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한 번 이겼다고 최종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 실패했다고 끝내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승리는 긴장을 풀고 안주하게 하지만 패배는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새로운 땅을 찾아 긴 여행을 하는 조셉(톰 크루즈·왼쪽)과 샤론(니콜 키드먼)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IMDB
인생은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한 번 이겼다고 최종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 실패했다고 끝내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승리는 긴장을 풀고 안주하게 하지만 패배는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새로운 땅을 찾아 긴 여행을 하는 조셉(톰 크루즈·왼쪽)과 샤론(니콜 키드먼)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IMDB

1892년 아일랜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조셉은 불공정한 관행에 항의하던 아버지가 죽고 빚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토지 관리인이 집마저 불태워버리자 복수하겠다며 지주를 찾아간다. 그러나 저격은 실패하고 낡은 총이 상처를 입힌 건 조셉 자신. 그는 사경을 헤매며 지주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지주의 딸 샤론은 사교와 체면과 가식에 갇혀 평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말을 타고 넓은 대지를 마음껏 달릴 수 있다는 자유의 땅, 미국으로 가서 멋지게 살아보는 게 꿈이다. 혼자 바다를 건너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던 그녀는 야생마 같은 조셉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샤론은 미국이 이민자에게 땅을 준다는 광고지를 흔들어 보이며 건강을 회복해가는 조셉에게 같이 가자고 말한다.

고향 땅을 떠나는 걸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조셉은 아일랜드의 절반을 가졌다고 생각할 만큼 부유한 지주의 딸이 뭐가 부족해서 미국으로 가겠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독선과 냉혹함으로 소작농들을 괴롭히고 집까지 불태워버린 토지 관리인 스티븐과 결투해야 하는 순간, 샤론이 끌고 온 마차에 뛰어오른다.

지주에게 총을 겨눴던 경험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었고 자신이 죽는 건 더 싫었기 때문이다. 그곳이 어디든 내 땅을 가질 수만 있다면 죽는 것보다는 가치 있으리라. 조셉은 샤론과 함께 대서양을 건넌다.

이상은 언제나 현실을 배반하고 현재는 늘 희망을 조롱한다. 보스턴항구에 도착했지만, 땅을 준다는 오클라호마주까지는 수천 마일. 더구나 귀중품을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된 그들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머나먼 타지에서 먹고사는 절박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땅은 있어도 자유가 없다고 불평했던 샤론은 생전 처음, 땅도 자유도 없이 꿈조차 꿀 수 없는 가난을 경험한다.

반면, 거친 사내들에게서 샤론을 지키겠다며 주먹을 휘둘렀던 조셉은 싸움의 재능을 발견하고 내기 권투장에서 스타가 돼 간다. 소작농에서 벗어나게 해줄 땅도,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할 자유도 없이 힘 있는 자에게 얻어터지는 인생만 알고 살았던 조셉은 얻어맞은 것 이상으로 갚아주고 상대를 때려눕히는 통렬함을 맛본다. 애쓴 만큼 돈을 벌고 모으는 재미도 배운다.

돈은 한 주머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조셉은 오클라호마에 가려고 모은 돈을 양복 사고 모자 사고 멋 내는 데 써버린다. 그러나 지주의 아름다운 딸과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라는 신분 차이를 그렇게라도 뛰어넘고 싶었을 조셉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론은 그가 속물이 됐다며 쏘아붙이기만 한다.

큰 판돈이 걸린 시합 날, 조셉은 목표한 돈을 단번에 벌어 권투를 그만두고 오클라호마로 떠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샤론이 추행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지고 만다. 판돈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뭇매 속에 조셉과 샤론은 또다시 빈손이 돼 눈보라 치는 거리로 내쫓긴다.

한 번 좋으면 두 번 나쁘고, 두 번 이기면 세 번 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가혹한 법칙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겨울에도 어디선가는 기어이 꽃이 피는 것, 그 또한 삶의 법칙이 아닐까.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거리를 헤매던 그들은 빈집에서 잠시 따뜻한 만찬을 상상하고 서로의 꿈을 나눈다.

“내 땅은 바람이 일렁이는 푸른 목초지야.” 샤론이 말한다. “내 땅엔 시냇물이 흐르고 나무도 많고 토양은 비옥하지.” 조셉도 말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키스의 달콤함도 잠시, 그들을 보고 놀란 집주인이 쏜 총에 샤론이 맞고 쓰러진다. 조셉은 아일랜드를 정리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샤론의 부모와 스티븐을 찾아가 살려달라며 그녀를 맡기고 떠난다.

조셉과 샤론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잃었다. 얼마쯤 모인 것 같고 무언가 이룰 것 같으면 여지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살았나 싶으면 죽을 것 같았고 죽었나 싶으면 다시 살아서 한발 한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사랑을 얻고 행복을 예감한 순간, 그들은 또다시 서로를 잃어버리는 시련에 빠진다. 새로운 삶이란 기존의 익숙한 삶 위에 덤으로 얹혀서 시작되지 않는다. 완전히 텅 비워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새 삶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희망도 사랑도 놓쳐버린 조셉은 철로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 땅을 얻기 위해 오클라호마로 향하는 기나긴 행렬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샤론과 나누었던 푸른 목초지의 꿈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 날 그는 땅 주인이 되라던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린다. “땅 없는 사내는 사내가 아니야. 땅은 사내의 영혼이니까.” 조셉은 눈을 뜬다.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마침내 오클라호마로 달려간다.

인생은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한 번 이겼다고 최종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번 실패했다고 끝내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승리는 긴장을 풀고 안주하게 하지만 패배는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조셉은 땅의 주인이 될 기회, 랜드 러시에 참가한다. 그는 자유의 땅에 자신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 샤론과 재회하고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지주 밑에서 소작농의 가난이 극에 달했던 1892년의 아일랜드와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그로부터 100년 후인 1992년에 세상에 나왔다. 조셉과 샤론이 자신들의 땅을 갖겠다며 달려갔던 오클라호마주 태생의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했고 ‘폭풍의 질주(1990)’에서 만나 부부가 됐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다.


2020년 기회의 땅의 주인이 되라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 떠오른 태양이 다르지 않을 텐데 인간은 왜 달을 나누고 해를 바꿔 새로운 태양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일까. 더는 개척의 시대가 아니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새로운 땅은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는 모든 게 미지의 세계, 개척의 땅이다. 새로운 태양과 함께 새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과 희망이 개척해야 할 새로운 세계다.

2020년의 태양과 함께 다시 태어난 당신, 가능성의 영토에 깃발을 꽂아라. 기회의 땅의 주인이 되라. 별처럼 머나먼 꿈일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용기 내어 내디딘 도전의 발걸음이 당신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유일지니.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