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으로 돌아온 나무화석과 양심 편지. 사진 김진영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으로 돌아온 나무화석과 양심 편지. 사진 김진영

여행 가서 예쁜 돌을 주워온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돌은 그 지역의 풍토와 시간을 머금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서 예쁜 돌을 발견하면 집에 가져다 두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갖고 돌을 집으로 가져간다면, 특정 지역의 돌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제주도 역시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관광객이 제주도의 돌을 반출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제주도를 방문해 돌을 가져온 적이 있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돌이 제주도를 빠져나갔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현재 제주도는 돌이나 모래를 무단으로 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마련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런 일은 해외에서도 일어났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 국립공원(이하 페트리파이드)을 방문한 이들이 돌을 가져가는 것이다. 페트리파이드는 세계 최고의 나무화석 밀집 지역이다. 나무화석이란 오랜 기간 나무의 형태와 구조가 화석화된 돌이다. 이 공원에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아름다운 나무화석이 존재하는데, 오래된 것은 약 2억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페트리파이드를 방문한 사람은 ‘나무화석을 가져가고 싶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화석 조각을 ‘슬쩍’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그런데 나무화석을 가져갔다가 불운(不運)을 경험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기 시작했다. 나무화석을 집에 가져간 뒤 며칠이 지나자 냉장고와 에어컨이 고장 났다거나,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주식에서 돈을 잃었다거나 어머니가 입원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무화석을 가져오면 불운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실제로 불운을 경험한 사람, 불운이 생길 것을 두려워한 사람이 ‘양심 편지’를 동봉한 나무화석을 페트리파이드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페트리파이드 자원 관리 부서는 돌려받은 나무화석과 양심 편지를 모았다.


사진집 ‘나쁜 운, 문제의 돌(Bad Luck, Hot Rocks)’ 표지. 사진 김진영
사진집 ‘나쁜 운, 문제의 돌(Bad Luck, Hot Rocks)’ 표지. 사진 김진영
돌려받은 나무화석을 한곳에 모아둔 ‘양심의 무더기’. 사진 김진영
돌려받은 나무화석을 한곳에 모아둔 ‘양심의 무더기’. 사진 김진영
나무화석. 사진 김진영
나무화석. 사진 김진영

사진작가 라이언 톰슨과 필 오르는 국립공원으로 돌아온 나무화석과 양심 편지 사진을 담은 ‘나쁜 운, 문제의 돌(Bad Luck, Hot Rocks)’을 만들었다. 이들은 나무화석이 사진에 잘 담기도록 하얀 배경에 돌을 놓고 사진을 찍었다. 양심 편지 사진도 담았다. 1934년부터 지금까지 도착한 1200여 개의 편지 중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담긴 편지를 사진집에 수록했다.

이 사진집에는 다채로운 모양의 돌과 저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내용이 담긴 편지가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한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돌은 너무 아름다워요. 하지만 저는 이 돌을 즐길 수가 없네요. 제 양심에 1톤의 돌이 얹힌 것 같거든요. 미안해요.” 한 꼬마는 메모지를 찢어 삐뚤빼뚤하게 다음과 같이 적었다. “국립공원 아저씨께. 이걸 가져가서 죄송해요. 저는 다섯 살인데 나쁜 일을 했어요. 앤디로부터.” 242번째 양심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작은 돌이 집에 가길 원하네요. 그래서 돌려보냅니다. 잘 돌봐주세요. 제가 그랬듯이요. 멋진 사막에서 달빛과 유성과 함께할 수 있도록 바깥에 잘 놓아주세요.”

돌을 가져가기는 쉬워도 원상 복귀시키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페트리파이드의 면적은 약 895㎢로 제주도 면적의 절반에 해당한다. 페트리파이드 관리자가 나무화석을 원위치에 돌려놓고 싶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돌려받은 나무화석을 한곳에 모아두기로 했다. 여기에 ‘양심의 무더기(Conscience pile)’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양심의 무더기를 만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방문객이 나무화석을 반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나무화석을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도둑’에 비유하는 등 협박하는 방식을 썼다. 지금은 설득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양심 편지를 자료 보관소에 모아서 전시하는 것도 설득 방법의 하나다.

두 번째 이유는 돌아온 돌의 상당수가 페트리파이드에서 반출된 돌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트리파이드의 박물관 큐레이터 매슈 스미스는 “사람들이 돌려보낸 돌 일부는 내가 공원에서 결코 본 적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원으로 되돌아온 돌 가운데 일부는 페트리파이드와 전혀 상관없는 돌이라는 이야기다.

불운에 대한 미신을 페트리파이드가 만들었는지, 아니면 실제로 돌을 가져갔다 불운을 경험한 사람의 입을 통해 퍼지게 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운 이야기가 나무화석의 반출을 막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나쁜 운, 문제의 돌’은 다른 곳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돌 반출’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도록 해준다.

가까운 제주도로 돌아와 보자. 제주도를 오가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제주국제공항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적발된 자연석이나 모래는 제주돌문화공원으로 간다. 하지만 아직도 제주도 돌의 반출이 금지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돌을 반출하다 적발된 사람 대부분은 반출 금지 조항을 몰랐다고 답한다. 물론 일부는 변명일 수도 있지만, 나는 ‘몰랐다’고 말한 이들의 말을 믿고 싶다. 돌 한 점 없는 제주도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집 ‘나쁜 운, 문제의 돌’은 특정 지역의 돌을 반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전파한다. 돌 사진과 양심 편지라는 매우 아름다운 형식을 통해 말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