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봉(해발 550m)에서 내려다본 곡성의 풍경. 사진 이우석
깃대봉(해발 550m)에서 내려다본 곡성의 풍경. 사진 이우석

전라남도 곡성은 기차마을이 있는 곳이다. 1829년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 ‘로켓’을 발명한 이래 기차는 줄곧 ‘낭만의 탈것’이었다. 지금도 기차와 역은 곧 여행을 의미한다. 기관차가 줄줄이 객차를 끄는 것, 2선 철로 위를 쇠바퀴로 달리는 것, 모두 19세기의 원형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기로 달리는 고속전차를 지금도 증기차를 의미하는 기차(汽車)라 부르는 것도 기차에 대한 낭만적인 느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곡성에는 기차마을이 있다. 여기엔 전차가 아니라 진짜 증기기관차가 있다. 옛 곡성역 앞 섬진강 기차마을 테마파크에는 장미축제로 화려함을 뽐내는 꽃 정원도 있다. 푸른 산 아래 한가득 피어난 붉은 장미 역시 꿈을 자극한다. 붉은 꽃밭은 덜컹거리는 증기기관차와도, 삐익~ 하는 그 기적(汽笛) 소리와도 모두 어울린다.

시커먼 증기기관차는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출발한다. 섬진강과 보성강 합강 두물머리에 자리한 기차마을의 옛 역에서 섬진강변 철로를 따라 달린다. 차창 밖 풍경이 아주 좋은 철로다. 아예 강바람을 쐬며 달리기 좋은 레일바이크도 있다. 으쌰으쌰 합심해 페달을 밟으면 덜컹덜컹 레일 위를 질주한다. 풀이 자라고 야생화가 피어난 자연하천이 고불고불 흐르는 섬진강 상류 풍경은 상상 속에서나 봤던 그런 강의 풍경이다.

잘 꾸며놓은 꽃마을이야 사실 테마파크나 대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옆에 강이 흐르는 진짜 기찻길 위로 까만색 증기기관차와 레일바이크가 달리는 풍경은 다른 곳에선 접하기 힘들다.


섬진강변 철로를 따라 달리는 증기기관차. 사진 이우석
섬진강변 철로를 따라 달리는 증기기관차. 사진 이우석

섬진강 풍경 즐기며 달리는 자전거 여행도 인기

사실 디젤 엔진을 달고 움직이는 이 귀여운 기차는 증기를 내기 위해 따로 물을 끓인다. 기차 안은 그야말로 과거·현재·미래 등 시제가 온통 혼재돼 있다. 수직으로 세워진 ‘반(反)인체공학적’ 설계의 나무 의자는 과거의 것이 분명하고 기적 소리 역시 KTX의 전자음 버저와는 차원이 다르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는 창밖은 현재, 이제부터 남겨질 추억과 디지털 사진은 미래의 몫이다. 곡성 기차마을에서 우리는 오늘 가슴속에 또 하나의 추억을 새긴다.

하필 왜 곡성군이 ‘기차’로 유명해졌을까? 1999년 전라선 곡성역~압록역 구간이 복선화됐다. 새로운 철로는 편했지만 섬진강 옆을 끼고 도는 기막힌 풍경으로 유명했던 기존 철로보다 못했다. 폐선을 안타까워한 이들이 마지막 운행까지 이곳을 찾았다. 곡성군과 코레일관광개발은 2004년 관광용으로 폐선로를 부활시켰다. 다시 많은 사람이 곡성을 찾아왔다. 전라선 승객은 이곳에 거의 내리지 않지만 이제 관광객이 내린다.

곡성은 산과 강이 좋다. 두꺼비 섬(蟾)에 나루 진(津)을 쓰는 섬진강. 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순창과 전남 곡성, 구례, 광양, 경남 하동을 흐르는 212㎞의 대하(大河)다. 곡성이 차지한 섬진강 상류는 절경의 자전거 도로로 소문났다. 산과 강이 만나는 곡성에서 보는 풍경이 아주 좋다.

곡성군 한복판에 동악산이 있다. 기슭에 도림사가 있다. 화엄사의 말사인 도림사는 원효대사가 신라 때 창건한 고찰이다. 도인들이 몰려들어 숲을 이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경내에는 보광전, 명부전, 웅진당, 칠성각 등 전각과 보제루, 오도문 등이 있으며 보광전 괘불탱, 아미타여래설법도 등 보물과 목조아미타삼존불상 문화재를 품은 도량이다.

도림사 계곡은 ‘수석(水石)의 경(景)이 삼남에서 으뜸’이라 했다. 천하절경이라는 금강산(내금강) 만폭동을 빼닮았다. 장정 수십 명이 서도 좁지 않을 만큼 마당 같은 너럭바위 위로 명경 같은 계곡물이 흐른다. 바위채는 집채보다 크고 너르다. 절경으로 소문났던 만큼 도림사 계곡은 시인 묵객들이 수도 없이 다녀갔다. 금강산, 단양팔경도 그렇듯 선현들은 도림사 유람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이름과 글귀를 바위에 새겼다.

섬진강이 이뤄낸 천연 습지 ‘침곡습지보호구역’은 아프리카 초원이 떠오를 정도로 넉넉한 품을 보이는 곳이다. 이른 아침에 찾으면 수묵으로 그려낸 산수화 한폭을 펼쳐놓은 듯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곡성의 강산을 한 번에 감상하는 방법이 있다. 국가 인증 청소년 안전활동 인증업체로 지정된 ‘곡성 기차마을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하면 된다. 곡성 읍내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깃대봉(550m)에 스포츠유틸리티차(SUV)로 오르면 금세 하늘에 닿는다. 롯데월드타워가 555m이니 5m 모자란다.

안전교육 후 장비 착용하면 숙련된 강사가 하늘 구경을 시켜준다. 2명이 타는 탠덤 비행이다. 체험자는 앞에 타고 강사는 뒤에 앉는다. 곡성은 풍경이나 바람 방향, 안정성 등에 있어 최적 조건이라고 한다. 특히 하늘에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섬진강과 지리산의 풍경이 아름답다. 어린이, 청소년도 체험해볼 수 있다. 활공을 하면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남겨준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6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각종 정보 기차마을 증기기관차는 옛 곡성역을 출발해 침곡역과 가정역까지 이르는 장장 10㎞의 구간을 따라 운행한다. 섬진강 명물로 일찌감치 자리잡은 레일바이크는 침곡역부터 가정역까지 무려 5.1㎞ 구간을 달린다. 섬진강 기차마을을 순환(1.6㎞)하는 기차마을 안 레일바이크도 있다. 코레일관광개발 곡성지사 홈페이지(www.korailtravel.com)에 자세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 곡성 기차마을 패러글라이딩 체험비는 주중 11만원, 주말 12만원이다. 동영상과 사진은 요금에 포함되어 있다.

먹거리 곡성은 농촌이다. 한때 곡식 곡(穀)을 지명에 썼다. 꽤 너른 들판도 있어 농사를 많이 짓는다. 당연히 막걸리 문화가 발달했다.
물 좋고 쌀 좋으니 좋은 술이 난다. 맛과 약효가 좋다는 꾸지뽕이 더해진 ‘꾸지뽕 막걸리’가 있다. 곡성에서 많이 재배하는 꾸지뽕은 뽕나무와 달리 줄기와 가지에 가시가 있다. 열매는 오디와 닮았지만 크기, 색과 향이 완전히 다르다.
항암과 성인병에 좋은 꾸지뽕의 효과에 주목해 약재로 많이 쓰지만 막걸리로 먹는 게 가장 편하다. 곡성에서 생산되는 쌀로 술밥을 만들고 꾸지뽕 원액을 배합해 숙성시키는 전통 양조법이다. 향긋하고 살짝 달콤한 맛이 좋아 여러 음식에 어울린다.
곡성 피순대는 예로부터 유명하다. 이 중 한일순대국밥은 유명 맛집이다. 직접 순대를 만든다. 암뽕에 돼지 선지만 가득 채워넣었다. 핑크색 선지가 꽉 찬 순대와 콩나물, 애기보 등 채소와 고기를 함께 욱여넣은 순대 그리고 막창 등 내장 부속을 한가득 썰어넣고 끓여낸 국밥이다.
섬진강 청정수역에서 잡은 민물고기와 참게 요리도 좋다. 하생촌이 잘한다. 한우육회비빔밥도 맛있다. 옥과한우촌은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하다. 신선한 고기와 나물을 올리고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먹는다. 한우생고기와 구이도 맛있다. 석곡에는 지역을 지나는 기사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흑돼지 석쇠불고깃집들이 여럿 있다. 어느 집을 가도 푸짐한 한상 차림, 그 맛이 좋아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