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국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이 낭송한 시 ‘기러기’로 널리 알려진 시인 메리 올리버의 젊은 시절. 사진 마음산책
2009년 미국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이 낭송한 시 ‘기러기’로 널리 알려진 시인 메리 올리버의 젊은 시절. 사진 마음산책

긴호흡
메리 올리버│민승남 옮김│마음산책
168쪽│1만3000원

2019년 1월 여든셋의 나이로 세상을 뜬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1935~2019)는 퓰리처상 수상 시인으로서 문학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게다가 시에 버금가는 산문 솜씨로도 이름을 떨쳤다. 올리버의 산문집을 이미 2권이나 낸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최근 그녀의 초기 산문집을 냈다. 책 뒤에는 그녀의 죽음에 조의를 표한 유명 인사들의 추도사가 쌓여있다.

“메리 올리버,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사람에게 삶의 신조로 삼을 말들을 남긴 당신에게 감사합니다.”(힐러리 클린턴)

“당신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의 축복이었습니다.”(오프라 윈프리)

“그녀의 말들은 자연과 정신계를 이어주는 다리였다.”(마돈나)

메리 올리버의 삶과 문학은 자연과 야생을 품고 사는 인간의 영혼을 예찬하면서, 고독 속에서 이뤄지는 개인의 내면 성찰을 묘사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 초기 문학의 ‘초월주의’와 ‘자연주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그런 전통을 현대화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미국인에게 웅숭깊은 친숙함과 구수함을 맛보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녀의 텍스트 역시 자연친화적 직관을 바탕으로 삼아서 그런지 동양의 현자(賢者)가 차분하게 속삭이는 음성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올리버는 책 서문에 “내게 일이라 함은 걷고, 사물들을 보고, 귀 기울여 듣고, 작은 공책에 말들을 적는 것이다”라고 썼다. 공책에 좋은 문장을 옮겨 쓰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권할 수 있다. “나는 적어도 세 개의 자아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과거의 어린아이가 있다. 물론 나는 더 이상 그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목소리를 멀리서, 가끔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을 수 있다. (중략) 다음으로 세심한 사회적 자아가 있다. 이 자아는 미소 짓는 문지기다. 시계태엽을 감고 삶의 일상성을 헤치고 나아가며, 지켜야 할 약속들을 마음에 새겼다가 꼭 지킨다. (중략) 분명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어린아이도, 시간의 종도 아닌 자아가 존재한다.”

올리버가 말한 세 번째 자아는 예술가의 창조적 자아다. 그녀는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지닌 자아 또는 ‘비범한 에너지의 자아’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그녀는 “예술의 순수성은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그런 것이 있다면)과는 다르다”라면서 “작업에 집중하는 예술가는 자신으로부터의 방해를 거부하고 작업에 몰두함으로써 에너지를 얻는, 그래서 그 작업에 대한 책임을 지는 어른”이라고 역설했다. 달리 말하자면, 굳이 예술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고독하게 창의성을 통해 비범한 일을 시도하는 모험가 모두 올리버가 말한 세 번째 자아의 인간이다.

올리버는 시인이었지만, 언어를 불신했다. 물론 시인이니까 그러는 게 당연했고, 산문에 그러한 시작(詩作) 메모를 남겼다. “꿈은 시간, 공간의 제약이 없다. 물론 아담은 이 세상의 사물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의 지평을 좁혔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꿈꾸기는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의 명상인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분명 꿈을 꾼다.”

2009년 9·11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당시 부통령 조 바이든이 낭송하며 전 세계인의 마음에 각인된 시 ‘기러기’와 퓰리처상 수상 시인으로 알려진 메리 올리버. 국내에서는 두 권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과 ‘휘파람 부는 사람’으로 독자들의 시적 허기를 단숨에 채워줬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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