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70) 시인이 1월 10일 시집 ‘당신을 찾아서’ 출간을 기념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정호승(70) 시인이 1월 10일 시집 ‘당신을 찾아서’ 출간을 기념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당신을 찾아서
정호승 지음│창비│184쪽│9000원

정호승 시인이 새해 고희(古稀)를 맞아 열세 번째 시집 ‘당신을 찾아서’를 냈다. 1972년 등단한 시인은 어느덧 50년 가까이 활동해오면서 맑고 투명한 언어로 인간 영혼의 정화(淨化)를 추구하는 시 세계를 펼쳐왔다. 김소월 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받았다.

좋은 시는 산문이 아니라 노래라고 한다. 정호승의 시는 김소월 못지않게 숱하게 노래로 불려왔다. 그의 시 중 70여 편이 가곡과 대중가요로 불리고 있다. 새해 들어 낸 시집 ‘당신을 찾아서’ 역시 노랫말처럼 읊기 좋은 서정시 모음집이다. 특히 어른을 위한 동시 같은 작품이 여럿 들어있다. 수록된 시 중 ‘새벽별’이 대표적이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맑고 밝은 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시인이 사랑하는 대상은 새벽별처럼 맑고 밝은데, 그 광휘는 시인이 대상으로부터 얻는 기쁨의 분출을 선명하게 일러준다. 그러나 거꾸로 시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존재는 ‘가장 어둡고 슬픈 별’로 떠오른다. 시인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주체는 누구일까. 시인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를 ‘하느님’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있겠다. 그러나 시인이 지난해 모친을 여읜 사실을 생각하면, 자식을 늘 걱정하는 모성의 영혼이 시인의 상상력에 깃들었기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곡(思母曲)이 새벽별로 형상화됐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새벽별 같은 존재는 이 시에서 종종 ‘당신’으로 불리면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시인은 종교적 설화를 차용한 시를 통해 끝내 다다를 수 없을 절대자 혹은 실체를 찾아다닌 자신의 삶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시인이 찾는 ‘당신’은 외부 대상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에 깃든 이상적(理想的) 자아의 초상이기도 하다.

정호승의 ‘당신’은 만해 한용운의 ‘님’처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구도(求道)의 표상이지만 ‘당신’과 합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관념적 초월의 뜬구름을 노래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 오히려 세속을 살아가는 시인의 자기 성찰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고 형상화하기 때문에 ‘당신’이 어머니 혹은 추억의 연인, 시인의 이상적 자아 등으로 그때그때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그래서 시인의 ‘당신’은 시인의 영혼을 느닷없이 각성시키는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시 ‘상처’를 보면, 시인이 청년이었을 땐 산길을 가다가 움푹 팬 바위를 보고 제 삶의 상처와 동일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년이 되자 똑같은 바위를 보곤 영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늘에도 누군가 설운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흘리는 눈물을 저 바위가/ 저토록 한없이 견디며 받아내었구나/ 상처투성이 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산을 내려온다”라는 것.

사람은 청년기엔 제 상처가 억울해서 서럽게 울기 마련이다. 허나 노년기에 그 상처 때문에 시인의 존재 바깥에서 눈물을 흘린 ‘누군가 설운 사람’의 사랑을 깨달을 때 상처 입은 영혼의 정화에 이른다는 것일까.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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