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81층에 있는 한식당 비채나의 내부. 사진 광주요그룹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81층에 있는 한식당 비채나의 내부. 사진 광주요그룹

외국에서 온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서울 최고의 전망과 최고의 한식을 선물하고 싶다면? ‘비채나’는 하나도 쉽지 않은 두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레스토랑이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최상층부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음식은?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쉐린으로부터 별 1개(최고 3개)를 받았다. ‘외국 식당 가이드 따위 믿지 못하겠다’라면 대통령의 선택을 믿어보시라. 지난해 3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방한했을 때 친교 만찬이 이곳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외국 정상의 친교 만찬이 청와대 밖에서 열린 건 처음이었다. 대통령이 외국 국가수반을 모실 만한 식당이면 당신의 비즈니스 파트너에게도 괜찮지 않을까.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면 순식간에 81층으로 수직 이동한다. 식당에 들어서니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 하나 없는, 그야말로 탁 트인 전망. 발아래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이 석양을 받아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비채나의 맛을 충분히 경험하기 위해 저녁 코스 4가지 중에서 비교적 길고 가격대도 높은 ‘구학(龜鶴)’을 주문했다. 구학 코스는 ‘맞이 요리’ ‘처음 요리’ ‘중심 요리’ ‘채움 요리’ ‘맺음 요리’ 5코스로 구성돼 있다. 흔히 아뮤즈 부시, 애피타이저, 메인, 식사, 디저트라고 표기하는 코스를 순 한글로 바꾸되 어색하지 않으면서 그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나올 요리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맞이 요리로는 순두부, 처음 요리로는 잣수란·새우강정·생복만두, 중심 요리로는 금태 찜, 채움 요리로는 건조 숙성 채끝등심 반상·대구솥밥과 매생이굴국, 맺음 요리로는 석류식혜·약과·돼지감자빙과 등 총 10가지 음식이 차례로 나왔다. 잣옹심이는 감자 가루를 물 대신 오이즙으로 반죽하고 잣을 소로 채워 넣은 옹심이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모디 총리의 친교 만찬 때 극찬을 받은 메뉴이기도 하다.

비채나는 전통 도자기 브랜드 ‘광주요’를 모태로 하는 광주요그룹 가온소사이어티에서 운영한다.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이 한식 세계화를 위해 2003년 오픈한 ‘가온’의 세컨드 레스토랑 격이다. 이 이름은 ‘비우고 채우고 나누다’의 줄임말이다. ‘한식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비우고, ‘그렇다면 한식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통한 현대적 재해석으로 채우고, 이를 모두 함께 나누자는 뜻에서 조희경 가온소사이어티 대표가 지었다.

주방은 가온에서 오래 일하다가 2018년 이곳에 부임한 전광식 총괄 셰프가 맡고 있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가온은 맏형답게 완벽한 한식을 추구한다. 그만큼 진지하고 묵직하다. 장손(長孫)의 책임감에서 벗어난 차남(次男)처럼, 비채나는 가볍고 밝고 경쾌하다.

조희경 대표는 “가온이 한식을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기획했다면, 비채나는 레스토랑을 좋아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기획했다”고 했다. 가온이 한식의 궁극을 경험하고픈 미식가를 위한 공간이라면, 비채나는 한식을 즐기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매개로 삼아서 모임과 만남과 비즈니스를 하고픈 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를 바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가풍(家風)’을 무시할 수는 없다. 비채나가 가온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볍단 것이지, 마냥 실없지는 않다는 말이다.


비채나의 메뉴 중 하나인 성게알 솥밥. 사진 광주요그룹
비채나의 메뉴 중 하나인 성게알 솥밥. 사진 광주요그룹
비채나의 메뉴 중 하나인 채끝등심구이. 사진 광주요그룹
비채나의 메뉴 중 하나인 채끝등심구이. 사진 광주요그룹

옅은 맛에서 진한 맛으로 증폭되는 코스

음식은 전체적으로 간이 세지 않은 편이다. 간장이나 된장은 살짝 느껴지지만 갖은양념은 아예 없고, 고추장은 새우 강정에 매콤함이 느껴질 정도로만 자제해 사용했다. 기존 한식에 익숙한 입맛이라면 “이게 무슨 한식이냐”고 불평할 수도 있을 듯하다. 전 총괄 셰프는 고추장과 갖은양념을 의도적으로 뺐다. 그는 “한식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갖은양념과 고추장”이라며 “갖은양념은 쉽게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하지만 재료의 특징을 다 덮어버리고, 고추장은 코스의 흐름을 끊어놓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심심한 듯하다. 그러나 먹다 보면 섬세하지만 분명한 한식이다. 짙은 양념 맛에 가려지던 원재료의 풍미가 느껴진다. 방아꽃, 차조기꽃 등 전통 향신료가 이를 돕는다. 고추장과 갖은양념을 쓰지 않으면서 이만큼 한식다운 맛을 낸다는 건 전 총괄 셰프가 가온에서 오래 일하며 쌓은 한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방증이다.

옅고 약한 맛으로 출발해 짙고 강한 맛으로 증폭되며 마무리되는 코스 구성은 전 총괄 셰프가 한식에 대한 높은 이해도뿐 아니라 이를 음식으로 풀어내는 실력이 능숙함을 보여준다. 광주요에서 구운, 한국적이면서 아름다운 도자기 그릇이 눈으로 먹는 즐거움을 한층 더한다.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에게 더 사랑받고 인정받을 한식인 듯싶다.


비채나(Bicena) ★★

분위기 현대적이고 세련되면서도 한국적이다.

서비스 한식을 잘 모르는 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차분하면서 꼼꼼하게, 그렇지만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는 종업원이 인상적이다. 서비스와 음식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뤄진 결과로 보인다.

추천 메뉴 점심에는 산천(7만7000원) 하나만 있다. 저녁에는 일월(16만5000원), 구학(21만원), 죽송(17만5000~33만원), 백록(12만원)이 있다. 비채나의 진면모를 제대로 맛보려면 5코스로 구성된 구학 또는 구학 코스에 가온·비채나의 대표 메뉴인 홍계탕이 포함된 죽송을 권한다. 백록은 롯데월드타워 옆 뮤지컬 극장 ‘샤롯데씨어터’에 갈 손님을 위해 짧게 압축한 코스메뉴다.

음료 와인 페어링(5잔 9만5000원·7잔 15만원)을 추천한다. 노태정 소믈리에의 페어링 실력이 탁월하다. 음식과 술이 만나 각각의 맛과 향을 더욱더 끌어내고 상승시키는 페어링의 본뜻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다.

영업 시간 점심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저녁 오후 6~10시, 연중무휴

예약 권장

주차 편리. 발레파킹 서비스

휠체어 접근성 우수

★ 괜찮은 식당
★★ 뛰어난 식당
★★★ 흠잡을 곳 없는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