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에 전시된 KTM의 ‘390어드벤처’ 모델. 오프로드 주행을 위해 앞바퀴는 19인치, 뒷바퀴는 17인치 휠을 장착했다. 서스펜션 작동 범위도 앞바퀴 170㎜, 뒷바퀴 177㎜로 긴 편이다. 사진 양현용
쇼에 전시된 KTM의 ‘390어드벤처’ 모델. 오프로드 주행을 위해 앞바퀴는 19인치, 뒷바퀴는 17인치 휠을 장착했다. 서스펜션 작동 범위도 앞바퀴 170㎜, 뒷바퀴 177㎜로 긴 편이다. 사진 양현용

매년 11월 세계 라이더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행사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다. EICMA(Esposizione Internazionale Ciclo Motociclo e Accessori·국제 모터바이크 자전거 및 용품 전시회), 1914년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모터바이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전통 있는 행사다. 이곳에서 유럽 중심의 세계 바이크 브랜드들은 다음 해에 선보일 신차를 공개하고 브랜드 디스트리뷰터들과 미팅하고 계약을 한다.

인터넷 시대가 오면서 모터쇼와 같은 전시 중심의 이벤트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EICMA만큼은 여전히 건재하다. 엄청난 규모에 취재하는 3일 동안 전시장 안에서만 보통 30㎞ 이상을 걷는다. 취재를 마치면 살이 눈에 띄게 빠질 정도다.

그럼 왜 하필 밀라노일까? 북부 이탈리아에 자리 잡은 밀라노는 유럽 모터바이크 시장의 주축인 4개국 이탈리아·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두카티, 아프릴리아, MV아구스타, 모토구찌, 베스파 등등 크고 작은 모터바이크 브랜드가 수없이 많다.

실제로 이탈리아 사람에게 모터사이클은 생활과 레저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에 라이더 용품이 빠지지 않을 정도다. 패션의 도시라는 배경에 힘입어 패션·섬유 전시회가 많이 열리는 만큼 전시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이 행사를 뒷받침하는 것은 ‘모터사이클’이라는 단어가 가진 힘이다. 이제는 완전히 생활필수품으로 여겨지는 자동차와 달리 모터사이클은 아직도 열정의 대상이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모니터 속 사진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열정적인 애호가가 많다는 뜻이다. 이게 온라인 시대에도 여전히 전시장을 사람들로 가득 차게 하는 힘이 된다.

올해 EICMA에서 가장 눈에 띈 신차는 이탈리아 수퍼바이크 브랜드 두카티의 ‘스트리트파이터 V4’다. EICMA 관람객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모터사이클로 꼽혔을 정도로 멋진 디자인을 갖췄는데, 성능 또한 뛰어나다. 라이더들이 수퍼바이크를 서킷이 아닌 도로에서 탈 때 더 다루기 쉽게 핸들 위치를 높이고 카울을 벗겨내는 등 커스텀한 것을 ‘스트리트파이터’라고 하는데, 모델명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스트리트파이터 V4의 기본 모델은 두카티의 다른 수퍼바이크 ‘파니갈레 V4’다. 파니갈레의 카울을 떼어내자, 그 아래 감춰져 있던 진짜 야수성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카리스마의 정점을 찍은 것은 좌우 두 쌍으로 구성된 날개. 존재감을 더할 뿐만 아니라 시속 270㎞에서 28㎏ 무게감으로 고속 안정성이 생겼다.

혼다 수퍼바이크 ‘CBR1000RR’의 변신도 눈에 띄었다. 그동안 출력보다는 작동에 집중했던 탓에 경쟁 모델보다 출력이 낮다는 라이더들의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동급 최고 수준인 214마력으로 이전 모델(192마력)보다 출력이 큰 폭으로 향상됐다. 지금까지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을 뿐이란 걸 단번에 증명한 것이다. 특히 차체 좌우에 새로 더한 윙렛(날개)은 강력해진 성능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윙렛은 고속으로 갈수록 차체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최적의 움직임을 제공하는 능동형 전자제어 서스펜션(충격흡수장치)과 차체의 움직임을 감지해 코너링 상황에서도 정밀하게 작동하는 ABS(잠김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 트랙션 컨트롤(뒷바퀴의 휠 스핀을 제어)을 탑재하는 등 각종 최첨단 기능을 추가했다.


왼쪽부터 두카티의 ‘스트리트파이터 V4’. 혼다의 ‘CBR1000RR’. MV아구스타의 ‘수퍼벨로체 800’. 사진 양현용
왼쪽부터 두카티의 ‘스트리트파이터 V4’. 혼다의 ‘CBR1000RR’. MV아구스타의 ‘수퍼벨로체 800’. 사진 양현용

모험심 자극하는 온·오프로드 바이크

최근 국내외를 불문하고 일명 어드벤처 바이크는 가장 인기 있는 장르다. 다카르랠리 18회 연속 우승으로 오프로드 레이스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KTM이 ‘390어드벤처’를 공개했다. 373㏄ 엔진으로 초심자를 위한 엔트리 레벨의 어드벤처 바이크다. 이미 시장에 많은 경쟁자가 있지만 390 어드벤처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집안 배경’만이 아니다. 오프로드에 대한 노하우가 그대로 들어 있는 차체 구성과 랠리머신 스타일의 디자인까지 라이더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오프로드 주행을 위해 앞바퀴는 19인치, 뒷바퀴는 17인치 휠을 장착했다. 서스펜션 작동 범위도 앞바퀴 170㎜, 뒷바퀴 177㎜로 긴 편이며, 뒷바퀴의 ABS만 해지해 오프로드를 더욱 다이내믹하게 달릴 수 있는 오프로드 ABS를 탑재하고 있다. 또한 동급 최초로 클러치 없이 변속할 수 있는 퀵시프터가 옵션으로 장착된다. 콤팩트한 사이즈와 가벼운 무게를 바탕으로 도심 속 라이딩부터 투어는 물론 오프로드 주행까지 즐길 수 있는 모델이다.

할리데이비슨도 빼놓을 수 없다. 크루저와 투어링에 특화된 브랜드였던 할리데이비슨이 이번에는 다양한 장르로 도전을 시작했다. EICMA에서 어드벤처 바이크인 ‘팬 아메리카’와 네이키드 모델인 ‘브롱스’의 프로토타입 모델 실물과 주행 영상을 공개했다. 그중 팬 아메리카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수랭 DOHC V트윈엔진을 얹고 145마력에 122Nm의 토크를 내는 고성능 어드벤처 모델이다. 호불호는 갈리지만 기존의 어드벤처 바이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앞바퀴에 19인치, 뒷바퀴에 17인치 휠을 장착하는 등 전형적인 온·오프로드용 구성이다. 그들의 일탈에 가까운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마지막 모델은 MV아구스타의 ‘수퍼벨로체 800’.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탄식이 나오게 만드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수퍼바이크다. 지난해 세리에 오로(Serie Oro·시리즈 골드)라는 이름의 한정판 모델을 먼저 선보였고 이번 행사에서 일반 버전을 공개했다. MV아구스타의 미들급 수퍼바이크 ‘F3’를 기본으로 1970년대 레이스 머신의 디자인을 재해석한 둥근 프론트 페어링을 얹었다. 외형의 레트로 스타일과는 달리 148마력의 3기통 엔진을 얹고 제대로 된 수퍼바이크 성능을 낸다. 특히 페어링의 우아한 라인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화이트의 등장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