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마켓. 밤이 되자 노란 조명이 도시를 비추고 있다. 사진 이우석
독일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마켓. 밤이 되자 노란 조명이 도시를 비추고 있다. 사진 이우석

큰일이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에 크리스마스가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흥겨운 분위기가 사라졌다. 못살았다지만 예전엔 성탄 분위기만큼은 요즘보다 더 화려했다. 즐길 거리가 많아져서 그런지 거리는 썰렁하다. 트리 장식은 유통업체가 마지못해 매년 갖다 놓는 듯하고 캐럴은 다국적 커피전문점에서만 들을 수 있다.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지금 독일에 가면 있다. 분명하다.

운이 좋았는지(?) 프랑스 파리와 독일 동부 작센주를 크리스마스 즈음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둘 다 흥겹고 떠들썩했지만 차이는 분명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는 다소 인위적·상업적이었고 작센주는 진정성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축하 분위기였다. 작센주를 대표하는 도시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소개한다.

독일의 크고 작은 도시라면 어디를 가나 광장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차려져 12월의 밤을 밝힌다. 종교행사라기보다 지역 전통 축제에 가깝다. 그 역사가 무려 600년에 이른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종주국은 개신교가 태동한 독일이다. 그중에서도 드레스덴 등 중부 독일 작센 지역이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가장 유명하다.

독일의 겨울은 춥다. 하지만 독일 중부 지역에 사는 많은 이들은 크리스마스 마켓에 몰려나와 뜨거운 글뤼바인(와인에 생강 등을 섞어 데운 음료)을 마시며 한 달 내내 축제를 즐긴다.

라이프치히는 작곡가 바흐와 멘델스존, 슈만 등이 활동해 ‘음악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옛 동독 지역이었지만 독일월드컵 예선 당시 우리 경기(프랑스전)가 열려 잘 알려졌다. 라이프치히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대학을 다니며 파우스트 작품을 구상했고, 또 정치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평화혁명이 일어난 도시이기도 하다.

교통과 물류 중심 도시 라이프치히 크리스마스 마켓의 역사는 1458년부터다. 시내 중심가 6개 지역에서 한 달여간 불을 밝힌다. 마켓에서는 퍽 다양한 것을 판다. 나무 공예, 크리스마스 장식, 직접 만든 카드와 인형 등 구경거리가 많다. 직접 구운 빵과 수프 등 먹거리를 제외하고는 겹치는 것이 별로 없는 것도 신기하다.

뭘 나눠주는 것이 아닌데 마켓은 인산인해다. 많은 시민이 옷을 껴입고 나와 따뜻한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굴비만큼이나 짠 부르스트(소시지)를 먹으며 달콤한 글뤼바인을 마시고 농담을 나눈다.

붉은 지붕에 직선적 아름다움이 녹아있는 건물, 오래된 성당과 교회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조용하다. 오스트리아 빈처럼 화려하지도 독일 베를린처럼 웅장하지도 않다. 호두까기 인형처럼 수수하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웰메이드 도시가 라이프치히다. 성 토마스 교회, 성 니콜라이 교회 등 옛 영화를 오롯이 간직한 건축물이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더욱 띄운다.

물류 중심지로 돈이 넘쳐나던 라이프치히에서는 당연히 음악이 발전했다. 귀족과 성직자가 스폰서 역할을 하니 예술가들이 모였다. 그중 한 명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였다.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지휘자로서 성가대를 이끌었고 오르간을 연주하며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성 토마스 교회에 가면 바흐의 동상, 그가 잠들어 있는 곳, 그가 썼던 작곡 노트와 악기 등 유품이 전시돼 있다.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의 삼각관계 역시 이 도시에서 펼쳐졌다. 두 명의 유명한 음악가가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사모했다. 슈만과 6세, 브람스와는 14세나 차이 나는 연상녀 클라라 슈만을 둘러싼 러브 스토리는 슈만 박물관에 역사로 남아있다.

괴테가 대학생 시절에 다녔다는 레스토랑이 지금도 남아있다. 괴테가 다니던 식당 ‘아우어바흐켈러’는 1525년 개업했다는데 지금은 지하인 것을 보니 옛 건물 그대로는 아닌 듯하다. 어쨌든 ‘파우스트’ 장면을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해 놓았고 손님도 바글바글했다.


원조 크리스마스 마켓 드레스덴

원조 크리스마스 마켓을 내세우는 곳은 드레스덴이다. 드레스덴은 라이프치히와는 다른 느낌이다. 도심 속으로 커다란 엘베강이 흐르고 그림 같은 성과 교회, 돌다리, 근세 대학의 뾰족하고 둥근 라인이 강변을 장식한다. 강 옆으로는 둔치에 공원이 조성돼 있다. 푸른 초록 강변을 따라 엘베강 크루즈 투어를 즐길 수 있다.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중 유명한 시장이 드레스덴에 있다. 따로 이름도 가졌다. ‘슈트리첼막트(Striezelmarkt)’는 1434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단정한 라이프치히에 비해 드레스덴은 웅장하다. 구도심에서는 온통 조각으로 치장한 츠빙거 궁과 드레스덴 성, 대성당, 슈탈호프 등 화려한 독일 바로크풍 옛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8세기 초에 지어진 츠빙거 궁은 위엄이 서려 있다. 넓은 옥외 연회장을 둘러싸고 정방형으로 이뤄진 궁전 내·외벽은 다양한 석조 작품으로 빼곡하다. 전쟁 중 소실되고 복원된 후 현재는 박물관이 돼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드레스덴 성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중 참혹한 폭격으로 인해 거뭇거뭇 그을린 모습이지만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라인에서 풍기는 위세가 대단하다.

성안에 보석박물관이 있다. 늘 궁하게 살았더니 이곳에 와서 하나하나 눈을 뗄 수 없었다. 정말 금은보화가 가득하다. 그냥 몇 캐럿짜리 보석이며 금 몇 냥이 아니다. 귀금속과 보석에 정교한 공예가 곁들여진 보물 중 보물이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무려 41캐럿짜리 녹색 다이아몬드다.

동방박사라도 된 것처럼 며칠간 크리스마스 마켓을 뱅뱅 돌았더니 지금껏 눈을 감으면 반짝반짝하는 환영이 보인다. 플라스틱이 아닌 실제 이 지역 침엽수가 연출하는 자연스러운 트리를 통해 진짜 크리스마스를 맛봤다. 아마 올해 12월 24일 밤에는 그날 본 산타가 우리 집에 다녀갈 것만 같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6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가는 길 인천에서 중부 독일 지역을 가는 방법은 경유 편밖에 없다.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은 터키 항공(www.turkishairlines.com/ko-KR)을 이용하는 것이 일정이나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이스탄불~라이프치히 노선은 매일 운항한다. 약 3시간 30분 소요.

여행 팁 독일관광청 홈페이지에는 크리스마스 마켓 관련 웹페이지(www.germany.travel/kr/specials/christmas/christmas.html)가 제공된다. 각각 운영 시간과 링크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해 카운트 다운 이벤트 정보 역시 웹사이트에서 제공 중이다. 독일은 12월 31일에 많은 바와 클럽이 전야제 파티를 진행하며 야외 페스티벌도 동시에 연다. 베를린 등 대도시에서는 라이브 음악과 불꽃놀이까지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