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셀버러의 과거와 현재. 오른쪽 첫 번째 건물이 현재 머셀버러 올드코스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다. 그 옆이 과거 이곳을 홈 코스로 삼았던 로열 머셀버러 클럽하우스와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의 클럽하우스였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머셀버러의 과거와 현재. 오른쪽 첫 번째 건물이 현재 머셀버러 올드코스 골프클럽의 클럽하우스다. 그 옆이 과거 이곳을 홈 코스로 삼았던 로열 머셀버러 클럽하우스와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의 클럽하우스였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머셀버러 올드코스의 클럽 하우스 내부를 둘러보면서 골프가 시작된 스코틀랜드에서 골프는 과연 어떤 스포츠였을까 궁금했다.

이곳은 격식과 옷차림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클럽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클럽 회원간 경기가 있던 이날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편안한 옷차림의 회원들이 아침부터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잔을 부딪치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었다. 외국에서 온 낯선 기자에게도 여기저기서 “맥주 한잔 사겠다”며 소매를 잡았다.

골프는 ‘사치 스포츠 논쟁’과 ‘성차별 논란’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스포츠다. 한국 골프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선수 활약이 두드러지지만 여전히 골프를 치는 사람은 특별소비세를 내야 한다. 골프(golf)가 ‘여자에겐 금지된, 오직 신사만을 위한(Gentlemen Only, Ladies Forbidden)’ 의 약자라는 농담은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미국과 영국, 일본 등엔 여전히 여성 회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클럽이 있다.

골프가 스코틀랜드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에는 왕실을 비롯한 귀족계급의 역할이 컸다. 기록으로 남은 세계 최초의 골퍼는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4세(1473~1513년)다. 제임스 4세의 재임 기간이던 1502년 왕실의 회계원이 세인트존스 타운(현재 퍼스)의 활 제조업자에게 클럽을 주문하면서 20실링을 지급했다는 문서가 있다.

제임스 4세를 비롯해 제임스 6세(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공동 왕으로는 제임스 1세), 그리고 제임스 6세의 어머니인 메리 여왕 등이 열렬한 골프 애호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 왕위에 오를 때 자신의 클럽도 가져갔다고 한다. 왕실은 또한 명망 있는 클럽에 ‘로열’ 칭호를 부여하면서 골프를 후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세인트앤드루스처럼 스코틀랜드에서 영향력이 컸던 교육과 교회의 중심 도시도 골프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스코틀랜드에서 골프가 특정 계층만의 놀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골프의 기원에 관한 가설 중 하나도 스코틀랜드 동해안의 어부들이 배에서 내려 집으로 가면서 그 시간을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이 게임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1552년 해밀턴 대주교는 링크스에서 세인트앤드루스 사람이 골프나 축구 하는 것을 허락했다. 16~17세기 교구의 기록을 보면 스코틀랜드 동해안 지방에서 교구민이 설교를 들어야 할 시간에 골프를 쳤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스코티시 골프 히스토리에 따르면 1795년 목사인 칼라일은 머셀버러의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일을 했으며 골프와 축구도 했다고 보고했다. 1811년 1월에는 최초의 여성 골프 대회가 머셀버러 올드코스에서 열렸다. 어부 아내들의 골프 대회로 머셀버러 골프클럽이 주최했다. 우승자는 부상으로 고기를 담는 바구니와 숄을, 준우승자는 2장의 손수건을 받았다. 이후 1867년에는 세인트앤드루스에 최초의 여성 클럽인 ‘더 레이디스 클럽 오브 세인트앤드루스’가 결성됐다. ‘최고(最古)의 클럽’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머셀버러와 세인트앤드루스는 이렇게 여자 골프의 첫걸음과도 인연이 깊다.

이런 기록들을 봤을 때 스코틀랜드의 골프는 위로는 왕실부터 아래로는 일반 대중까지 큰 사랑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골프를 즐기기에는 한계도 있었다. 당시 골프채나 공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 동물의 가죽 안에 오리나 거위 등의 깃털을 채워 넣는 ‘페더리(feathrie)’ 공의 경우 숙련된 장인도 하루에 2~3개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다. 따라서 값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머셀버러를 대표하는 윌리 파크 시니어는 장타와 출중한 퍼팅 실력으로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에서 첫 대회를 포함해 총 4회 우승했다. 사진 디 오픈 홈페이지
머셀버러를 대표하는 윌리 파크 시니어는 장타와 출중한 퍼팅 실력으로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에서 첫 대회를 포함해 총 4회 우승했다. 사진 디 오픈 홈페이지
머셀버러 클럽하우스는 평범한 서민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머셀버러 클럽하우스는 평범한 서민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낭만적 일화 가득한 머셀버러 올드코스

머셀버러 올드코스 9홀 가운데 2개 홀에서는 역사적 교훈과 함께 골프 여명기의 낭만적 일화를 들을 수 있다. 2번 홀(파4) 이름은 ‘무덤(The Graves)’이다. 전쟁에서 야포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1547년 핑키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 몰살당한 스코틀랜드 군인을 이 홀에 묻었다고 한다. 놀이에 빠져 전쟁 준비를 소홀히 한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4번 홀(파4)은 그린 뒤에 있는 ‘미세스 포맨스(Mrs Forman’s)’ 펍으로 유명하다. 1870년 당대 최강의 골퍼인 윌리 파크와 톰 모리스의 대결 때 일이다. 당시 관중은 머셀버러 선수 파크를 응원하면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원정 온 모리스의 공을 발로 차는 등 텃세를 부렸다. 그러자 모리스는 미세스 포맨스에 들어가 경기를 거부했다. 혼자서 경기를 마친 파크는 나중에 모리스가 코스로 걸어 나오자 자신이 이겼다고 선언했지만 경기는 법정까지 간 끝에 무효처리됐다. 1822년 영업을 시작했던 미세스 포맨스는 아쉽게 2015년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코스를 지켜보고 있다.

앞서 말한 윌리 파크 시니어(1833~1903)는 디 오픈 초대 챔피언으로 4차례나 디 오픈을 우승한 영웅이었다. 머셀버러를 주 무대로 활동한 그는 다른 프로골퍼처럼 캐디 출신이었다. 나중에 클럽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키가 컸고 어마어마한 장타에 퍼팅 실력도 뛰어났다. 공격적인 골프를 했으며 “재미로 골프를 한 적이 없다. 상대를 박살 내기 위해 골프를 한다”고 말하곤 했다.

파크의 동생인 멍고(1836~1904년)도 디 오픈에서 한 차례 우승(1874년)했고, 그의 아들 윌리 파크 주니어(1864~1925)는 두 차례 (1887∙89년) 우승했다.

머셀버러 올드코스 클럽하우스 정면에는 머셀버러 출신의 디 오픈 챔피언 5명의 얼굴 부조상이 있다. 윌리 파크 부자(父子)와 멍고 파크 그리고 디 오픈 3승의 밥 퍼거슨(1846~1915), 1승을 거둔 데이비드 브라운(1861~1936년)이다.

이곳 캐디 출신으로 기자를 안내한 데이비드 맥그래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원들은 골프의 역사와 이 지역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길 좋아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골프를 사랑한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예전 모습대로 골프를 즐겼으면 한다. 그게 우리 바람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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