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ALC) 참석차 서울에 온 슈뢰더 전 총리를 만났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ALC) 참석차 서울에 온 슈뢰더 전 총리를 만났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독일 사회민주당의 원로 정치인이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멘토였던 애르하르트 에플러는 슈뢰더를 ‘정치적 동물’이라고 불렀다. 2018년 10월, 통역사 김소연씨와 결혼한 그를 한국인들은 ‘슈 서방’으로 부른다.

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제10회 아시아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서울에 온 슈뢰더 전 총리를 만났다. 자석처럼 붙어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 김씨와 함께였다. 슈뢰더는 75세라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에너제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질문마다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정무적 감각을 유연하게 발휘했다.


최근에 ‘지적인 낙관주의자’라는 책을 낸 옌스 바이드너라는 독일 철학자가 “자신이 아는 가장 우아한 낙관주의자는 슈뢰더 전 총리”라고 내게 말했다. 당신은 낙관주의자인가.
“(미소 지으며) 맞다. 나는 낙관주의자다. 독일 전 대통령인 요하네스 라우가 한 말이 있다. ‘정치인은 성공과 사랑에 빠져야지, 실패와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

당신의 낙관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행복과 독일의 번영에 영향을 미쳤나.
“낙관주의자인 나는 김소연과 결혼하면서 사랑에 성공했다(슈뢰더는 75세, 김씨는 48세로 부부는 27세의 나이 차를 극복했다). 아내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남편은 시시포스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시시포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돌을 굴리며 언덕을 오른다. 돌이 정상에서 굴러떨어져도 지치지 않고 다시 돌을 굴려 올라간다.”

시시포스의 운명은 끝나지 않는 형벌로 해석되는데.
“시시포스는 행복한 사람이다. 실패해도 거기 머무르지 않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게 아니라면 분단을 경험한 내가 어떻게 분단국가인 한국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겠나? 하하.”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분단국가였던 독일이 통일되고, 그 통합의 성장통을 겪는 과정에서 독일을 ‘유럽의 환자’에서 ‘유럽의 승자’로 끌어올린 장본인. 정작 슈뢰더와 사민당은 정치적으로 참패했지만, 독일은 승리한 이 과정을 세계 정치사는 ‘눈부신 패배’ ‘리더십의 교본’으로 기록하고 있다.

두 사람의 결합처럼 한국의 통일도 낙관적으로 보나.
“(신중한 미소를 띠며) 중요한 건 당신을 포함해 젊은 세대의 의지다. 통일 비용, 혹은 부의 증대 등 모든 걸 나눠야 한다. 통일은 돈 이상의 가치다. 문화적 통합이고 원래 하나였던 민족이 한 몸으로 회복하는 과정이다.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가 곧 세계 평화로 이어진다는 사명감을 잊으면 안 된다.”

그 길이 참 험난하다. 현재 북한의 ‘핵’을 두고 여러 국가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나.
“일단 유럽인은 한국이 갈등의 평화로운 해법을 시도한 것 자체를 기쁘게 생각한다. 갈등 해결의 첫 단계는 당연히 북한의 핵 탄도미사일 포기다. 그 다음엔 주변 강대국의 경제 제재 완화 및 공조다. 일단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큰 걸음을 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대국의 관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변수다. 얼마 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미국 내에서 실망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상황이 이러하니 남한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남한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중간 단계로 개성경제특구를 잘 활용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물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사일 발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다. 사실, 이 프로세스는 장기전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두 리더의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멈추면 안 된다.”

당신 자서전의 원제는 ‘결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통일 독일의 개혁 리더로서 당신이 했던 최고의 결정 세 가지는 무엇이었나.
“내가 총리로 일했던 1998년부터 2005년은 매일 결정의 연속이었다. 재임 기간 중 몇 가지는 정말 중요한 역사적 결단이었다. 첫째, 이라크 참전 반대를 결정한 것. 당시 그 문제로 미국과 갈등이 심했지만, 독일 내부에서의 반대도 많았다. 둘째, 통일의 후유증으로 경제가 낙후했던 2003년 즈음, 과감하게 ‘어젠다 2010(일명 하르츠 개혁)’을 단행했다. 셋째는 독일이 주도적으로 유럽연합에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를 참여시킨 것이다.”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씨가 미소 짓고 있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슈뢰더 전 총리와 김소연씨가 미소 짓고 있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물론 그에 따른 책임을 진 것으로 안다.
“물론. ‘어젠다 2010’으로 나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게 정치 리더십에 관해 물어보는 분들이 많다.”

정치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정치 리더십은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일이라면, 비록 자기가 선거에서 패배할 리스크가 있어도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어젠다 2010은 주요 지지층이던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사회 복지 비용을 절감하는 정책이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며 이를 벤치마킹하라는 의견도 있다.
“지금의 한국 상황과 당시의 독일 상황은 다르다. 다만 내 개혁 정책의 골자는 노동 시장의 유연화로 가진 여유를 연구·개발(R&D)과 직업교육에 재투자했다는 거다. 복지 시스템 유보가 아닌 강화를 위해 썼다. 어떤 경우든 독일 모델을 그대로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한국 경제가 가진 구조적 문제와 해법은 대통령과 국회가 합리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리라 본다.”

한편으론 그 개혁으로 ‘워킹푸어’가 양산되면서 고용의 질이 떨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 독일 연방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워킹푸어는 줄고 있다. 정상적인 노동자 비율은 그 뒤로 확실히 늘었다.”

자서전에서 당신이 부모에 대해 기술한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다. 가난한 노동자였던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당신의 세계관에 굳게 자리 잡았다고 느꼈다.
“맞다. 나는 가난했지만,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차별하지 않았고, 자유롭게 풀어두셨다. 매 맞은 기억이 없고 오직 사랑만 받았다. 어머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면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전쟁터에서 전사하셨다.”

생부의 무덤을 찾아냈을 때 든 생각은.
“아버지는 10명의 전사자와 루마니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 묻혀 있었다. 당시 루마니아 정부가 아버지의 유해를 모셔가도록 배려해줬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러분의 유골을 헤쳐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게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지금도 루마니아의 소박한 군인묘지에 있다.”

42년 정치 인생 중에 가장 충만했던 시절은 언제였나.
“니더작센주 총리로 있던 시절,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는 형편이 되지 않아 중학교 졸업 후에 철물점 점원으로 일했다. 이후 야간학교에 다니며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했고, 괴팅겐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76년 하노버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신뢰 전문가’데이비드 데스테노는 ‘정치인은 장기 이익이 아닌 단기 이익에 집중하기 때문에 가장 못 믿을 집단’이라고 했다. 당신은 그 모델을 거스른 보기 드문 리더가 아닌가 한다. 그 용기의 원동력은.
“절실함이다. 나는 내가 밀어붙인 어젠다 2010으로 노동자 지지층의 강한 저항에 부딪힐 거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만큼 절실했기에 패배의 리스크를 떠안기로 결정한 거다.”

존경하는 사람은 누군가.
“내가 존중하고 우정을 나누는 사람 대부분이 예술가다. 작가 귄터 그라스, 화가 안젤름 키퍼 등등. 내가 못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그런 의미에서 각 나라의 문화·예술인들은 소중하다. 지금은 아내를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을 배우고 있다.”

슈뢰더와 아내 김씨는 2018년 가을, 한국과 독일에서 두 차례 결혼식을 올렸다. 450명의 하객 앞에서 4시간 동안 펼쳐진 한국 결혼식장엔 3개의 동시통역 부스가 마련됐다. 하객으로 참석한 지인은 김씨가 4시간짜리 성대한 공연의 지휘자 같았다고 전했다.

한때는 ‘슈뢰더의 입’으로, 지금은 인생의 동지로, 나란히 앉아 있는 그들에게서 사랑과 존경과 신뢰의 공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김씨는 현재 동시통역사이면서 동시에 10년째 독일 NRW 연방주 경제개발공사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결혼 이후엔 하노버 집무실과 베를린, 한국을 오가며 8300㎞의 장거리 출퇴근 중이다.

아내와 당신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통역하는 김씨를 바라보며) 나는 내 아내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그가 굉장히 독립적이라는 거다. 그는 정말 당당하다. 우리는 서로를 돕는 파트너십을 잘 발휘하고 있다.”

김소연은 남편 슈뢰더가 자신에게 보내는 헌사를 건조하고 정확한 어휘로 통역했다. 마치 모르는 어떤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듯.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흑발의 긴 머리, 짙은 속눈썹, 초록색의 맞춤 슈트가 그녀를 더욱더 빈틈없는 프로페셔널로 보이게 했다. 김소연에게 물었다.

슈뢰더의 어떤 점이 당신을 사로잡았나.
“(주저함 없이) 그는 좌절에서 힘을 얻는 사람이다. 포기라는 게 없다. 나는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이 사람 말이라면 100% 믿을 수 있다’는 친구가 한 명쯤 있으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웃음)?”

그들은 서로 앞다퉈 자신이 행운아라고 했다. 통일 독일의 전 총리와 분단국가의 독립적인 여성이 만나 이룬 가정은 말할 수 없이 버라이어티하다며. 정치적 현안을 이야기할 때는 눈에 불을 뿜었으나 서로를 쳐다볼 땐 순식간에 로맨틱해졌다.

고령에 그 버라이어티함을 수용하는 게 버겁지는 않은가.
“전혀. 그동안 여러 나라를 다니며 경험했지만 한국만큼 열정적이고 변화무쌍하며 발전하는 나라는 드물다. 아내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대해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런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는 게 행복하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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