감과 외로움을 이해하게 된다.

헌더트는 먼저 다가가 신뢰를 보여준다. 자신감을 키워주고자 학교의 전통 행사인 역사 퀴즈대회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마음이 통했을까. 태도가 신중해지고 공부에도 의욕을 보이는 세드윅의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 그런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헌더트는 갈등 끝에 3등과 4등의 명단을 바꿔 세드윅을 대회 결승전에 참가시킨다. 자격을 갖추고도 기회를 빼앗긴 마틴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비뚤어진 영혼을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이야, 하고 헌더트는 자신을 합리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애정과 노력을 조롱이라도 하듯, 학부모와 전교생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세드윅은 부정행위로 답을 맞힌다. 사실을 눈치챈 헌더트는 크게 실망한다.

25년 후, 헌더트는 대기업의 CEO가 된 세드윅의 초대를 받는다. 그가 모교에 거액의 기부를 하는 조건으로 역사 퀴즈대회를 다시 열겠다고 한 것이다. 세드윅 소유의 고급 리조트에서 헌더트는 제자들과 반갑게 재회한다.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동반한 세드윅도 옛 스승을 의젓하게 반긴다.

사람은 변할까. 헌더트는 궁금하다. 오래 전 세드윅에게 주었던 기회와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대회에 참여한 세드윅이 그때처럼 아니, 더 교활한 방법과 더 뻔뻔해진 얼굴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의 의문은 이내 풀린다. 세드윅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원의원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정치 데뷔 선언을 위해 준비된 쇼에 친구들과 스승을 들러리로 세운 것이다.

화장실에서 세드윅을 마주한 헌더트는 부정 사실을 확인하고 “언젠가는 너 자신을 불쌍하게 느끼게 될 때가 올 거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드윅은 늙은 여우처럼 자신의 부정을 간파하여 또 한 번 승리의 월계관을 빼앗은 옛 스승이 못마땅할 뿐이다. 더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속을 환히 드러내며 그는 비아냥거린다.

“도덕이나 정직함 따위를 누가 신경 쓰죠? 그런 선생님은 내세울 게 뭐 하나라도 있나요?”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헌더트의 완전한 패배였다. 35년간 역사를 가르쳐온 그에겐 세상이 우러를 그 어떤 감투나 업적도 없었다. 더구나 한때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애정을 주었던 제자는 겉만 번지르르할 뿐 양심도 없는 후레자식이 되어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세드윅은 미국 최고 기업의 CEO이자 아버지의 후광을 얻어 당선이 확실한 미래의 상원의원이었다. 어느 누가 그의 거짓과 위선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설사 모든 게 밝혀진다 해도 누가 신경이나 쓴단 말인가. 헌더트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참담했다.

그 순간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화장실 한쪽 칸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나타난 얼굴은 놀랍게도 열 살 남짓한 사내아이, 세드윅의 아들이었다. 아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상처 입은 얼굴로 그러나 경멸하듯 싸늘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쏘아본 뒤 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세드윅의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는 순간이었다.

세드윅은 그의 아버지처럼 경영인으로, 정치인으로 성공할 것이다. 어쩌면 역사에 이름과 업적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자식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세간의 명성이 무슨 소용일까. 현실적으로 이런 의문은 한가하고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찌르는 듯한 아이의 눈빛은 작은 물음표가 되어 관객의 마음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산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고대의 지혜가 담긴 명언을 듣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학문을 배우는 기쁨에 대해서, 양심과 정직에 대해서, 또는 키팅 선생님과 헌더트 선생님의 교육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가정의 달 5월, 행복하고 멋진 선물이 될 것 같다.

‘한여름 밤의 꿈’ ‘어느 멋진 날’을 연출했던 마이클 호프만 감독의 품격 있는 작품이다. 헌더트 역을 맡은 케빈 클라인의 지적 카리스마는 풋풋한 소년들 속에서도 눈이 부시다. 비록 세드윅에겐 실패했지만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장면과 명예로운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빼앗겼던 마틴에게 뒤늦은 용서를 구하는 장면, 그런 스승을 이해하며 더 깊은 신뢰를 보내준 제자를 바라보며 헌더트의 눈시울이 젖어드는 마지막 장면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