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앞마당에 전시된 설치 미술 작품.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앞마당에 전시된 설치 미술 작품.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인천 영종도에 있는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은 46개의 축구장을 합친 것만큼 크다.  파라다이스그룹은 이 드넓은 부지에 말 그대로 하나의 도시, ‘city’를 건설했다. 숙박시설과 카지노뿐만 아니라 놀이동산 같은 쇼핑몰(앤티크한 유럽 감성의 트램도 돌아다닌다), 유명 스파숍 ‘씨메르’, 동북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자음악(EDM) 클럽 ‘크로마’도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환락의 도시가 동시대 유명 예술가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오이부터 수보드 굽타, 로버트 인디애나, 박서보, 최정화의 작품 3000점이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전체를 채우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파라다이스시티는 ‘아트테인먼트 리조트’라고 불린다.

시외의 어느 모텔을 연상시키는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을 단 호텔의 격이 달라진 건 파라다이스 그룹의 전필립 회장과 그의 부인 최윤정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이사장의 공이 크다. 두 사람은 영국의 미술전문 계간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일 정도로 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파라다이스시티는 지난해 9월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를 선보였다.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는 예술전시 공간이다. 총 2층으로 설계돼 있으며 상설전시와 기획전시가 열린다.

개관 기념전 ‘무절제 & 절제(無節制 & 節制): Overstated & Understated’는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디렉터를 맡았다. 이 전시는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김호득, 이배 등 4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제프 쿤스는 인천을 찾아 파라다이스시티가 아트테인먼트 리조트가 되는 데 힘을 보탰다. 제프 쿤스의 헤라클레스 조각상은 상설 전시 중이다.

파라다이스시티는 내년 1월 31일까지 ‘랜덤 인터내셔널: 피지컬 알고리즘(RANDOM INTERNATIONAL: Physical Algorithm)’ 전시를 연다. 이는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랜덤인터내셔널’의 개인전으로 미디어 설치 작품 10점을 살펴볼 수 있다.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에서 주로 활동하는 랜덤인터내셔널은 관객이 SF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8월 부산현대미술관에 전시한 ‘레인 룸’은 첨단 기술을 이용해 전시장 안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듯한 효과를 내며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는 모든 전시는 무료인 만큼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건축그룹 오브라 아키텍츠의 ‘영원한 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돼 있다. 사진 이미혜
건축그룹 오브라 아키텍츠의 ‘영원한 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돼 있다. 사진 이미혜
제프 쿤스의 헤라클레스 조각상.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 전시돼 있다. 사진 이미혜
제프 쿤스의 헤라클레스 조각상.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 전시돼 있다. 사진 이미혜
태국 출신 라라 레스메스·프레드리크 헬베리의 ‘밝은 빛들의 문’. 덕수궁 광명문 앞에 전시돼 있다. 사진 이미혜
태국 출신 라라 레스메스·프레드리크 헬베리의 ‘밝은 빛들의 문’. 덕수궁 광명문 앞에 전시돼 있다. 사진 이미혜

만약 인천까지 가는 게 부담스럽다면 서울 도심에서 아트 여행을 떠나는 것을 추천한다. 서울 덕수궁에서는 ‘덕수궁·서울 야외 프로젝트: 기억된 미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지난 2012년과 2017년에 열려 호평받았던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의 계보를 잇는 건축 전시다.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으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대한제국이 꿈꿨던 미래 도시의 모습을 현대 건축가의 상상으로 풀어낸 모습을 다룬다. 설치 작품은 총 5점으로 내년 4월 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덕수궁에서 다른 전시도 열리고 있다. 태국 출신의 라라 레스메스, 프레드리크 헬베리 작가는 덕수궁 광명문에 ‘밝은 빛들의 문’이라는 이름의 스크린을 설치했다. 고종 황제의 침전이던 덕수궁 함녕전 앞마당에는 홍콩 건축가 윌리엄 림이 황실의 가마와 가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전환기의 황제를 위한 가구’가 전시돼 있다. 윌리엄 림은 고종 황제가 썼던 가구를 새롭게 조합해 6개의 가구를 디자인했다. 관객은 이 가구를 만져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는 ‘영원한 봄’이라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이 작품은 한겨울에도 봄처럼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온실이자 시민이 제안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작은 광장 역할을 한다. 아르헨티나 출신 파블로 카스트로와 미국 건축가 제니퍼 리가 이끄는 건축그룹 오브라 아키텍츠가 제작했으며 내년 4월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 4인의 전시도 열리고 있으니 함께 관람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미술관을 초대형 새장으로 만든 설치 작품, 개인과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연구 결과물, SF 영화와 같은 영상을 살펴볼 수 있다. 멋진 예술의 파라다이스에서 즐거운 겨울 여행이 되길!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