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센주 라이프치히 전경. 클라라 슈만이 태어난 곳이다.
독일 작센주 라이프치히 전경. 클라라 슈만이 태어난 곳이다.

독일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이하 클라라)이 태어난 지 올해로 200년이 됐다. 그 덕분인지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로 알려져 있던 그녀의 삶이 다각도로 조명되고 있다. 클라라는 살아생전 여자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작곡가, 피아니스트, 음악 연구가로 살았던 그녀의 눈부신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클라라의 곡을 발굴하고 재해석하는 연주가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필자도 몇몇 연주에 초대받아 그녀의 곡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클라라의 작품은 간단히 말해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접근하기는 무척 난해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음악학자 베아트릭스 부샤르 박사를 만나고 나서야 그녀의 음악이 왜 어려운지 이해하게 됐다. 부샤르 박사는 클라라가 살면서 겪은 고통과 인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좌) 독일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 사진 플리커 / (우) 독일 피아니스트인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 슈만의 남편이다.
(좌) 독일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 사진 플리커 / (우) 독일 피아니스트인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 슈만의 남편이다.

이야기는 클라라가 태어난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시작했다. 클라라는 피아노 교육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클라라는 5세 때부터 혹독한 피아노 교육을 받았고 어린 시절부터 유럽 전역에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名)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아버지의 교육이 아동학대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클라라의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남편인 로베르트는 아버지의 문하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둘의 교제를 반대하면서 부부가 되는 길은 힘겨웠다. 아름다울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의 성격 차이로 힘겨웠다. 클라라는 사교적이었던 반면 로베르트는 소심하고 극도로 예민한 성격이라 부인이 자기 곁을 떠날까 봐 불안해했다. 부샤르 박사는 “이 부부는 다수의 자녀를 뒀다”며 “클라라를 잃고 싶지 않았던 로베르트에게 잦은 출산과 육아는 그녀를 자신 옆에 둘 수 있는 하나의 보호막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클라라는 결혼 이후 유럽 각지에서 쏟아지는 연주 요청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로베르트가 아내로서의 삶에 충실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로베르트가 소음에 예민한 탓에 집에서는 피아노 연습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여기다 로베르트는 매독에 걸렸고 청력 장애, 정신 질환도 앓았다. 이 모든 일은 클라라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1819년부터 1844년까지, 25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클라라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내했다. 그녀는 아픈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이자 음악가로 살았다. 클라라의 삶은 투쟁,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 그녀는 수많은 작품을 작곡했고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쇼팽,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펠릭스 멘델스존,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 등 동시대 최고 음악가들과 교류했다. 또한 경력 단절을 딛고 유럽 각지에서 연주회를 했다.

부샤르 박사와 클라라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집에 오는 길에 필자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음악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악보에 담긴 수많은 음표도 새롭게 보였다. 그녀의 작품을 연주하며 느꼈던 가슴 먹먹함은 어쩌면 클라라가 사는 내내 느꼈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아직 필자가 삶의 경험이 부족해 이런 감정을 낯설게 느끼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클라라 슈만
피아노 트리오 사단조 작품번호 17
피아노 보자르 트리오

클라라 슈만이 유산의 아픔 속에서 남편의 정신 질환 치료를 하던 1846년에 작곡한 곡이다. 이때 클라라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114㎞ 거리인 드레스덴으로 이사를 하는 등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이와 같은 아름다운 곡을 만들었다. 첫 악장의 메인 테마는 마음 한쪽을 휘젓는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이 곡을 연주한 보자르 트리오는 1955년 미국에서 결성됐다. 구성원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길레, 첼리스트 버나드 그린하우스,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 등 3명 모두 실내악 연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길레는 NBC교향악단의 콘서트 악장을 맡았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