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티넨털이 ‘2019 CES’에서 선보인 자율주행 셔틀과 배달로봇. 이 둘은 한 팀이 돼 짐을 배달한다. 특히 로봇은 짐승처럼 네 발로 움직인다. 사진 콘티넨털
콘티넨털이 ‘2019 CES’에서 선보인 자율주행 셔틀과 배달로봇. 이 둘은 한 팀이 돼 짐을 배달한다. 특히 로봇은 짐승처럼 네 발로 움직인다. 사진 콘티넨털
콘티넨털의 자율주행 셔틀. 사진 콘티넨털
콘티넨털의 자율주행 셔틀. 사진 콘티넨털

지난 일요일 저녁(정확히는 6월 2일 오후 11시 32분), 볼 만한 TV 프로그램이 없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홈쇼핑 채널에서 손이 딱 멈췄다. ‘녹용 네 박스에 32만원.’ 요즘 남편 몸이 허한 것 같아 안 그래도 홍삼 같은 걸 먹여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홍삼은 여러 번 사봤으니 이번엔 녹용을 사볼까? 고민도 잠시, 난 어느새 스마트폰을 꺼내 주문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택배 배달왔습니다. 문 앞에 두고 갈까요?” 어제 주문한 녹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지?’ 배송 상황을 추적해보니 새벽 1시에 트럭에 실었다는 내용이 보였다. 그럼 아저씨는 밤새 제품을 트럭에 싣고 배달을 온 걸까? 잠도 안 자고? 제품을 빨리 받은 건 반가웠지만 한편으론 아저씨가 오늘 하루 안전하게 배송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만약 로봇이 배달하는 시대가 온다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로봇이나 드론을 이용한 배송에 큰 관심을 보이는 곳 중 하나가 자동차 회사다. 이들이 개발에 힘쓰고 있는 자율주행차가 로봇이나 드론 배송과 ‘환상의 팀’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배달할 곳까지 이동하면 로봇이나 드론이 물건을 싣고 배달을 마친다. 완벽한 시나리오다.

지난달 포드는 미국의 로봇 개발사 애질리티 로보틱스와 함께 만든 배달 로봇을 공개했다. ‘디지트(DIGIT)’란 이름의 이 로봇은 포드의 자율주행차와 팀을 이뤄 물건을 배달한다. 자율주행차가 배달할 곳까지 데려다주면, 디지트가 차에서 내려 두 팔로 물건을 들고 배달할 곳으로 가져다준다. 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어 최대 18㎏ 무게의 물건까지 들고 걸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인종을 누르거나 넘어졌을 때 팔을 짚고 일어설 수도 있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가슴엔 장애물과 지형을 인식할 수 있는 카메라와 라이다 센서가 있어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킥보드쯤은 쉽게 피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발견했을 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율주행차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포드는 이 로봇 배달 시스템을 몇 년 안에 상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봇 배달을 생각한 건 포드만이 아니다. 콘티넨털은 지난 1월에 열린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 ‘2019 CES’에서 새로운 자율주행 셔틀과 배달 로봇을 소개했다. 큐브(CUbE)라는 이름의 셔틀과 로봇이 한 팀으로 구성된다. 짐을 실은 로봇이 셔틀에 탄 후 목적지에 도착하면 로봇이 내려 짐을 배달한다. 셔틀은 배달 로봇을 이동시키는 역할만 한다. 단, 콘티넨털의 로봇은 포드의 디지트처럼 두 다리로 걷는 게 아니라 짐승처럼 네 발로 움직인다. 위쪽에는 짐을 실을 수 있는 받침이 있는데 배달할 곳에 도착하면 한쪽 다리를 쭉 펴 초인종을 누른 후 다리를 접어 몸을 기울여 짐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콘티넨털의 기술 책임자 랠프 라욱스만은 “자율주행차로 효율적인 운송 팀을 만들기 위해 이런 배달 로봇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포드와 콘티넨털이 로봇을 이용한 배송을 생각했다면 메르세데스-벤츠 밴은 드론을 이용한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이들이 2017년 공개한 ‘비전 밴’은 배달용 밴과 드론이 한 팀이다. 우주선처럼 매끈한 밴의 지붕 위에 두 대의 드론이 놓여 있는데, 배달 직원이 배달할 곳 근처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면 지붕에 있는 드론이 물건을 집어 고객에게 배달해준다. 뒤쪽 화물 공간과 운전석 사이에 커다란 문이 있는데 문 옆에 달린 모니터로 화물 공간에 실린 물건과 배달할 곳을 알 수 있다. 모든 배달 물건은 싣는 순간 자동으로 분류된다. 배달할 곳의 위치도 자동으로 내비게이션에 전송된다. 그러니까 배달 직원은 내비게이션에 전송된 장소로 차를 몰고 가기만 하면 된다. 배달할 곳에 도착할 때마다 일일이 내려 짐을 배달할 필요가 없으니 배달 시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이런 밴이 있다면 배달할 맛도 나겠다.


지난달 포드가 공개한 배달 로봇 ‘디지트’는 두 발로 다닐 수 있다. 사진 포드
지난달 포드가 공개한 배달 로봇 ‘디지트’는 두 발로 다닐 수 있다. 사진 포드
‘비전 밴’은 배달용 밴과 드론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비전 밴’은 배달용 밴과 드론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속초 물회 집에도 등장한 로봇 웨이터

앞서 소개한 세 가지는 아직 상용화 전의 콘셉트 단계에 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배달 로봇이 직접 배달에 나서고 있다. 미국 UC버클리와 UCLA에는 음식을 배달하는 ‘키위봇(KiwiBot)’이 있다. 키위봇은 미국 스타트업 키위에서 만든 음식 배달 로봇이다. 네모난 아이스박스에 바퀴가 네 개 달린 모양이다. 안쪽에 수납공간이 있어 음식을 싣고 주문한 곳으로 달려간다. 주문은 간단하다.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다음 식당과 메뉴를 선택하고 지도에서 정확한 배달 위치를 입력하면 된다. 로봇이 도착하면 애플리케이션에 도착 알림과 함께 ‘문 열림’ 버튼이 뜨는데 이걸 클릭해야 문이 열리기 때문에 중간에 음식을 도난당할 걱정은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도 음식을 배달하는 로봇이 있다. 강원도 속초의 한 물횟집에는 쟁반에 음식을 싣고 테이블까지 배달하는 로봇이 다닌다. 기다란 3단 선반처럼 생겼는데 자율주행 기능을 품고 있어 입력한 테이블까지 스스로 음식을 배달한다. 배달하는 도중에 장애물을 만나면 스스로 멈추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앞으로 무인 배달 시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배달을 로봇에 맡기기는 불안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작업해야 하는 일은 로봇이 대신하고, 낮 동안의 배달은 사람이 하는 쪽으로 양분되면 어떨까. 그러면 택배 기사들이 밤 11시에 주문한 녹용을 다음 날 아침에 배달하기 위해 새벽 1시부터 트럭을 몰고 나서는 일도 줄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