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에서 68년 만에 디 오픈이 다시 열렸다. 링크스 코스 중에서도 장쾌한 자연미가 손꼽히는 곳이고 인근에서 판타지 드라마 ‘왕좌의 게임’ 주요 장면이 촬영됐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에서 68년 만에 디 오픈이 다시 열렸다. 링크스 코스 중에서도 장쾌한 자연미가 손꼽히는 곳이고 인근에서 판타지 드라마 ‘왕좌의 게임’ 주요 장면이 촬영됐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공항에는 이 지역의 관광 매력을 알리는 대형 광고판이 있었다. 그중 가장 자주 인상적으로 나오는 것은 ‘북아일랜드, 왕좌의 게임 영토(NORTHERN IRELAND, GAME of THRONES TERRITORY)’였다. 2019년 시리즈를 마무리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엔 철의 왕좌를 놓고 영웅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드래곤과 백귀 등 초현실적 캐릭터가 등장한다. 또 ‘골프를 위해 만들어진 노던 아일랜드(Northern Ireland Made for Golf)’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판도 인상적이었다. 드래곤이 날아다니는 신화시대에 어울리는 풍광을 지닌 곳이자 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이상으로 아름다운 링크스 코스를 지닌 곳이 북아일랜드다.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은 벨파스트에서 북쪽으로 80㎞가량 떨어진, 인구 1만 명이 채 안 되는 해안가의 작은 휴양 도시 포트러시에 있다. 평소 조용하던 이곳이 지난해 여름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골프 팬으로 북적였다. 골프 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디 오픈(브리티시오픈)이 이곳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1860년 시작된 디 오픈이 지금까지 ‘그레이트 브리튼’ 섬을 떠나 열린 건 딱 두 차례다. 1951년과 2019년이다. 그 두 번의 장소가 모두 로열 포트러시였다.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이 창설된 건 1888년이다. 당시 이름은 ‘더 카운티 클럽’이었다. 1892년에 왕실의 후원을 받으면서 ‘더 로열 카운티 클럽’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895년부터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로열 포트러시에는 2개의 18홀 코스가 있다. 던루스 링크스와 밸리 링크스다. 던루스는 챔피언십 코스이고, 밸리 링크스는 주로 지역민의 골프클럽인 래스모어(Rathmore)를 비롯해 로열 포트러시의 여성과 주니어 멤버가 이용하는 코스다. 흔히 로열 포트러시라고 하면 던루스 링크스를 의미한다. 황량한 링크스에 자리 잡은 코스는 마치 커다란 용이 꿈틀거리는 듯 굽이친다. 거친 비바람이 수시로 몰아치고, 좁은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질긴 러프가 공을 삼킨다. 세계 최고의 골퍼를 뽑는 토너먼트 코스로 제격이다. 지난해에는 아일랜드의 셰인 라우리가 최종일 폭풍 수준의 비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커다란 바위처럼 굳건히 버티며 우승했다. 더구나 챔피언 조의 맞상대가 잉글랜드의 토미 플리트우드여서 홈 팬의 열기가 더욱더 뜨거웠다. 던루스라는 코스 이름은 근처 해안 절벽에 세워진 ‘던루스 캐슬(Dunluce Castle)’에서 따왔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성은 얼스터 지방의 리처드 버그 백작이 바이킹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성이다. 고성(古城)은 이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곳곳이 무너져 내렸지만 그 이름은 거친 링크스 코스로 부활해 여전히 건재하다. 이 지역은 ‘철의 왕좌(iron throne)’를 놓고 영웅들이 대결을 펼치는 판타지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주요 촬영지이기도하다. 4만여 개의 주상절리가 모인 자이언츠 코즈웨이(Giant’s Causeway)와 작지만 아름다운 발린토이 항구를 비롯해 여러 해안 절벽 지역이 드라마의 주요 무대로 사용됐다. 

1951년 이후 68년이 흐른 뒤 로열 포트러시에서 다시 디 오픈이 열리게 된 데에는 북아일랜드가 자랑하는 골퍼인 그레임 맥다월, 대런 클라크, 로리 매킬로이 등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모두 로열 포트러시의 명예 회원으로 맥다월은 2010년 US오픈을 제패했고, 2011년에는 클라크가 디 오픈, 매킬로이가 US오픈 정상에 올랐다. 메이저 대회를 잇달아 제패한 이들은 2012년 영국왕립골프협회(R&A)를 설득해 자신들의 홈 코스인 로열 포트러시에 디 오픈을 유치한 것이다.


로열 포트러시 던루스 링크스의 5번 홀 그린 전경. 사진 디 오픈 홈페이지
로열 포트러시 던루스 링크스의 5번 홀 그린 전경. 사진 디 오픈 홈페이지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 주변 지역은 판타지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주요 촬영지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 주변 지역은 판타지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주요 촬영지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매킬로이 16세 때 최저타 작성한 코스

매킬로이는 포트러시 출신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로열 포트러시를 자주 드나들었다. 클라크를 이 코스에서 처음 만난 것은매킬로이의 10번째 생일날이었다고 한다. 던루스 링크스는 지난해 디 오픈을 개최하기 위해 코스 일부를 손봤는데 이전 코스의 18홀 최소타는 매킬로이가 16세이던 2005년에 작성한 11언더파 61타였다. 지난해 매킬로이는 첫날 첫 홀에서 티샷을 아웃오브바운즈(OB) 구역으로 보내면서 쿼드러플 보기(4오버파)를 범하며 둘째 날 컷 탈락했다. 매킬로이는 최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당시 티박스에 올라섰을 때 엄청난 박수 소리를 들었다. ‘와우, 하느님 맙소사!’라고 외칠 만큼 놀랐다”며 “골프와 코스에 대해 준비는 했지만 그런 분위기와 감정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고 말했다.

던루스 링크스는 1번 홀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는 홀들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4·5·16·17번 홀은 특히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파4인 4번 홀은 전장이 482야드여서 만만치 않은 데다 우측은 OB 구역이고 왼쪽은 질긴 러프여서 정확한 티샷이 관건이다. 내리막 파4인 5번은 던루스 캐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홀이다. 그린 굴곡이 심하고, 뒤편이 낭떠러지여서 두 번째 샷이 길면 낭패다. 16번 홀의 이름은 ‘재앙의 코너(Calamity Corner)’다. 줄여서 그냥 ‘재앙’이라고도 한다. 236야드인 데다 오르막 파3 홀로 거리 부담이 크고, 그린 뒤 왼쪽은 급경사다. 17번 홀(파4)의 별칭은 ‘연옥(purgatory)’이다. 가톨릭 교리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죄를 씻기 위해 불로써 단련받는 곳’이라는 의미다. 내리막에 408야드여서 장타자라면 1온을 노릴 수도 있지만 그린 주변 벙커의 제물이 되기에 십상이다.

로열 포트러시에서 디 오픈 첫 대회 이후 두 번째 대회가 열리기까지는 68년이 걸렸다. 불안한 정치 상황 때문이었다. 아일랜드는 1922년 독립전쟁을 통해 영국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영국계 신교도가 많은 얼스터 지방이 아일랜드에서 분리돼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됐다. 1998년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북아일랜드는 친(親)영국 신교도와 친아일랜드 구교도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사이에는 인적 왕래가 자유롭다. 하지만 영국이 EU를 탈퇴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 국경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골프 왕좌’를 놓고 벌이는 거인들의 결투를 보기 위해서는 또 얼마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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