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로의 초대’ 등 몇 권의 책을 번역한 일본 문학 번역가이자 요양보호사 이은주. 유학까지 다녀온 실력파다. 3년간의 파란만장한 돌봄 노동을 담은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를 펴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미야자키 하야오로의 초대’ 등 몇 권의 책을 번역한 일본 문학 번역가이자 요양보호사 이은주. 유학까지 다녀온 실력파다. 3년간의 파란만장한 돌봄 노동을 담은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를 펴냈다.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번역가 이은주가 일본어 활자 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낸 첫 책은 자신의 돌봄 노동을 옮긴 책이다.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후 3년간 그가 돌본 노인들, 요양원의 풍경과 그들의 생의 마지막 시간을 정직하게 기록했다. 기저귀를 적시는 오줌처럼 갈피마다 고독과 고통의 냄새가 진동할 줄 알았건만, 생의 막바지에서조차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노인들의 일상 전투에 싱싱한 눈물과 웃음이 차고 넘친다. 우리의 보호자였던 부모가 늙고 병들 때,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바쁜 나를 대신해 어떤 보호를 받게 될지가 한눈에 보인다.

“아줌마, 우리가 둘이 사나? 둘이 사는구나!” “아이 맛있어. 이 아까운 걸 다 먹었다” “자네, 예뻐” “화이팅!” “제가 공부를 많이 해서 의사가 되면 병을 낫게 해 드릴 텐데···. 좋아요? 괜찮아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해드릴게요.”

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요양보호사와 노인들의 대화 기록은 어찌나 짠하고 어여쁜지. 논픽션 작가이자 요양보호사인 이은주를 시립 서부노인요양전문센터에서 만났다. 대청마루와 뒤주, 원예 화분과 중정 등 노인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인테리어가 곳곳에서 돋보였다.


왜 돌보는 노인들을 뮤즈와 제우스라고 부르나.
“누군가의 소중한 엄마, 아빠였잖나. 삶의 전쟁터에서 혼신을 다해 사셨고. 나의 뮤즈(muse·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신), 나의 제우스로 관계 맺으면, 내 손길이 좀 더 다정하고 공손해진다. 이분들을 하늘정원에 사는 신화 속 인물이라고 상상한다.”

김혜자 선생이 알츠하이머로 나온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엔딩에서 요양원 풍경을 잠시 접했다. 치매 환자들, 가족 그리고 밤새 돌아가시는 분들…. 그곳을 지배하는 관계와 감정은 무엇인가.
“느끼는 사람 마음이다(웃음). 그날그날 일하는 내가 쓸쓸하면 요양원이 적막강산처럼 보이고, 내가 추우면 나의 뮤즈와 제우스들도 옷을 많이 입혀드린다. 공동생활에 당뇨 환자도 많아 개인 음식이 금지인데, 나는 좀 유별나다. 새우깡이나 떡볶이도 몰래 드린다. 어르신들이 정말 좋아하신다. 고맙다고, 너 오기만 기다린다고. 음식 하나로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나이 드신 부모님을 요양원에 맡기고 죄책감을 느끼는 자녀들이 많다. 가족은 어떤가.
“의사도, 구청장도 잘나가는 자식은 얼굴 보기 힘들다. 노동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아들이 퇴근길에 쭈쭈바 한 봉지 사 들고 와서, 판소리도 하면서 다른 노인들도 웃겨주고 가더라. 며느님들은 남의 엄마인데도 계절별로 옷 싸서 오고, 남자들은 자기 엄마인데도 꿩처럼 얼굴 감추고 엄마 얼굴을 못 본다. 애틋하다.”

요양원이면 매일이 잿빛일 것 같지만,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하루가 총천연색이라고. 금방 죽겠다고 하던 사람이 살겠다고 아우성치고, 귀여움과 부러움과 질투와 배려가 뒤섞여 엉뚱한 데서 눈물보와 웃음보가 터진다.

죽음에 가까웠어도 사는 건 다 비슷하다는 게 안도가 됐다. 한편 함께 웃고 떠들던 존재가 어느 날 문득 사라지면 그 공기가 얼마나 무거워질까도 싶었다.
“간식을 주러 갔는데 그사이에 숨이 멎는 분도 있다. 요양원은 어르신들이 동요할까 봐 바로 침대를 치운다. 없었던 사람처럼. 그리고 바로 새 사람이 들어온다. 내 생각은 다르다. 한쪽 벽에 사진 한 장, 꽃 한 송이, 물 한 잔 놓아주고 잠시나마 애도하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절한 간격을 감지하는 예민함과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공간의 온도를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아는 마음을 지닌 이은주.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절한 간격을 감지하는 예민함과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공간의 온도를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아는 마음을 지닌 이은주. 사진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이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다들 마지막을, 죽음을 너무 서툴게 보낸다고 그가 옅게 한숨을 쉬었다. 식사를 챙기고 기저귀를 갈아주던 노인이 돌아가시면 요양보호사 또한 상실감을 견딜 수 없다고. ‘줄리엣 비노쉬’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독거노인이 돌아가셨을 때, 그는 홀로 애도하며 사진을 태웠다.

책 속에서 그는 요양원에서 100세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하지만 눈을 뜨면 100세 노인의 침대로 가서 싹싹하게 말을 건넨다. “따님이 일흔여덟 살인데, 앞으로 딸하고 요양원에서 같이 방 쓰면 좋겠다, 그쵸?” 짓무른 엉덩이에 콧노래를 부르며 로션을 발라준다. “개운하시죠?”

그렇게 시간당 1만원 남짓의 노동으론 환산할 수 없는 ‘섬기는’ 인생, 변기 물을 휘젓던 손으로 얼굴을 할퀴는 치매 어르신들을 어르고 달래는 그의 우아한 율동을 읽고 있으면, 그곳이 천국은 못 돼도 제법 살 만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말년에 어떤 요양보호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노년의 질’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가끔 TV에서 노인 학대하는 요양원 보고 기겁을 하잖나. 그런데 내가 일하면서 만난 요양보호사들은 다들 돌봄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였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다닌다.”

무엇보다 요양보호사에게 좋은 돌봄을 받고 싶으면, 제도와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겪을 미래가 달려있다”고.

일생이 타인의 돌봄으로 채워져 있다. 스스로 선택한 인생인가.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나는 왜 나를 착취하는가. 하하.’ 그런데 이것도 기질이다. 왜 과거에 통 큰 부자들이 그랬잖나. ‘대장부가 태어났으면 100명은 먹여 살려야지.’ 나도 그런 ‘기마이’가 있다. 일단 내 동생, 내 엄마 돌본 다음에 내 일을 해야지. 문학적 성취를 이뤄야지. 그런데 내 손이 필요한 상황이 계속 생겼다.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그걸 문학적 씨앗으로 승화시켰다. 어둡게 보면 진흙탕 같고 답답한 환경이지만, 내가 쓰면 그 삶이 예뻐지고 견딜 만하다. 동생, 조카, 손주 돌봄, 요양보호사, 번역···. 다 내가 좋아서 한다. 남을 위한 인생 같지만, 내 인생이고 내 선택이다.”

정성과 사랑이 많은 요양보호사이면서도 당신은 요양원에서 100세를 맞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가 뭔가.
“공동생활이 안 맞는다. 노인분들도 각자 처한 환경과 기질이 다르잖나. 그에 맞게 요양원, 데이케어센터, 재가 방문 서비스를 선택하시면 된다. 돌보는 입장에서도 나는 한꺼번에 여러분 돌보는 것보다 재가 방문해서 1인에게 집중하는 서비스가 더 잘 맞는다. 지금 나는 두 가정을 재가 방문 서비스하고 있다. 누워 계신 어르신 살펴서 치과도 모시고 가고, 신경정신과도 모시고 간다. ‘죽을까 살까’ 망설이던 눈동자가 사랑받아서 꽃처럼 피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쁨도 크다.”

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화내면 안 된다. 보호사가 화내면 상태가 무조건 악화된다. 그리고 탈의하고 씻는 것. 성별이 다르면 싫어한다. 충분히 관계가 형성되고도 항상 노크하고 ‘저 왔어요’ 하고 예의를 갖춘다.”

노년과 죽음을 그린 영화 ‘아무르’를 보면 부인의 머리를 함부로 빗기는 젊은 간병인을 남편이 내쫓는 장면이 나온다. 누워서 움직이지 못해도 ‘자기 취향’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구나, 깨달았다.
“우리 엄마도 내가 터치하는 걸 싫어한다. 영역을 넘으면 노여워한다. 어떤 분은 늦잠 자고 아침 대신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한다. 어떤 분은 마지막까지 기저귀 차길 싫어한다. 습관과 취향을 존중받는 게 중요하다. 나도 늙으면 그렇게 존중받고 싶다. 요양원에 들어가도 집에서처럼 9시 넘어 늦게까지 깨어 있고도 싶고.”

얼마 전엔 기품 넘치던 여배우 윤정희님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웠다.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라는 책도 권했는데, 치매 환자를 돌보면서 느낀 바가 남다를 것 같다.
“대개 ‘아침이야? 밤이야? 나는 누구야?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그런다. 어떤 뮤즈는 밤새 일어나 헤매고 걸으셨다. 처음엔 나도 ‘왜 그러실까?’ 화가 났지만, 이내 부끄러워졌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폭력이나 공격도 있지만 분노조차 우리들 문제다.”

치매노인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좋아진다고 한다. 저녁이 되면 요양원에도 쓸쓸한 공기가 퍼진다. 해질무렵증후군이다. “아파도 석양이 지면 마음이 스산해지고 어딘가로 가고 싶다. 꼭 누군가가 부르는 것 같다.”

어르신들을 대할 땐 말 한마디가 무척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뭐뭐 하실게요’ 같은 이상한 존대가 아니라 친밀한 환대의 언어를 쓰는 게 인상적이었다.
“호텔 서비스처럼 한다(웃음). ‘저랑 춤 한번 추실래요?’ ‘이렇게 해드리면 좋으시겠어요?’ 뮤즈로, 제우스로 대접하면서 내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애쓴다. 하하. ‘내가 멋있는 사람이라 좋은 걸 드린다’라는 거다. 그럼 그분들도 ‘화이팅’ ‘고마워요’ 하면서 가장 좋은 모습을 준다. 먹고 배설하고 옷 갈아입고···. 이런 일이 사실 서로에게 얼마나 지치고 소모적이겠나. 어쩌면 그래서 멋과 인격의 욕구도 커진다. 오줌도 새고 죽도 흘리지만···. 어리나 늙으나 ‘나 이렇게 존엄한 사람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아 줘요’라는 간절함이 있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뭔가.
“음식이다. 네모난 침대에서 할 수 있는 게 먹는 거니까. 미각만큼은 마지막까지 남아 금방 입속으로 삼킨 홍시도 아쉬워서 입맛을 다신다. 그리고 사랑받는다는 느낌, 터치가 중요하다. 입술에 바셀린 발라드리고 여윈 뺨을 쓸어드리면, 환히 웃으신다. 꾸미는 것도 좋아한다. 무기력한 사람은 씻지 않는다. 청결은 삶의 의지와 연관 있다. 데이케어센터에서도 할머니들은 식사 후에 꼭 손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 새로 바른다. 나는 요양원에 찾아오는 자녀분들에게 꼭 부모님 손톱 발톱 직접 깎아 드리라고 한다.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도 엄마는 목욕시키면서 손도 귀도 다 살펴보잖나.”

정서적 지지가 참 중요하겠다.
“그렇다. 몸져누워 계셔도 ‘힘내서 걸어 나가셔야죠’ ‘나가시면, 저 맛있는 거 사주세요’라며 미래를 나누면 희망이 생기고 관계가 생긴다. 퇴근할 때 ‘저 다녀올게요’ 하면 ‘빨리 다녀와’ 하고 기다린다. 식사도 못 하던 독거노인도 다정한 말을 들으면 리듬을 회복해서 싱싱해진다. 늘 얘기하지만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낫다(웃음).”

늙어 가는 부모님을 둔 자녀분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무작정 걱정할 것 없다. 부모님 상태에 따라, 자녀분들의 사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데이케어센터는 어린이집, 실버타운이나 요양원은 사립 기숙학교, 일반 기숙학교로도 비유한다. 크지 않아도 마을 안 요양원이 가장 좋다. 그래야 주말에 교회도 가고 딸네 집도 간다. 요양원 보내는 게 버리는 게 아니니 죄책감 느낄 것 없다. 죄책감이 없어야 잘 찾아간다. 찾아뵈면 옷도 직접 갈아 입혀 드리고 스킨십하고 드라이브로 콧바람도 쐬 드려라.”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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