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마쓰다 코스모 스포츠는 전후 세대에 인기가 많다. 사진 황욱익
로터리 엔진을 장착한 마쓰다 코스모 스포츠는 전후 세대에 인기가 많다. 사진 황욱익

일본의 자동차 시장은 구조의 복잡성과 종류의 다양성으로 따지자면 세계 최고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이름 모를 경차부터 고급스러운 스포츠카, 독특한 테마를 가진 세단까지. 일본만큼 다양한 자동차 카테고리를 가진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클래식카 카테고리만을 놓고 보면 국제 클래식카 시장에서 일본의 위치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자본력 있는 큰손’ 정도에 지나지 않는 편이다.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1880년대 중반에 등장했고, 일본 최초의 자동차가 1902년 등장(엔진은 미국산)했던 것과 비교하면 세계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시차는 20년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클래식카 시장에서 일본산 클래식카 비중은 미미한 편이다.

그런데도 일본 클래식카 시장은 주목해 볼 만한 특징이 있다. 자동차 커뮤니티 모임 공지를 자동차 잡지(일본은 월간 자동차 잡지 종류만 50종이 넘는다)를 통해 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편이지만, 규모도 크고 다양성까지 갖춘 재밌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재패니즈 빈티지(Japanese Vintage)’라는 용어는 일본 제조사가 만든 클래식카를 대표하는 말로 쓰인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올드카’라는 용어도 일본에서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모델은 도요타 2000GT를 필두로 마쓰다 코스모 스포츠, 닛산 페어레이디 Z, 스카이라인 GT-R(하코스카 혹은 KPGC10) 등이 있다. 이 중 비교적 최근 국제 클래식카 시장에 등장한 페어레이디 Z와 스카이라인 GT-R의 경우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재패니즈 빈티지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보통 클래식카의 기준은 고가(高價) 모델이 되곤 하는데, 일본은 기준이 다른 편이다. 아버지가 사용했던, 혹은 누군가 오래 사용했던 대중적인 자동차까지로 범위가 확장하기도 한다. 일본 경차의 시작이라 불리는 스바루 360, 1970년대 초반에 나온 서니나 글로리아, 대중적이지만 장수 모델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크라운, 승용차 생산을 중단한 이스즈의 옛 모델들, 1990년대 ‘기술의 혼다’를 상징했던 타입 R 시리즈 등도 일본인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는 클래식인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부가티나 페라리 같은 유럽 클래식카 인기가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다. 또 대량 생산 체제에서 만들어진 미국 차만 수집하는 컬렉터도 있고, 특정 회사의 특정 모델만 고집하는 마니아, 상용차 마니아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에서 상위 고급 모델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런 상위 고급 모델은 대부분 거품 경제 시절 유입된 차로 주인이 바뀌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본 클래식카 시장에서 비중이 가장 큰 차는 대중적인 차들이다. 거래도 활발하고 전문 숍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소장의 의미도 있지만 이런 차는 지금도 일상 주행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보다 주차비나 도로 이용료, 자동차 검사 등 유지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본의 자동차 법률 때문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현재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클래식카 경매로 ‘RM 소더비’와 ‘본햄스’를 꼽는다. 국제 클래식카 경매는 국제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이 경매엔 매년 다양한 차가 등장한다. 이 자리에서 차종별 시세와 가치가 공인된다.

일본 차 중에 가장 먼저 국제 클래식카 경매에 등장한 차는 도요타의 2000GT다. 이 차의 최종 생산 대수는 351대에 불과하다. 출시 당시 경쟁 모델인 재규어 E타입이나 포르셰 911보다 1500달러 이상 비쌌던 2000GT는 국제 클래식카 시장뿐 아니라 일본 내 클래식카 시장에서도 각광받는 모델이다. 현시세는 상태와 연식에 따라 10억원에서 15억원 사이다.

1세대 스카이라인 GT-R은 4년 전쯤 처음 국제 클래식카 경매에 등장했는데, 당시 2억원 가까이에 낙찰되면서 일본 내 매물 품귀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경매에 등장하기 전까지 이 차 시세는 약 500만~700만엔 정도였는데, 경매 이후 값이 두 배 이상 뛰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가슴 뛰는 국제 클래식카 경매지만, 일반인은 참가가 매우 어렵다. 입찰 자격을 얻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대부분이 고가의 클래식카 위주이다 보니 웬만한 경제력 아니고는 경매 관람조차 쉽지 않다.


초대 GT-R 덕분에 덩달아 가치가 뛰고 있는 R32 GT-R. 사진 황욱익
초대 GT-R 덕분에 덩달아 가치가 뛰고 있는 R32 GT-R. 사진 황욱익
닛산 글로리아와 토요펫 픽업 같은 상용차도 마니아층이 두텁다. 사진 황욱익
닛산 글로리아와 토요펫 픽업 같은 상용차도 마니아층이 두텁다. 사진 황욱익

일본 클래식카 문턱 낮춘 ‘BH 옥션’

그런데 이 문턱을 낮춘 일등공신이 있다. 바로 2018년 출범한 ‘BH 옥션’이다. 이 경매장에서는 경매 대상의 가격대가 다양하다. 그래서 일본 내 클래식카 컬렉터부터 일반 마니아까지 타깃층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이 경매에서 10억원에 낙찰된 도요타 2000GT를 비롯해 20억원이 넘는 경주차도 있지만, 5000만원대의 대중적인 모델도 생각보다 큰 인기를 끈다. 특히 가격대가 낮아질수록 입찰자가 많아진다.

다른 특징은 BH 옥션을 통해 재패니즈 빈티지 가격이 방어된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 클래식카는 국제 클래식카 경매장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19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차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BH 옥션은 클래식카 시장 자체를 일본식으로 해석한다.

국적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경매장에 올라오는 클래식카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가 생산한 차가 주력이다. 여기에 현지 전문 튜너들이 제작한 튜닝카와 레이스카까지 있다. 쉽게 설명해 스바루 360 같은 대중적인 경차부터 각 제조사가 생산한 기념비적인 모델, 일본의 유명 튜너들이 제작한 컴플리트카, 레이스 출전을 목적으로 제작된(혹은 실제 레이스에 출전했던) 경주차까지 물건으로 나온다.

일본의 클래식카 시장은 독특한 다양성을 갖고 있다. 출시 당시 생산량이나 희소가치를 놓고 클래식카 가치를 판단하는 것보다 일본 클래식카 시장에서는 추억이 있는 자동차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이 시장을 통해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는 것은 물론, 나름의 방식으로 일본 클래식카 시장을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배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