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출신 사진가 헬무트 볼터가 펴낸 사진집 ‘후지산 주변 구름의 움직임’ 일부. 일본 기상학자인 마사나오 아베가 촬영한 구름 사진과 관련 기록이 적혀 있다. 사진 김진영
독일 베를린 출신 사진가 헬무트 볼터가 펴낸 사진집 ‘후지산 주변 구름의 움직임’ 일부. 일본 기상학자인 마사나오 아베가 촬영한 구름 사진과 관련 기록이 적혀 있다. 사진 김진영

구름은 우리에게 경이로움과 궁금증을 일으키는 대상 중 하나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펼쳐진 독특한 구름은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아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구름은 우리를 끌어당긴다.

구름은 사진 역사에서도 중요한 소재였다. 미국 ‘근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진가 엘프리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는 1925년부터 1934년까지 구름을 소재로 한 사진을 선보였다. 영국 사진가 앨빈 랭던 코번(Alvin Langdon Coburn)이 촬영한 구름 사진 6장은 영국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시집 ‘구름’에 실렸다. 미국 출신 ‘풍경 사진의 대가’ 앤셀 애덤스(Ansel Adams) 역시 산과 협곡 위로 펼쳐진 구름을 종종 촬영했다. 이들 사진은 대체로 구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구름을 이용해 예술 사진을 찍은 것이다.

이와 달리 독일 베를린 출신 사진가 헬무트 볼터(Helmut Völter)는 사진을 구름에 대해 기록하는 도구로 여겼다. 헬무트 볼터는 1880년대에 활동한 스위스 기상학자 앨버트 리겐바흐(Albert Riggenbach)가 촬영한 구름 사진부터 기상 위성 티로스(Tiros)가 우주에서 찍은 구름 사진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목적으로 촬영한 구름 사진을 모아 ‘구름 연구(Cloud Studies)’라는 사진집을 2011년에 출간했다.

볼터는 구름을 소재로 한 작업을 하던 중 일본 기상학자인 마사나오 아베(Masanao Abe·1891~1966년)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가졌다. 아베는 1920년대 후반부터 후지산 주변의 기류가 구름 형성과 이동, 분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는 후지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관측소를 세우고 1926년부터 1941년까지 15년 동안 구름 사진을 찍으며 구름을 연구했다.

볼터는 2011년 일본 기상청의 도움을 받아 도쿄에 사는 아베 가족을 만났다. 이들은 아베가 남긴 모든 자료를 화재로부터 보호되도록 설계된 별도의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볼터가 아베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이 자료는 세상의 빛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볼터는 창고에 무질서하게 놓여있던 아베의 자료를 5개월간 정리했다. 그는 이 과정에 대해 “아베가 죽은 이후, 그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인 과학자나 역사가는 거의 없었다”라며 “1966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아베의 노트 뭉치, 과학 잡지와 책, 사진, 물리학 기구, 많은 물건이 끝없이 나오는 서랍과 상자를 들춘 것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완성한 책이 ‘후지산 주변 구름의 움직임(The Movement of Clouds around Mount Fuji)’이다. 이 책은 2016년에 세상에 나왔다. 아베는 구름을 연구했고, 볼터는 구름을 연구한 아베를 연구했다.


‘후지산 주변 구름의 움직임’ 표지. 사진 김진영
‘후지산 주변 구름의 움직임’ 표지. 사진 김진영
후지산 주변 구름 사진. 사진 김진영
후지산 주변 구름 사진. 사진 김진영
달력에 표시한 구름 사진 촬영 날짜. 사진 김진영
달력에 표시한 구름 사진 촬영 날짜. 사진 김진영

책의 전반부에는 1926년부터 1941년까지 찍은 구름 사진이 실려있다. 이들 사진에는 촬영 일자가 표시된 달력이 함께 담겨 있다. 책의 중반부에는 구름 사진, 그림, 메모로 구성된 현장 기록 노트와 1937년에 출간된 아베 책 일부가 나온다. 후반부에는 아베 삶과 연구 과정이 연대순으로 정리돼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 중심 역할을 하는 부분은 과학자였던 아베가 작성한 현장 기록 노트라고 할 수 있다. 세 개의 공란(空欄)으로 시작한 현장 기록 노트는 뒤로 가면서 사진, 그림, 문자를 기록하는 칸을 만들었을 정도로 정교하다.

현장 기록 노트에 담긴 사진은 구름의 전반적인 모양과 상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사진만으로는 구름이 흘러가는 방향이나 주변 기류 움직임을 알 수 없다. 이에 아베는 사진이 말해주지 않는 의미를 보충해 줄 두 가지 기호, 즉 그림과 문자를 추가했다. 아베는 화살표, 그림을 이용해 구름이 이동하는 방향을 나타냈다. 온도, 습도와 같은 기상 조건과 조리개 수치, 셔터 속도, 사용한 필터 등 카메라 관련 정보를 문자로 표시했다.

볼터에게 아베가 남긴 현장 기록 노트는 가장 중요한 자료였다. 그는 현장 기록 노트 상단에 적힌 일련번호와 일시(日時)를 기준으로 창고에 쌓여있던 수많은 사진에 순서를 매겼다. 사진을 촬영한 정확한 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볼터는 아베의 현장 기록 노트를 기반으로 사진집 ‘후지산 주변 구름의 움직임’에 담길 구름 사진 순서를 정했다. 볼터는 “아베가 사진에 부여한 번호와 사진을 찍은 날짜와 시간 정보는 사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고 했다.

‘후지산 주변 구름의 움직임’은 사진, 그림, 문자라는 서로 다른 기호가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가 구름을 바라보는 시선과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의 관점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자에게 구름 사진은 아름다움을 위한 도구가 아닌 연구를 위한 자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예술가들이 촬영한 사진이 담긴 작품집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독특한 출판물이다. 사진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지만, 우리가 말하는 통상적인 ‘사진집’과 다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