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도쿄가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일본인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2013년, 도쿄가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일본인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은 아시아권에서 가장 많이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치렀고 2020년에 도쿄올림픽을 열 예정이다.

올림픽은 개최국이 자국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과시하고 공연 예술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 출신 예술인이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에 미친 영향력은 미미했다. 일본 출신 유명 지휘자인 오자와 세이지가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베토벤 ‘합창’을 지휘한 것 정도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일본 공연 예술의 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공들이고 있다. 지난 2018년에 발표한 도쿄올림픽 개회식 책임자 인선부터 업계의 눈길을 끌었다. 일본 전통 희극인 ‘교겐(狂言)’ 연출가 겸 배우인 노무라 만사이가 도쿄올림픽은 물론 패럴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통솔하기로 한 것이다. 만사이는 일본 싱어송라이터 시이나 링고 등과 함께 개막식과 폐막식 연출을 맡았다. 시이나 링고는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폐막식에서 일본 이벤트 총연출과 음악감독을 맡은 인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애니메이션 ‘슈퍼마리오’ 분장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1 2020년 도쿄올림픽 경기장인 ‘뉴 내셔널 스타디움’ 내부. 사진 블룸버그 2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왼쪽). ‘도쿄 봄 음악제’에 참여한다. 사진 도쿄 봄 음악제 3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한 장면. 사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 4 일본 유명 가부키 배우인 이치카와 에비조. 사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1 2020년 도쿄올림픽 경기장인 ‘뉴 내셔널 스타디움’ 내부. 사진 블룸버그 
2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왼쪽). ‘도쿄 봄 음악제’에 참여한다. 사진 도쿄 봄 음악제 
3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한 장면. 사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 
4 일본 유명 가부키 배우인 이치카와 에비조. 사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조직위는 도쿄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도쿄 2020 일본 페스티벌’도 주최한다. 4월 18일 도쿄 체육관에서 막을 올리는 ‘찬란한 주인(Luminous, The Lord)’이 축제의 시작을 알릴 예정이다. 찬란한 주인은 가부키(일본 전통 연극)와 오페라가 결합한 융합극이다. 유명 가부키 배우인 이치카와 에비조, 우루과이 출신의 세계적인 바리톤 어윈 슈로트가 출연한다.

조직위는 다른 기관과 공동 주최한 공연도 마련했다. 매년 3~4월 도쿄도(東京都)가 주최하는 ‘도쿄 봄 음악제’가 대표적이다. 도쿄올림픽 개최에 맞춰 2020년 열리는 도쿄 봄 음악제의 출연진은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도쿄를 찾아 오페라 ‘맥베스’를 해설하고 지휘한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증손녀인 연출가 카타리나 바그너는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출할 예정이다.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열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노래를 부르는 부분을 제외한 대사를 일본어로 대체해 일본인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의 행정감독(최고경영자·CEO로도 불림)인 안드레아 쥐츠만은 오는 6월에만 도쿄에서 네 차례의 특별 공연을 하기로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역사상 단일 시즌에 2회 이상 일본을 찾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을 기념해 2019년 11월 일본 투어 당시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조직위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발트뷔네(베를린 필하모닉의 야외 원형 극장)에서 연주하는 분위기를 도쿄 한복판에서 연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조직위의 초청을 받지 않았지만, 일본 방문을 앞둔 해외 악단도 꽤 있다. 이들은 ‘도쿄올림픽 축하’라는 명분을 앞세워 도쿄 외 지역에서도 공연을 준비 중이다. 영국 필하모니아를 시작으로 스웨덴의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러시아의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 교향악단, 미국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이 일본을 찾을 계획이다.

과거에도 해외 악단이 올림픽 개최국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때는 러시아(당시 소련) 국립 교향악단과 프랑스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가 일본을 찾았다.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때는 독일 뮌헨 필하모닉이,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는 독일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과 독일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이 일본에서 공연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필하모닉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찾기도 했다.

도쿄의 클래식 음악 제작자들은 단기간에 돈이 몰리는 올림픽을 계기로 오페라 제작 틀을 정비했다. 일본 신국립극장(오페라와 발레 제작)과 도쿄문화회관(해외 오페라·발레 공연을 도쿄에 유통)이 도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며 협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양 기관은 ‘2019·2020 오페라 여름 축제’를 공동 운영한다. 2019년 오페라 ‘투란도트’에 이어 올해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공동 제작할 예정이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오페라 극장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과 상하이 그랜드시어터는 그동안 배타적인 경쟁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일본, 유럽 오페라 극장과 교류하는 것은 물론 중국 내 극장이 서로 협력하면서 새로운 제작 구조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