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시 세계를 재조명한 시선집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를 펴낸 박상순 시인. 사진 민음사
이상의 시 세계를 재조명한 시선집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를 펴낸 박상순 시인. 사진 민음사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
이상 지음︱박상순 해설︱민음사
464쪽︱1만6000원

시인 이상(李箱·1910~37)은 건축가였고 화가였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활자의 조형성을 예술화하는 타이포그래피에도 일찍 눈을 떴다. 동료 시인 김기림의 시집 등 책 표지 디자인을 맡아 남다른 재능을 과시했다.

이상의 후예가 되고 싶은 시인은 많다. 그중에서도 2017년 미당 문학상을 받은 박상순 시인이 돋보인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나온 박 시인은 화가일 뿐만 아니라 북디자이너로 활동해 왔다. 1990년대 이후 민음사 책 표지를 도맡아 꾸몄기 때문에 책 애호가라면 그의 북디자인 솜씨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의 시 세계도 실험적 기법으로 언어의 회화성과 음악성을 두드러지게 내세운다는 점에서 이상 문학의 적자(嫡子)라 할 만하다.

박 시인이 최근 시각 예술성의 관점에서 이상의 시 세계를 재조명한 책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를 냈다. 이상의 시 중 50편을 골라 저마다 해설을 붙인 시선집이다. 2020년 이상 탄생 110주년을 앞두고 그의 전위 문학이 21세기 감각을 통해 새롭게 주목되는 현상을 이끌고 있다.

박 시인은 이상의 시를 ‘실험적 시각 시’라고 풀이했다. 그는 “이상은 서양화의 표현 기법을 문학적으로 전환해 감정과 상징에서 벗어난 시각중심주의로 한국 모더니즘 시의 역사를 열었다”며 “실험적, 회화적 언어로 쓴 이상의 시는 억압적 질서에 대한 문학적 해부를 품은 한국 시의 혁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나온 시선집의 제목이 된 시 ‘나는 장난감 신부와 결혼한다’의 원제는 ‘I wed a toy bride’다. 이상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일부러 제목만 영어로 쓴 것은 언어의 이질성을 시각화해 시가 지닌 기이함을 불거지게 하려던 의도로 풀이된다.

“장난감 신부 살결에서 이따금 우유 내음새가 나기도 한다”라고 시작한 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머지아니하여 아기를 낳으려나 보다. 촛불을 끄고 나는 장난감 신부 귀에다 대이고 꾸지람처럼 속삭여본다”라거나 “장난감 신부에게 바늘을 주면 장난감 신부는 아무것이나 막 찌른다/ 이것은 장난감 마음속에 가시가 돋아있는 증거다. 즉 장미꽃처럼….”

1936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요즘 공상과학(SF) 영화의 사이보그를 연상케 할 정도로 최첨단 상상력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공학자뿐 아니라 미학자도 자주 쓰는 표현인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인간과 어설프게 닮은 로봇이 주는 불쾌감)’의 느낌을 강렬하게 안겨준다.

박 시인은 “이 시의 장난감은 초현실주의 마네킹의 일종”이라고 풀이했다. 19세기 서양에서 움직이는 태엽 인형이 유행한 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인형과 인간 육체가 뒤섞인 마네킹을 회화에 등장시켰을뿐더러 설치 미술로 제작하기도 했다.

초현실주의 마네킹은 서구 문명에 반항하면서 도발적인 에로티시즘을 드러냈다. 박 시인은 “인간화한 태엽 인형이나 마네킹은 21세기적 오브제”라며 “문명에 구속된 인간 몸에서 움직이는 마네킹을 발견한 것이 이상의 현대성”이라고 감탄했다.

연작시 ‘위독(危篤)’ 중 한 편인 ‘매춘(買春)’이라는 시 제목은 흔히 쓰이는 단어 ‘매춘(賣春)’과는 무관하다. 중국 당나라 시에선 ‘술을 산다’는 뜻으로 통용됐다고 한다.

박 시인은 “이 시는 술에서 촉발해 그것을 시적으로 전환한 작품이고, ‘술에 취한 시대의 위독한 풍경’을 보여준다”며 “이상은 전통 문예를 무조건 파기하고 거부한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모색을 시도했다”고 평가했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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