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87세). 생의 마지막 시간을 치열하게 쓰고 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이어령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87세). 생의 마지막 시간을 치열하게 쓰고 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살아생전, 이어령의 회갑연에서 두 장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TV 상자 안의 말(馬) 그림과 TV 상자 안의 입술(말(言)이 터지는 통로) 그림이었다. 말(言)이라는 무기를 들고, 말(馬)달리는 자가 이어령이었다. 그가 쏟아낸 말은 과거를 달릴 때나 미래를 달릴 때나 주저가 없었다. 스킵(skip)과 시프트(shift), 축지법과 공중부양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선생과 앉아 인터뷰하던 서재는 늘 ‘매트릭스’나 ‘인터스텔라’ 같은 SF 영화의 세트처럼 느껴지곤 했다.

오늘 마주 앉은 방엔 책 한 권, 서가 한 칸 없이 고적했다. 한국 지성의 큰 산맥 이어령. 22세에 문단 원로들의 권위의식에 비수를 꽂는 선전포고문 ‘우상의 파괴’로 유명 인사가 된 이후, 65년간 때로는 번뜩이는 광야의 언어로, 때로는 천둥 같은 인식의 스파크로 시야의 조망을 터주었던 언어의 거인. 벼랑 끝에서도 늘 우물 찾는 기쁨을 목격하게 해준 우리 시대의 어른.

십수 년 전 이미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라는 아름다운 말을 선창한 분임에도, 당신이 제일 잘한 일은 문화부 장관 시절 ‘노견(路肩)’을 ‘갓길’로 바꾼 것이라고 했다. 선생 앞에 앉아 있으니, 갑자기 아득하여 88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그가 연출했던 잠실벌의 굴렁쇠 소년이 생각났다. 햇볕 내리쬐는 광장에 쓰였던 한 줄 정적의 시. 가을비가 대지를 적시는 오늘, 나는 그에게서 ‘죽음’이라는 한 편의 시를 듣게 될 터였다. 그는 항암 치료를 마다한 채로 마지막 기력을 다해 책을 쓰고, 강연하고, 죽음까지 기록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


요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쓰신다고 들었다. 지난번 뵐 때 ‘마지막 파는 우물은 죽음’이라고 했는데.
“죽음을 앞두면 죽는 얘기를 써야잖나? 나는 반대를 쓴다. 왜냐? 죽음은 체험할 수가 없으니까. 사형수도 예외가 없다. 죽음 근처까지만 가지. 죽음을 모르니, 말한 사람이 없다. 임사체험도 살아 돌아온 얘기다. 살아 있으면 죽음이 아니다. 가령 이런 거다. 어느 날 물고기가 물었다. “엄마, 바다라고 하는 건 뭐야?” “글쎄, 바다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걸 본 물고기들은 모두 사라졌다는구나.” 물고기가 바다에서 나오면 죽는다. 그 순간 자기가 살던 바다를 본다. 내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죽음이다. 하지만 죽음이 무엇인가를 전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다른 데서 힌트를 찾았다.”

어디서 힌트를 찾았나.
“죽을 때 뭐라고 하나? 돌아가신다고 한다. 그 말이 기가 막히다.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다. 생명의 출발점. 다행인 건 어떻게 태어나는가는 죽음과 달리 관찰이 가능하다. 2억~3억 마리의 정자 레이스를 통해서 내가 왔다. 그 전에 엄마와 아빠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또 그 전의 조부모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계속 거슬러 가면 36억 년 전 진핵 세포가 생겼던 순간까지 간다. 나는 그렇게 탄생을 파고든다.”

죽음을 느끼면서 태어남 이전을 복기한다? 엄청난 속도의 플래시백이다. 뇌에서 빅뱅이 일어나겠다.
“그렇다. 모험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먼 과거에 있다. 진화론자의 의견에 따르면 내 존재는 36억 년 전 원시의 바닷가에서 시작됐다. 어찌 보면 과학은 환상적인 시다. 내가 과거 물고기였을까, 양수가 바닷물의 성분과 비슷하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태아 형성 과정을 보면 아가미도 물갈퀴 자국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렇게 계산하면 내 나이는 사실 36억 플러스 여든일곱 살이다. 엄청난 시간을 산 거지. 죽음에 가까이 가고서 나는 깨달았다. 죽음을 알려고 하지 말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과거로 가서 미래를 본다는 설명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이어령이다. 평생 창조적 역발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선물처럼 안겨준 사람.


그의 말속에서 과거의 탄생과 미래의 죽음이 만났고, 그렇게 그의 주례로 ‘아름다워진’ 현재가 탄생했다. 사진 김지호조선일보 기자
그의 말속에서 과거의 탄생과 미래의 죽음이 만났고, 그렇게 그의 주례로 ‘아름다워진’ 현재가 탄생했다. 사진 김지호조선일보 기자

미지의 죽음을 탄생의 신비로 푸니, 이번엔 또 뭐가 보이던가.
“난 옛날부터 참 궁금했다. 왜 외갓집에만 가면 가슴이 뛸까? 왜 외갓집은 열린 감조차 더 달고 시원할까(웃음)? 그게 미토콘드리아는 외가의 혈통으로만 이어져서 그렇다. 거슬러 가면 저 멀리 아프리카의 어깨 벌어진 외할머니한테서 내가 왔는지도 몰라. 허허. 이렇게 한 발 한 발 가면서 느껴지는 게 신의 존재예요. 최초의 빅뱅은 천지창조였구나….”

과학을 잘 모르면 무신론자가 되지만, 과학을 깊이 알면 신의 질서를 만난다고 했다. 죽음이 아닌 탄생을 연구하면서 선생은 점점 더 자신만만해졌다.

그런데 요즘엔 탄생 자체를 비극으로 보는 젊은이들이 많다.
“인간은 내 의지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안 태어나는 게 행복했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났으니 빨리 사라지는 게 낫겠다, 이렇게 반출생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건 무의미하다. 제일 쉬운 게 부정이다. 긍정은 어렵다. 나야말로 젊을 때 저항의 문학이다, 우상의 파괴다, 해서 부수고 무너뜨리는 데 힘을 썼다. 그런데 지금 죽음 앞에서 생명을 생각하고 텅 빈 우주를 관찰하면, 다 부정해도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다.”

철학자 김형석 선생은 인격의 핵심은 성실성이라고 했다. 선생은 인격의 핵심을 뭐라고 보나.
“핵심은 인격과 신격은 다르다는 거다. 하나님을 흉내 내기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려고 했던 파우스트가 그 인간다움으로 구제 받았다. 나는 유다가 베드로보다 예수님을 더 잘 이해했을 거라고 본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유다는 교회가 아니라 피의 바다를 남겼다. 그런데 인간의 인격은 유다와 가까워서 더욱 신격을 욕망한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요즘 들어 신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신다.
“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신에 대해 말할 지식도, 자격도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베드로나 유다나 똑같다. 오래 관찰하면 안다. 신은 생명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능력과 환경이 같아서 평등한 게 아니다. 다 다르고 유일하다는 게 평등이다. 햇볕을 받아 울창한 나무든 그늘 속에서 야윈 나무든 다 제 몫의 임무가 있는 유일한 생명이다. 그 유니크함이 놀라운 평등이다. 또 하나, 살아있는 것은 공평하게 다 죽는다.”

왠지 선생의 유니크함은 탄생부터 남달랐을 것 같다.
“내 유니크함의 80%는 어머니가 주셨다. 내가 돌상에서 돌잡이로 책을 잡은 걸, 어머니는 두고두고 기뻐하셨다. 그때는 쌀이나 돈을 잡아야 좋아했는데, 어머니는 달랐다. ‘우리 애는 돌상에서 책을 잡고 붓을 잡았다’고 내내 자랑을 하셨다. 내가 앓아누워도 어머니는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셨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나는 책을 읽고 상상력을 키우는 인간이 됐다.”

언어학자이면서 언론인, 비평가이면서 소설가·시인·행정가·크리에이터로 살아왔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우물 파는 자라고 했다.
“단지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파지는 않았다. 미지에 대한 목마름, 도전이었다. 여기를 파면 물이 나올까? 안 나올까? 호기심이 강했지. 우물을 파고 마시는 순간 다른 우물을 찾아 떠났다. 한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되지 않으려고. 이제 그 마지막 우물인 죽음에 도달한 것이고.”

요즘엔 어떤 꿈을 꾸나.
“빅뱅처럼 모든 게 폭발하는 그런 꿈을 꾼다. 너무 눈이 부셔서 볼 수 없는 어둠. 혹은 터널 끝에 보이는 점 같은 빛. 그러나 역시 8할은 악몽이다. 죽음이 내 곁에 누워있다 간 느낌…. 시계를 보면 4시 44분 44초일 때도 있다. 동트기 전에, 밤도 아니고 새벽도 아닌 시간이다. 그 시간이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섬뜩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혼자라는 거다. 누구도 그 길에 동행하지 못하니까. 다행히 그때 또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젊은 날 인식이 팽팽할 땐 몰랐던 것.”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다. 마이 라이프(my life·내 삶)는 기프트(gift·선물)였다.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

이어령 선생은 7년 전 2남 1녀 중 맏딸 이민아 목사를 암으로 먼저 보냈다. 미국에서 검사 생활을 했던 딸은 목사 안수를 받았고, 위암 발병 이후, 수술하지 않고 시한부를 택해 열정적으로 쓰고 강연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언제 신의 은총을 느끼나.
“아프다가도 아주 건강하게 느껴지는 아침이 있다. 내 딸도 그랬다. ‘아빠, 나 다 나았어요’라고. 우리 애는 죽기 전에 정말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1년간 한국에서 내 곁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암에 걸리고 큰 선물을 받았다. 죽음에 맞서지 않고 행복하게 시간을 썼다. 어떤 환자라도 그런 순간이 온다. 촛불이 꺼질 때 한 번 환하게 타오르듯이. 신은 전능하지만, 병을 완치해주거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게 해주진 않는다. 다만 하나님도 인간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가엾게 여겨 잠시 그 자비로운 손으로 만져줄 때가 있다. 배 아플 때 어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만져주면 반짝 낫는 것 같지 않나. 그때 나는 신께 기도한다.”

어떤 기도를 하나.
“옛날엔 나는 약하니 욥 같은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지금은…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는 안 한다. 역사적으로도 부활의 기적은 오로지 예수 한 분뿐이니까. 나의 기도는 이것이다.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주소서.’ 내가 갈피를 넘기던 책, 내가 쓰던 차가운 컴퓨터…. 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다.”

그 전까지는 죽음의 의미, 생명의 기프트를 마지막까지 알고자 한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사형수도 형장으로 가면서 물웅덩이를 폴짝 피해 간다. 생명이 그렇다. 흉악범도 죽을 때는 착하게 죽는다. 역설적으로 죽음이 구원이다.”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딱 한 가지다. 덮어놓고 살지 말라.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다.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렇다.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다.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말라.”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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