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하다 보면 아기 자세로 시작해서 시체 자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수련할 때마다 삶의 축소판을 살아내는 기분이 든다.
요가를 하다 보면 아기 자세로 시작해서 시체 자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수련할 때마다 삶의 축소판을 살아내는 기분이 든다.

수업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요가를 하다 보면 아기 자세로 시작해서 시체 자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수련할 때마다 삶의 축소판을 살아내는 기분이 든다. 태양에 경배(태양 경배 자세)하고 달의 기울임(반달 자세)을 함께하고 내 몸을 뒤집어서(물구나무서기) 세계가 뒤바뀌는 깨달음을 얻고, 소가 되었다가(소 자세) 고양이가 되었다가(고양이 자세) 까마귀가 되었다가(까마귀 자세) 세상의 숱한 생명을 함께 살고 공명해 낸다. 그리고 마지막엔 시체가 된다.

시체가 됨으로써 얻는 것은 평온이다. 놀랍게도 평온이다. 고통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비로소 찾아드는 평온함에 대한 감사와 위안이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뜨고 일어나 인사하며(‘나마스테’라고 인사를 보내며 요가 수업을 마친다) 새로이 삶을 시작한다.

인간의 하루 역시 그렇다. 눈을 떠서 감사히 하루를 시작하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면 시체처럼 평온하게, 잠이라는 작은 죽음을 실천한다. 이와 같은 삶의 리듬은 우리에게 생을 향한 겸허를 배우게 한다. 살면 살수록 삶의 동작은 단순하고 정갈해야 함을, 감사란 그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과 명상을 쏟을 때 얻어짐을, 그것은 결국 나를 넘어서 세계와 통합될 때 얻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과 경험에 감사하게 된다.

기억은 마음에만 남는 것이 아니다. 몸에도 남는다. 성급한 삶과 곤두선 정신이 굽은 목과 기울어진 어깨에 각인돼 있다. 요가를 하다 보면 몸에 밴 나쁜 기억을 치유하는 길고 오랜 과정에 임하는 느낌이 든다. 이미 굽은 등은 펼쳐짐을 방해하고 굽은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더 편안하게 느끼지만, 하나씩 쌓아올리듯 수련을 지속하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도약의 기쁨을 안겨준다. 자유란 얼마나 가뿐하고 평온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한다.

어릴 적 나는 유연하고 가뿐히 뛰어오르는 아이였다. 물방울이 튀듯이 사뿐사뿐 고무줄을 뛸 줄 알았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물구나무를 섰다. 어른이 되면서 점차 몸을 정신과 정신이 세운 목표의 수단으로 여기는 삶을 살았다. 요가를 시작하면서, 몸을 몸 그대로 섬세히 느끼고 존중하고 살아나게 하는 과정을 밟아간다.

일주일에 두세 번에 불과하지만, 넉 달째 꾸준히 하다 보니 변화가 보인다. 그전에도 요가를 하긴 했지만, 한두 달 하다가 그만두는 식을 반복할 뿐이었다. 성장의 열쇠는 꾸준함이란 걸 요새 부쩍 깨닫고 있다. 요가를 통해 몸에 새로운 기억을 불어넣는 느낌이다. 어쩌면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렵지만 꾸준하게 몸의 나쁜 기억을 다스리고 치유하다 보면 몸을 통해 이르게 되는 온전한 평온이 있다. 몸과 마음은 하나였음을, 다시 하나 되어 자유롭기를 기억하고 따르는 고요한 평온이다.

요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평화로운 상념이 깊게, 또 유연하게 흐른다. 삶 전체를 조망하는 일이 조금 더 수월하고 넉넉해진다. 요새 들어 부쩍, 행복과 불행의 총합이 대체로 비슷하게 흘러가는 삶이라는 생각을 한다. 카스텔라는 카스텔라의, 피자 도우는 피자 도우만의 배합이 있듯(약간의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카스텔라형 인간은 다른 카스텔라형 인간을 보면 알아보곤 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배합을 타고나는 게 아닌가 싶다.

삶의 기운이 바뀌고 의지로 환경을 바꾸어 그 배합에 변화를 주는 일도 있지만, 어떤 경향 같은 것이 사람을 자꾸 익숙한 배합으로 이끄는 건 아닌가 싶다. 이걸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삶을 생각한다. 예언을 바탕으로 그의 삶을 해석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만일 나의 삶에 일종의 신탁이 내려졌다면, 그건 무엇일까. 그냥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축축한 생각이 많은 날의 상념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한고비를 넘기고 나면 꽤나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더 한참을 헤맸다. 선택한 방황이긴 하다. 적당히 넘어가서 다시 기존의 삶으로 편입되듯 살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기존의 배합과 정량을 뒤바꾸는 ‘화학적 변질’이 일어났다. 당장의 나는 희망과 부작용의 반응으로 널뛰는 일상을 살고 있다. 언제쯤 안정이 올까. 그 안정은 좀 더 넓고 자유롭고 새롭게 거듭난 세상 속의 안정일까? 예감은 나쁘지 않다.


언젠간 반드시 드러나는 삶의 문제들

힘들 때마다 사랑하는 상담 선생님의 목소리를 재생해서 귀 기울인다. “그전까지는 손에 1만원을 쥐고 그걸 실컷 쓰는 행복이었을 뿐이에요. 지금은 행복의 곳간을 늘리는 과정에 있는 거고요.” 통 큰 행복을 위해 나는 열심히 부딪치고 실패하고 방황하는 중이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서른이 되기 전 유방암을 앓은, 나보다 몇 살 어린 친구가 있다. 힘겨운 투병 기간을 맑고 경쾌하게 보낸 그녀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가까웠던 한 친구를 유방암으로 잃었던 경험이 그보다 몇 년 전에 있었기에, 내게 있어 그녀의 생존은 그 자체로 눈부시고 찬란해 보였다.

하지만 안으로는 지난했을 투병 기간이 지난 뒤 그 시간을 함께했던 애인과 이별한 그녀가 남긴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유아원을 다니기 시작한 첫째 딸과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둘째 딸을 데리고 힘겹게, 그러나 경쾌함을 과장하며 오후를 보내는 중이었다. 둘째를 놀이터 그네에 태우고 밀어주며 눈으로는 첫째 딸의 움직임을 살피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그녀는 애인과 헤어진 뒤 헤매듯 보낸 몇 달간의 시간을 덤덤히 들려줬다. 그녀의 고백은 찬찬히 듣다 보니, 실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 이후의 삶에 관한 거였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에 지리멸렬한 삶의 갈등을 유보하는 게 쉬웠다. 전투태세에 함께 들어간 연인의 사랑은 난공불락 요새와도 같았다. 관계의 갈등은 죽음 앞에서 사소해졌고 사랑은 거대하고 광활한 품 안에서 그들을 뛰어놀게 했다.

병이 사라지자 그들은 어처구니없이도,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들처럼 무력해졌다. 생존 이후에 찾아오리라 꿈꾸었던 낙원은 오지 않고 대신 잊고 있던 지옥이 장막을 거두고 눈앞에 펼쳐졌다. 그들의 관계는 그녀가 완치 판정을 받고 반년 만에 종말을 고했다.

삶은 생사를 다투는 갈등 앞에서도 삶 자체가 소멸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문제를 은근슬쩍 흘려보내지 않는다. 대면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그 질긴 생명력으로 언젠가는 그 존재를 과시한다. 잊힌 듯 넘어가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화려하게 귀환한다.

삶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를 두려워하며, 미지의 허무함에 지금 여기를 달려갈 때는 잊었던 것이, 생존 뒤에 무엇이 남았는가를 더듬는 순간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녀는 내게 “사랑 뒤에 무엇이 남았을까”라고 물었다. “사랑 뒤에 무엇이 남았는지 물을 때는 아직 사랑이 살아있을 때야. 아직 남은 걸 물을 때가 아닌 거지.” 나는 답했다.

막연히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갈지라도 한 사람의 삶에는 단 하나의 사랑이 있는 건 아닐까. 무수히 쪼개진 경험과 수련을 거듭하면서도, 하나의 삶을 살고 하나의 수행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 이서희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 ESEC 졸업,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