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의 편백숲에서 관광객들이 산책하고 있다. 사진 이우석
소록도의 편백숲에서 관광객들이 산책하고 있다. 사진 이우석

남도 땅 고흥(高興)반도에 가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번에 느껴볼 수 있다. 차를 몰고 다리를 건너면 시제가 수시로 변한다.

‘높이 일어난다’는 땅 이름 뜻처럼 고흥은 외나로도에서 우주를 향해 미래를 펼치고 있다. 그리고 아픈 과거를 품은 섬 소록도도 있다. 그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르기엔 박치기왕 프로레슬러 김일의 고향 거금도, 섬 자체가 미술 전시관인 연홍도, 고양이 천국으로 불리는 애도(쑥섬)가 있다.

오뚝오뚝 솟은 팔영산과 마복산, 눈부신 다도해 아름다운 바다, 떡하니 맛난 반찬이 줄줄이 펼쳐진 고흥식 백반의 ‘반찬 퍼레이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힐링과 만족을 선사한다. 올여름 고흥에서 챙길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이다.

고흥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은 소록도. 100여 년 전부터 한센병 환자가 모여사는 섬이다. 태곳적부터 인류를 괴롭혀왔던 한센병은 소록도를 고흥보다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극악무도한 총독부는 전국 팔도의 한센병 환자를 잡아들여 강제로 소록도에 수용했다. 치료가 목적이라 했지만 믿는 사람은 없었다. 산 채로 피부가 부패하는 등 환부가 흉측히 드러나는 한센인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전염을 막기 위함이었다. 한센병이 일반 전염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무지 탓이기도 했다.

당시 총독부는 한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해야 한다며 땅끝에 가까운 소록도를 한센병 집단 거주지로 조성했다. 1916년 2월 24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를 통해 ‘소록도 자혜의원’을 설립하고 한센인 병원으로 운영했다.

말이 요양이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하늘이 내린 천형(天刑)이고 병에 걸리면 세 번 죽는다고 했다. 지금은 약(리팜피신)만 먹어도 완치되는 병이지만 당시 환자들은 가족과 격리에, 심지어 강제로 중절수술과 정관수술을 당하는 등 인권을 유린당했다.

역설적이게도 소록도 주변 바다와 섬은 굉장히 아름답다. 하늘을 가릴 만큼 껑충한 숲도 근사하다. 비록 그 아픔이 너무도 어두워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소록도에 다리가 놓이고 많은 이가 찾아든다. 봉사하러 섬을 찾은 이부터 놀러오는 이도 가득이다. 이제 새로 드는 이도 없고 고령 환자들만 남았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소록도는 원래 사슴섬(鹿島)의 이름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아픔과 소외는 똑똑히 남을 것이다.


10㎞ 펼쳐진 팔영산 편백숲

고흥은 어촌일 것이라 상상하는 이들이 많지만 뜻밖에 기름진 땅에서 농사도 잘되고 울창한 산림과 숲도 많다. 특히 고흥을 대표하는 명산 팔영산에는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편백나무가 많다. 기암 가득 머리에 인 여덟 개 봉우리에서 이름 붙은 팔영산에는 산꾼이 많이 찾지만 편백숲은 일반 관광객이 걸어도 힘들지 않다. 수령 40년 정도의 청년 편백나무 숲길이 10㎞정도 펼쳐진다. 봉래산과 마복산 역시 그 이름처럼 금강과 설악에서 뚝 떼어온 것처럼 근사하다.

고흥의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때가 때인지라 눈과 입으로 즐기길 추천한다. 우선 금진항에서 출발하는 유람선 나라호를 타면 거금도 옆을 돌아 연홍도, 금당도를 시원하게 둘러볼 수 있다. 거제 해금강 못지않은 다도해의 절경을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코스다.

금당도는 해식동과 해식애 등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섬이다. 금당팔경으로 불리는 기암절벽을 보기 위해 많은 이가 찾는다. 나라호 유람선은 정원 213명의 중형 선박으로 사방으로 창이 나 있어 여름 뱃놀이를 즐기기에 딱이다. 2층과 3층 갑판에 서면 보물 같은 풍경이 360도 펼쳐진다.

입으로 즐기려면 배를 비우고 곳곳을 들러봐야 한다. 녹동항은 마침 갯장어 시즌을 맞아 여름 별미 ‘하모(갯장어)’를 맛보기 위해 몰려든 미식 행렬로 떠들썩하다. 수산물위탁판매장과 식당에는 갯장어는 물론, 노랑가오리·농어·숭어 등 다양한 바다 먹을거리가 많아 녹동항의 이름값 또한 상한가를 친다. 누가 뭐래도 고흥의 미래는 외나로도다. 외나로도에는 우주로 향한 길이 있다. 2009, 2010년의 실패. 그리고 2013년 1월 3차 발사에서 나로과학위성을 실은 나로호가 불기둥을 뿜으며 드디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대한민국은 삼세번 만에 외나로도를 통해 우주로 진출했다(위성은 2014년 연락이 두절됐다).

우주센터가 있는 나로도는 예전에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어 ‘나라섬(나라의 말을 키우던 곳이라는 뜻)’이라 부르다 나로도가 됐다. 당시 인간에게 가장 빠른 추진체인 말을 키우던 곳에서 로켓을 쏘았다. 야외에 나로3호 실물 모형이 있는 우주과학관 내부에는 머나먼 우주를 현실에서 느껴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시설을 준비해 놓았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면 바로 시작되는 진공과 무중력 등 우주 현상을 실험 장치를 통해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또 나로호 발사체의 3 대 1 축소 모형이 있어 나로호가 발사될 때의 진동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들이 가득하다. 국립청소년우주센터에선 1.8m짜리 전파망원경 3기로 만들어진 전파간섭계로 우주를 관찰할 수 있으며 우주인 훈련 장비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달에서 겅중겅중 뛰던 암스트롱 선장의 ‘자료화면’처럼 문워커(MoonWalker) 프로그램에도 도전할 수 있다. 국제우주정거장도 고스란히 재현해놓았다.

‘우주’를 빼더라도 아름다운 풍광이다. 바다를 품은 울창한 숲도, 목가적인 분위기도 모든 도시민에게 행복감을 이입해준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며 고흥반도 작은 세계의 과거·현재·미래를 느껴보는 여행, 가족 여름 휴가 주제로 퍽 의미 있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6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둘러볼 만한 곳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을 자혜의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한센병 박물관으로 세계 유일한 곳이다. 소록도의 역사와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소록도 자혜의원 구 본관, 순천교도소 소록지소, 소록도 중앙공원 등이 있는데 주민 생활 지역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먹을거리 고흥시장에는 생선을 구워 파는 집이 많다. 식당이 아니다. 생선을 사서 집이나 일터에서 먹는다. 어떤 집은 고등어와 함께 병어를 구워놓았는데 참 보기 좋다. 고흥읍 바다한상은 백반과 물회를 잘한다. 반찬 가짓수야 말할 것도 없고 따로 주문한 육회는 매콤달콤 시원하니 입맛을 돋운다.
금다연은 시그니처 메뉴 게장을 내세운 한정식을 상에 빈틈없이 차려낸다. 이를 벗삼아 술 한잔 하기에도 딱 맞다. 대흥식당에선 최근 몇 년간 제일 황송한 아침 밥상을 받아들 수 있다. 읍내 덕성루는 신선한 해물과 돼지고기를 적절히 썰어넣은 짬뽕이 맛 좋다. 센 불로 단숨에 볶아내 해물은 꼬들꼬들하고 채소는 아삭해 씹는 맛이 좋아 면발은 거저 씹힌다.
맛집이 몰려 있는 녹동항에는 생선구이백반을 푸짐하게 내놓는 정다운식당(061-843-0217)과 장어를 통째로 넣은 장어탕으로 이름난 득량식당(061-840-2082)을 추천한다.

이우석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