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다리순대국
주소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42길 31
영업 시간 08~20시 (재료 소진 시 영업 종료) (휴무, 매주 화요일)
대표 메뉴 머릿고기, 순댓국

창성옥
주소 서울 용산구 새창로 124-10
영업 시간 06~다음 날 01시 30분 (휴무 없음)
대표 메뉴 해장국, 달걀프라이


문을 열고 나와 마주한 세상은 모든 게 붕괴된 듯하다. 나는 높은 시멘트 계단 위에 올라서 있다. 콧잔등 위로 파란 밤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고층빌딩은 표정 없이 불을 밝힌다. ‘야간분만’, 미처 다 갈라지지 못해 무너지지도 못한 낡은 건물에 기생하는 네 글자의 네온사인은 생명을 잃은 지 오래다.

조각 난 슬레이트 지붕 위로 버려지고 찢긴 간판이 겹겹이 쌓였고, 녹슨 철기둥은 아슬아슬하게 그를 받치고 있다. 계단을 내려와 그 위태로움을 머리 위에 뒀다.

붉은 철문을 열고 나오는 남자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다 발길을 옮긴다. 서울 용산구 용문시장으로 향한다.

좁고 낮은 골목을 빠져나왔다. 고등어의 목을 치고 배를 가르는 생선 가게 주인, 면장갑을 손에 끼고 사과 한 알 한 알 윤을 내는 과일 가게 주인, 뜨거운 기름에 부침개 반죽을 올리는 전집 주인 등 시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담긴다. 남자는 간판 없는 가게로 향한다. 낮고 허름한 지붕 아래 달린 형광등 불빛이 길게 드리운다. 미닫이 유리문에 붙은 붉은색 세 글자가 식당임을 알린다. ‘순대국’.


삽다리순대국의 푸짐한 머릿고기. 사진 김하늘
삽다리순대국의 푸짐한 머릿고기. 사진 김하늘

순댓국과 머릿고기

“오랜만에 왔네. 아니 왜 얼굴이 이렇게 쏙 빠졌어.” 등허리가 약간 굽은 순댓국집 주인은 남자에게 인사한다. 남자는 오랜만에 소고기를 사 먹었다가 배탈이 나서 일도 나가지 못하고 고생했다며 뾰족해진 턱을 훔친다. 나는 그 남자 건너에 앉아 머릿고기 한 접시를 시킨다. 주인은 주방에 들어가 커다란 나무 도마 위에 고깃덩어리를 올려놓고 힘을 주어 칼질을 한다. 주인은 금세 펄펄 끓는 순댓국 한 뚝배기와 돼지머릿고기와 새끼보, 순대가 가지런히 담긴 접시를 상에 올린다. 곧이어 말간 새우젓, 또각또각 썬 깍두기, 낭창낭창한 무생채무침, 터벅터벅 썰린 양파와 풋고추와 된장이 더해진다. 나는 남자와 작은 유리잔을 나눠 갖고 잔에 소주를 채운다. 그의 한숨이 깊다.

음식을 그에게 바투 밀어 놓는다. 남자는 순댓국을 후후 불어 한 입 넘긴다. 닭을 곤 물처럼 가볍고 담백한 국물은 금세 그의 몸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금방 솥에서 퍼온 흰 쌀밥에 고기 한 점과 육젓을 얹고 한입 가득 씹어 삼킨다. 그리고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다. 며칠 동안 배앓이 했던 고생을 다 보상받은 양 흡족한 표정이다.

나도 군침이 돌아 잘 삶아진 막창에 된장을 푹 찍어 입에 넣었다. 씹을수록 혓바닥에 기름이 흥건하게 고인다. 부추를 얹어 시원한 맑은 국물을 삼켜 식도를 데우고, 차가운 소주 한 잔을 끼얹으며 온탕과 냉탕을 오간다. 그런데 어째 입에서는 시원하다는 말만 연거푸 나온다. 어느새 남자의 얼굴엔 기름기가 돈다.

재개발이다 뭐다 때문에 시장 안으로 들어와 장사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순댓국을 끓인 지는 30년은 족히 됐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돼지머리와 내장을 삶고 국을 끓인다. 돼지사골은 넣지 않는다. 한숨 자고 일어나 밥을 하고 아침 8시가 되면 손님을 받는다. 머릿고기는 점심에 다 팔리는 날도 허다하다. 머릿고기 한 접시에 딸려 나오는 순댓국 그리고 소주 두 병까지, 만원짜리 두 장이면 충분하다.


70년이 넘은 창성옥의 선지해장국. 사진 김하늘
70년이 넘은 창성옥의 선지해장국. 사진 김하늘

4대째 이어진 창성옥

남자는 다시 좁은 길목 안으로 사라지고, 나는 남았다. 청도 반시 하나를 집어 반으로 쪼개 먹으며, 헤벌쭉한 표정으로 시장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상점은 문 닫을 채비를 한다. 가게 문을 닫고 나온 건장한 체격의 정육점 청년을 따라 갈림길에 접어들었다. 그의 걸음이 보챈 곳은 다름 아닌 해장국집. 그를 따라 자릴 잡았다.

“해장국 하나에 프라이 둘이요.” 곧이어 곰삭은 총각김치와 깍두기, 달걀프라이 두 개가 먼저 올랐다. 청년은 숟가락으로 프라이를 두어 번 자르더니 그릇째 들고 마신다. 그렇게 뚝딱 달걀 두 알을 해치우고, 또 두 알을 시켰다. 그리고 곧 해장국과 밥 한 그릇, 추가로 시킨 프라이가 나왔다. 뚝배기에는 여느 집과 다르게 꽤 짙은 색의 육수와 커다란 소뼈와 살코기, 신선한 선지, 달고 시원한 배춧잎이 가득 담겨 있다. 그는 해갈을 하듯 국물을 연거푸 떠 마시고 밥에 프라이를 얹고, 그 위에 국물을 끼얹는다.

그러곤 숟가락으로 반숙 프라이를 쪼개 뒤섞는다. 진한 국물에 달걀과 우거지가 서로 엉겨 죽처럼 녹진하다. 묵은 무김치를 잘라 먹는다. 김치는 계절마다 바뀐다. 깍두기는 상수처럼 변하지 않지만, 그날 무친 겉절이든 작년에 묻어둔 묵은지든 한 가지를 더해 늘 두 가지 김치를 낸다.

밥알을 후루룩 삼키고 선지는 툭툭 잘라 먹고 소고기를 반찬 삼아 먹고 김치까지 모두 비우니, 땀이 후두두 떨어진다. 두꺼운 손등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내고 벽에 달린 시계를 멍하니 바라보며 저녁 숨을 고른다.

창성옥은 4대째 이어 오고 있다. 시장에서 달걀프라이를 팔며 장사를 시작해, 제대로 터를 잡고 해장국을 끓인 지 벌써 70년이 넘었다. 내용도 맛도 실하고 깊지만 비법은 다대기에 있다. 굳이 깍두기 국물을 쏟아 넣을 필요가 없다. 애초에 국물에 얹어져 나오는 묽은 다대기 덕분에 해장국을 끝까지 시원하고 칼칼하게 먹을 수 있다.

청년은 시장 담벼락에 세워진 작은 스쿠터를 타고 시장 밖 불빛으로 사라졌다. 나는 다시 계단에 올랐다. 가늘고 허름한 위태로움은 어둠에 가려졌고, 네모난 불빛은 어느새 위성처럼 빛난다. 발갛게 타들어 가는 누군가의 시름은 재가 되어 남모르게 사라진다. 그렇게 밤하늘은 무너짐을 가리고 경계를 지워간다. 붙잡고 싶은 밤이다.


▒ 김하늘
라이스테크기업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