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 중인 테오도르 쿠렌치스. 사진 카지모토
지휘 중인 테오도르 쿠렌치스. 사진 카지모토

해외 클래식 악단의 2020년 내한 공연 일정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1972년생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이끄는 러시아 오케스트라 ‘무지카 에테르나’의 방한 공연(4월 7~8일)이 눈길을 끈다.

쿠렌치스는 그리스 아테네 출신으로 그리스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했다. 1994년 러시아로 건너가 지휘계의 대표적인 원로이자 거장인 일리야 무신에게 교육을 받았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에서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조수를 거쳤다. 여기까지는 여느 지휘 지망생의 행로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쿠렌치스는 거장의 주변에 있다가 점차 이름을 알리고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등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면서 경력을 쌓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작은 도시 페름을 근거지로 삼았다. 그는 페름에서 무지카 에테르나를 창단했다. 소속 연주자는 직접 선발했다. 그는 무지카 에테르나를 이끌며 러시아 바로크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등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클래식 음악계를 개혁하려면 구체제가 굳어진 러시아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니라,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은 러시아 중소 도시에서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2019년 한 해 동안 클래식 업계에선 동서양을 불문하고 쿠렌치스에게 열광하고 있다. 지난 2월 무지카 에테르나는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서 공연을 했는데 표가 모두 팔렸다. 11월 29~3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공연 역시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는 쿠렌치스가 보여준 음악적 특징 때문이다. 쿠렌치스의 매력은 ‘기존과 다른 소리’를 내게 하는 데 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고전 음악이 지금까지와 다른 전혀 새로운 음악으로 들린다. 그가 지휘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비창’, 말러 교향곡 6번은 신선하면서도 특별한 기운을 전한다.

독일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나 오스트리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복고적인 느낌이 강하면서도 록 밴드의 신보(新譜)처럼 현대적 감각이 물씬 느껴진다.

일찌감치 2008년 프랑스 파리 오페라는 쿠렌치스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러시아 페름의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은 2010년 쿠렌치스를 예술 총감독으로 영입했다. 이후 페름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은 러시아 클래식 음악계의 최고 상이라 할 수 있는 ‘황금 마스크상’을 여섯 번 받았다.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 포스터. 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 포스터. 사진 페이스북 캡처
테오도르 쿠렌치스. 사진 페이스북 캡처
테오도르 쿠렌치스. 사진 페이스북 캡처
테오도르 쿠렌치스 앨범. 사진 페이스북 캡처
테오도르 쿠렌치스 앨범. 사진 페이스북 캡처

서유럽에서도 쿠렌치스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 2012년 독일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열린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 때 관심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독일 오페라 잡지 ‘오페른벨트’는 2016년 ‘올해의 지휘자’로 쿠렌치스를 선정했다. 이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악단이 쿠렌치스에게 구애를 펼쳤다.

쿠렌치스는 2018년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새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성공 가도를 이어 가는 중이다.

쿠렌치스는 교향곡이 작곡됐을 당시의 악기 구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베토벤과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을 지휘할 때 자신의 관점에 따라 필요한 악기 구성을 바꾼다. 악기를 배치하는 정형화된 공식도 없다. 때로는 연주자가 일어서서 악기를 다루도록 해 전혀 다른 소리가 나도록 한다.

쿠렌치스는 자신만의 해석을 더한 음악으로 클래식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한다. 그는 2005년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내게 10년의 시간을 주면 클래식 음악을 살려내겠다”며 패기에 가득 찬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쿠렌치스는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상론을 펼치고 있고, 이에 호응하는 관객도 상당하다.

하지만 관객이 쿠렌치스가 지휘를 맡은 연주를 반복적으로 찾을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그루브와 비트를 넣고, 관현악단을 록밴드처럼 대하려는 태도는 쿠렌치스만의 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쿠렌치스 이전에도 클래식을 전통에서 벗어나 해석하려고 한 사람이 있었다. 다만, 현재 쿠렌치스가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시도가 가장 세련됐을 뿐이다. 놀라움이 감동으로 지속할지는 쿠렌치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