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의 초상화.
버트런드 러셀의 초상화.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지음|서상복 옮김
1056쪽|3만2000원

“만약 당신이 홀로 무인도에 가게 될 때 책 3권을 들고 가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르겠습니까?”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프랑스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프랑스 언론이 작가 인터뷰를 할 때 곧잘 던지는 질문이었다. 거기에 응한 답변을 모아 한 권의 책이 나오기도 했다.

파묵은 잠시 생각하더니,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갖고 가야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위대한 서양 문학’이란 이유로 꼽았다. 그는 이어서 “무인도에서는 지겨울 테니, 심심치 않도록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한 질을 갖고 가겠다”며 미소 지었다. 백과사전 한 질은 이미 권수로는 제한된 범위를 넘어선 것. 그는 내친김에 아랍 구비문학의 고전 ‘천일야화’도 골랐다.

그는 다시 서유럽으로 눈을 돌렸다.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갖고 가겠다. 서양 사상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책이다. 나는 철학을 일상생활에 적용해 소설로 쓰는 걸 좋아한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내 소설 창작에 자극을 준다.”

러셀은 영국 철학자이자 에세이스트였고, 반핵평화 운동에 앞장선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수학과 논리학 연구뿐 아니라 인생의 지혜를 다룬 수필집을 여럿 냈고, 단편소설집도 출간했다. 그는 방대한 저술 활동을 펼친 덕분에 1950년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인본주의적 이상과 사상의 자유를 드높인 저작 활동을 인정한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러셀의 다채로운 저작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을 꼽으라면, ‘서양철학사(1945년 출간)’가 으뜸이다. 일반 독자를 겨냥해 서양철학사 강의에 재치와 유머를 첨가한 책이지만, 20세기 서양철학의 거목이 정리한 철학사라는 측면에서 철학 전공자의 필독서로 꼽혀왔다.

그 유명한 ‘서양철학사’ 한국어판이 최근 개정판을 내놓았다. 을유문화사가 2009년 독점계약을 해 두꺼운 양장본으로 출간한 후 10주년을 맞아 전면 개정판을 냈다. 역자가 1년 넘게 양장본의 일부 오역과 비문을 바로잡고 문장도 요즘 언어 감각에 맞게 다듬었다고 한다. 여전히 두껍지만, 양장본보다 무게가 덜 나가는 포켓북 형식으로 나왔다.

이 책은 2500여 년 서양철학사를 크게 고대 철학, 가톨릭 철학, 근현대 철학으로 나누어 풀이했다. 러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다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중략) 인간은 천문학자의 눈에 보이듯 작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행성 위로 무력하게 기어다니는, 불순물이 섞인 탄소와 물로 구성된 조그마한 덩어리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으면 ‘햄릿’에 등장하는 고뇌에 찬 존재인가? 고귀한 삶의 방식과 비천한 삶의 방식이 따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모든 삶의 방식이 헛된 것에 불과한가?”

이어서 러셀은 고귀한 삶이란 무엇인가, 지혜란 최고로 세련되게 포장된 어리석음에 불과한가 등의 질문을 던진 뒤 “정답이 없더라도 앞서 열거한 질문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일”이라고 그 스스로 답했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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