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눈부신 가을에,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하늘 높은 늦가을에, 누군가 손잡고 길을 걷다 구석에 몸을 숨겨 사랑을 나누기 좋은 서걱거리는 대기를 이 땅의 아이들이 성장하여 누릴 수 있기를 빌었다.
이토록 눈부신 가을에,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하늘 높은 늦가을에, 누군가 손잡고 길을 걷다 구석에 몸을 숨겨 사랑을 나누기 좋은 서걱거리는 대기를 이 땅의 아이들이 성장하여 누릴 수 있기를 빌었다.

삶의 한 부분을 누군가와 기꺼이 함께할 때면, 그것이 짧든 길든, 감사의 마음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와도 그랬다.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의 친절과 상냥함을 당연히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감사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으로 당연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감사의 마음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기를 애타게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감사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을 이끄는 데 반드시 필요했지만, 감사하다고 해서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침대 안으로 스며든 그의 몸은 서늘하고 매끄러웠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었다. 사랑을 나누기엔 그의 긴장도가 너무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긴, 섹스를 오직 삽입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건 지루하기 짝이 없다. 몸의 숱한 부분들이 모두 사랑의 기관들이다. 그의 움직임은 다정하고 따뜻했다. 나에게는 그와 같은 상냥함과 조심스러움, 온전한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는 내게 그 모든 걸 기꺼이 주고자 했다. 아니, 주는 것으로 환희로워했다.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함께 영화를 보든 거리를 걷든 커피를 마시든 드라이브를 하든 식사를 하든, 그가 나를 살피고 바라보는 시선에는 설렘이 술렁였다. 불안과 설렘은 어쩌면 그리 닮았을까. 그의 불안은 존재에 깊이 가 닿은 것이자, 하나의 성정으로 자리 잡은 그의 일부였다. 나 역시 불안의 아이라서 알아볼 수 있었다. 언젠가 어느 점성술가가 나를 두고 말했다. 폭발 직전의 하늘이라고. 하늘의 어디에도 빈자리가 없이, 별들로 꽉 차 있다고. 폭발 직전의 하늘은 가장 찬란하고 가장 불안하다고. 그의 불안은 좀 더 어둡고 무겁고 은밀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마치 깊은 중력처럼 나의 별들을 빨아들이는지도 몰랐다. 그가 나를 염원하고 그가 나를 좇는 듯 보였겠지만, 어쩌면 끌려가는 건 나였을지 몰랐다.

원고를 써야 하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카페 안을 함께 지키던 그가 노트북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눈길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내게 쏟아부었다. 그의 여름은 일과 나, 두 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만큼 온통 집중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집중의 방식은 존재마다 다르다. 그의 방식은 은밀하고 조심스럽고 머뭇거리며 겁이 많으며 망설이는 종류였지만, 그만의 최선을 자신의 삶 안에서 다하고 있음을 알았고, 나는 그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감사의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마음이었다. 그에게 물었다.

내가 좋아요?

네, 좋아요.

그래요. 나를 좋아해 주세요.

당신다운 가장 정확한 대답이네요. 사랑한다는 대답을 할 수 없을 때, 하지만 기다려보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말로 말이에요.

당신에게 사실 이 문장을 전해 주고 싶었다. 시를 읊듯 읊어주고 싶었다.

“만약 세상 어디에도 사랑이 없다면, 우리끼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서 두꺼운 벽을 쌓고, 내부를 구석구석 아늑한 붉은색으로 꾸미고, 보석 상인의 펠트에 떨어지는 다이아몬드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초인종을 달면 된다. 나를 사랑해다오,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다 시도해 보았으니(조너선 사프란 포어, ‘모든 것이 밝혀졌다(Everything is illuminated)’ 중).”

그럼에도 과거의 한때 사랑이라고 느꼈던 감각은 내게 지울 수 없는 상흔처럼 남아있었다. 마치 이마에 새겨진 번개무늬 자국처럼, 심장이든 마음이든 어딘가 깊숙한 곳에 기관처럼 솟아있었다. 누군가 사랑하게 될 때 요동치는 그 감각은 사지를 풀리게 하고 몸도 마음도 내 잘난 통제력도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말았다. 고통인지 환희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통증이 되어버리는 그런 것.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종잡을 수 없는 것에 사로잡히는 것. 뒤통수를 빽빽하게 덮은 까끌까끌한 머리털의 감촉, 좁고 단단한 허리 가운데를 파고들 듯 박혀있는 배꼽의 아득한 체취, 혀로 닿을 듯 따라갔던 배꼽 밑의 검은 길 같은 것들. 나의 좁은 부엌을 오가며 분주히 움직이던 뒷모습, 노련한 칼질을 배신하는 날카로운 새 칼이 낸 좁고 깊은 손가락 위 상처, 솟아나는 피 그리고 그대로 당신을 통째로 들이켤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나의 갈증과 어느새 침대 속에 엉켜 들어갔던 몸이 주고받았던 높고 아득한 기쁨의 함성들. 그렇게 고통과 환희의 기억은 사소한 감각의 기억들과 함께 넝쿨처럼 이어져 있다.

안타깝게도 그 여름의 남자와 그의 몸에 관해서 나의 기억은 만들어지기도 전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에게서 어떠한 환희도, 따라서 어떠한 고통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 막연하고 희미한 슬픔은 떠다녔지만, 안개처럼 불분명했다. 그의 바람처럼, 기다린다고 해서 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그에게 더 명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를 아껴주고 싶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미세한 상처를 자꾸 그에게 내고 있었다. 깊지 않아 치명적이지 않더라도 표피를 베는 상처는 잦아질수록 소모적이 된다. 여름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건 다행인 신호였다. 나는 곧 떠날 것이고 우리에겐 어떠한 약속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쯤은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해 늦가을, 서울을 다시 방문했다. 이십 년 만에 맞이하는 한국의 가을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참 더디게 흘러가는 캘리포니아의 날씨 속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을, 20대의 절반을 보낸 프랑스의 풍경을 가늠해 보곤 했다. 차츰 프랑스의 풍경은 지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언어를 잃고 있었고 그리운 누군가를 그곳에 더 이상 두지 않게 됐다.

한국은 갈수록 다시 강렬해지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뛰었다. 그들의 성장을, 나이 듦을,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어졌다. 계절처럼 그렇게. 눈부신 도약과도 같은 사시사철의 움직임은 보고 또 봐도 경이로움을 알게 됐다. 그리고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여전히 몽롱했던 아침, 택시를 타고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기 위해 가는 길, 무심코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봤다. 온통 노란빛으로 물든 나뭇잎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언뜻언뜻 비쳤다. 바람이 불자 찬란한 노랑들이 흐드러지게 내려왔다. 길을 걷던 아이가 그 온통 속을 뛰어다녔다. 손에 낚아채려 하지 않아도, 아이의 머리에 어깨에 등에 가슴에 나뭇잎이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아이야, 너도 어느 날 누군가를 저토록 환호하듯 사랑하겠지. 마음껏 누리렴. 두려워하지 말고 미리 가늠하지 말고. 돌이켜 보니,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 말고는 남는 것이 없구나.

이토록 눈부신 가을에,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하늘 높은 늦가을에, 누군가 손 잡고 길을 걷다 구석에 몸을 숨겨 사랑을 나누기 좋은 서걱거리는 대기를 이 땅의 아이들이 성장하여 누릴 수 있기를 빌었다. 몸과 몸이, 마음과 마음이, 작은 방 한편, 아늑한 도시의 골목에서 농축된 은밀함으로 여물 수 있기를 말이다. 지난여름의 남자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희미한 아쉬움보다 열렬한 축복이 더 익숙한 나이가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 이서희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 ESEC 졸업,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