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오전, 소설가 최수철은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악을 독처럼 섭취하지만 스스로 해독(解毒)할 줄 알기 때문에 삶의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2019년 10월 14일 오전, 소설가 최수철은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악을 독처럼 섭취하지만 스스로 해독(解毒)할 줄 알기 때문에 삶의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독의 꽃
최수철 지음|작가정신|547쪽|1만5000원

2019년 제50회 동인문학상은 소설가 최수철의 장편 ‘독의 꽃’에 돌아갔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문학이 인간의 본성을 엿보게 하고 삶의 뜻을 지피게 하는 최적 장소라고 한다면, 최수철의 ‘독의 꽃’은 문학의 본령을 일깨우는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인간 탐구를 형상화한다는 문학의 원리를 제대로 구현한 소설이라는 것.

최수철은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기 위해 ‘독’을 의식의 현미경으로 삼았다. 그는 독학으로 독을 연구했다. 독초와 독사, 독극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채집해 독의 백과사전을 엮듯이 소설을 써냈다. 독이 지닌 인문학적 상징과 비유의 의미까지 파고들었다. 독을 모티브로 삼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사의 힘으로 독의 세계를 독하게, 독특하게, 독창적으로 그려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여러 화자(話者)의 시점이 뒤얽혔다.

다행히 작가는 독자 편의를 염두에 둔 듯, 소설 도입부에 전체 내용을 요약해 제시했다. “한마디로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독을 몸에 지니게 되고,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그 독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게 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라고 쓴 것. 이 소설은 독성 물질에 감염돼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주인공 ‘조몽구’가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화자 ‘나’에게 지금껏 겪어온 특이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가 그것을 재구성해 소설 형식으로 독자에게 제시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조몽구’의 구술과 ‘나’의 서술도 경계를 잃기 때문에 이야기의 사실성과 개연성보다는 작가 최수철의 치밀하고 엄정한 사유와 관념이 더 강력하게 소설을 지배한다. 

“독은 어둠이고 병이고 약이야. 독은 태초에도 있었어. 태초에 독이 있었어”라는 주인공의 진술을 비롯해 독을 주제로 한 성찰이 소설 곳곳에서 되풀이된다.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라는 것. 작가 또는 화자 또는 주인공의 말을 더 들어보면 이렇다. “독에 대한 완전한 면역은 불가능해.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몸속에서 독을 이기는 무독화 효소계가 발달하는 것도 사실이지. 그런데 그 또한 독이야. 이 세상은 독과 약으로 이루어진 뫼비우스의 띠 같은 거야. 독이든 약이든 그 속에 생명과 죽음이 함께 들어 있는 거지.”

작가는 수상자로 선정된 뒤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독이 약이 될 수 있고, 약이 독이 될 수 있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라는 게 있다. 인간이 처음 벌에 쏘이면 몸속에 벌침 독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지는데, 다시 벌에 쏘이면 즉각 반응해서 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독이 약이 됐다가, 그 약이 다시 독이 되는 역설이다.”작가는 이처럼 ‘약’과 ‘독’의 순환성과 상호의존성을 파악함으로써 삶·죽음이나 선·악 이분법에서 벗어나 인간 본성 내부의 양면성을 입체적으로 보고자 한다. 그가 책에 쓴 작가의 말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들 하나하나야말로 곧 한 송이 ‘독의 꽃’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서 이 말 또한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지상의 모든 꽃이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