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 본 뮤어필드 전경. 코스에는 나무가 거의 없고, 평평하다. 블라인드 홀도 없는 등 숨겨진 위험요소가 없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뮤어필드를 가장 공정하게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코스라고 평가한다. 사진 뮤어필드 홈페이지
하늘에서 내려다 본 뮤어필드 전경. 코스에는 나무가 거의 없고, 평평하다. 블라인드 홀도 없는 등 숨겨진 위험요소가 없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뮤어필드를 가장 공정하게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코스라고 평가한다. 사진 뮤어필드 홈페이지

뮤어필드(Muirfield)를 방문한 날은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골길을 달리다 이게 정말 뮤어필드로 가는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좁은 길목으로 들어가자 ‘웰컴 투 뮤어필드’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클럽의 입구 철제 대문에는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The Honou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1891년 올드 톰 모리스의 설계로 탄생한 뮤어필드 코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링크스 코스에서 흔히 보는 둔덕이 거의 없어 황량한 벌판처럼 보였지만 16차례 디오픈이 열렸던 격전지다. 전성기를 달리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이곳에서 열린 2002년 디 오픈 3라운드에서 10오버파 81타라는 굴욕적인 스코어를 적어내기도 했다. 당시 엄청난 비바람을 업은 링크스 코스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었다.

뮤어필드는 두 홀 연속 같은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바람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의 코스’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아웃 코스 안에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인 코스로 구성된 독특한 설계 때문이다. 바닷가를 따라 한 방향으로 나갔다가(out)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오는(in) 전통적인 아웃-인의 링크스 코스 형식을 벗어난 최초의 시도였다. 홀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잘 판단해서 샷을 날리고, 160개에 달하는 벙커를 피해야 좋은 스코어를 기대할 수 있다.

‘살아 있는 골프 전설’ 잭 니클라우스는 고향인 미국 오하이오주의 더블린에 자신의 코스를 만들면서 이름을 ‘뮤어필드 빌리지’로 지었다. 니클라우스는 디 오픈에서 세 차례 우승했는데 1966년 뮤어필드에서 열린 디 오픈에서 첫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뮤어필드는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 동쪽의 작은 도시인 걸레인에 있다. 에든버러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다. 걸레인은 인구가 4000명도 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 둥지를 튼 뮤어필드는 골프사에 한 획을 그은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이하 아너러블 컴퍼니)’의 홈 코스다.

뮤어필드를 알기 위해서는 아너러블 컴퍼니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1744년 에든버러의 리스(Leith) 지역에 ‘젠틀맨 골퍼스 오브 리스(Gentlemen Golfers of Leith)’라는 클럽이 설립돼 1800년 아너러블 컴퍼니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들은 창립 첫해 세계 최초의 오픈 대회를 열기로 했다. 당시 골프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역마다 경기 방식과 규칙이 조금씩 달랐다. 그러자 대회에 상으로 실버컵을 기증하기로 한 에든버러 시의회가 통일된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젠틀맨 골퍼스 오브 리스가 만든 13개 조항이 최초의 골프 규칙이 됐다.

최초의 골프 규칙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당시 만들어진 규칙을 보면 21세기에 와서도 그 기본 원칙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별도의 티잉 구역 없이 홀을 마친 후 한 클럽 범위에서 티샷을 했고, 티가 아닌 모래를 쌓아 그 위에 공을 놓고 티샷을 날렸다. 규칙을 보면 ‘상대에게 1타의 우위를 준다’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당시 게임이 대부분 매치 플레이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뮤어필드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과 철제 대문(작은 사진).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뮤어필드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과 철제 대문(작은 사진).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13개 조항은 다음과 같다.

① 티샷은 홀에서 한 클럽 이내 범위에서 해야 한다.

② 티업은 지면 위에서 해야 한다.

③ 일단 티샷을 한 볼은 교체할 수 없다.

④ 플레이를 위해 돌이나 뼈 또는 클럽에 손상을 줄 수 있는 것을 제거하면 안 된다. 다만 그린에서는 예외로 공에서 한 클럽 거리 이내의 것은 치울 수 있다.

⑤ 공이 물이나 진흙탕에 있을 때는 자유롭게 꺼내서 해저드 뒤쪽에서 티업하고 플레이할 수 있다. 어떤 클럽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단 공을 꺼낸 것에 대해 상대편에게 1타의 우위를 허용해야 한다.

⑥ 자신의 공이 상대의 공과 붙어 있으면 뒤쪽의 공을 플레이할 때까지 앞쪽의 공을 들어올려야 한다. 

⑦ 홀에 공을 넣을 때는 홀을 향해 정직하게 해야 한다. 홀에 이르는 자신의 선상에 있지 않은 상대편 공을 이용해 플레이하면 안 된다.

⑧ 공을 누가 가져갔거나 다른 원인으로 분실한 경우 원래 샷을 했던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다른 공을 드롭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운에 대해 상대방에게 1타의 우위를 허용해야 한다.

⑨ 공을 홀에 넣을 때 자신의 클럽이나 기타 부속물로 홀에 이르는 자신의 선을 표시하면 안 된다.

⑩ 공이 사람이나 말, 개 그 외 물체에 의해 멈췄다면 그 공이 멈춘 지점에서 그대로 플레이해야 한다.

⑪ 공을 치기 위해 클럽을 끌어당겨 내려쳤다면 그것은 1타로 여긴다.

⑫ 공이 홀에서 멀리 있는 사람이 먼저 플레이한다.

⑬ 도랑이나 배수로, 제방 등 링크스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은 해저드가 아니다. 또한 학생들을 위한 코스나 군대의 참호도 해저드로 보지 않는다. 이런 곳에 들어간 공은 꺼내서 티업하고 아이언 클럽으로 플레이한다.


18번 홀 그린 뒤에 있는 뮤어필드 클럽하우스. 뮤어필드는 금녀(禁女)의 공간이었으나 지난해 마침내 여성 회원을 받아들였다. 사진 뮤어필드 홈페이지
18번 홀 그린 뒤에 있는 뮤어필드 클럽하우스. 뮤어필드는 금녀(禁女)의 공간이었으나 지난해 마침내 여성 회원을 받아들였다. 사진 뮤어필드 홈페이지

첫 오픈 대회는 영국 전역의 모든 골퍼에게 문호를 개방(오픈)했지만 에든버러 골퍼 11명만 참가했다고 한다. 아너러블 컴퍼니는 1775년과 1809년 골프 규칙을 좀 더 가다듬는 작업을 했지만 1800년대 후반 들어 골프 규칙의 수정과 재정에 관한 권한을 로열 에인션트 골프클럽(R&A)에 넘겨주었다.

최초의 골프 규칙을 담은 진본은 한동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으나 1937년 낡은 책 속에서 발견됐다. 뮤어필드는 사본을 액자에 담아 전시하고 있다. 진품은 스코틀랜드 국립 도서관에 있다.

아너러블 컴퍼니는 회원만을 위한 공간을 늘 찾아다녔다. 1744년 설립 때는 5홀로 이뤄진 리스 링크스에서 게임을 즐겼지만, 그곳이 번잡해지자 1836년 동쪽으로 약 10㎞ 떨어진 머셀버러로 이동해 그곳을 홈 코스로 삼았다. 오늘날 머셀버러 올드 코스다. 여름에는 인근의 노스베릭에서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머셀버러에 클럽이 여러 개 생기자 1891년 현재의 뮤어필드 코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1892년부터 2013년까지 총 16차례 디오픈을 치렀다. 아너러블 컴퍼니는 남성 클럽을 고수하다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여성 회원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