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무도회에 모인 사람들. 사진 AFP연합
2월 20일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무도회에 모인 사람들. 사진 AFP연합

‘저 멀리 흔들리듯 떠다니는 구름 뒤편으로 왈츠를 추는 남녀가 어렴풋이 보인다. 베일이 점점 걷히더니 거대한 무도회장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추는 수많은 군중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순간 휘황찬란한 빛이 샹들리에를 밝힌다. 지금은 1855년, 황제가 기거하는 궁전. 황홀한 왈츠의 움직임에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곧이어 악곡은 충격과 카오스에 휩싸이며 급히 막을 내린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자신의 작품 ‘라 발스(La Valse)’ 악보에 서술한 내용이다. 1919년 완성한 그의 작품에서 그는 황홀한 왈츠의 아름다움과 1918년까지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황폐해진 한 세기의 찬란함을 음악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직접 밝힌 것처럼 빈 왈츠에 감명을 받아 작곡한 곡이고 무도회가 열리던 황궁이 폐허가 된 모습까지 당시 음악적 사조인 인상주의적 기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이 막을 내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거쳐 제1공화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인의 슬픔과 상실감이 컸음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한 문화적 자긍심은 곧바로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전후 3년 뒤인 1921년 빈 오페라 하우스에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전통이던 빈 오페라 무도회를 재건하기에 이른다. 또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무도회가 열리던 빈 오페라 하우스가 1945년 폭격을 받아 파괴됐음에도 오스트리아인은 전후 가장 먼저 오페라 하우스를 복원하고 1955년 다시금 오페라 무도회를 개최했다.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거의 매년 사순절(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교회 절기) 목요일에 열리고 있다.

빈 오페라 무도회는 현재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오스트리아 및 전 세계 명사들의 사교계 데뷔 무대이기도 하며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또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춤곡을 연주하며 중간중간 안나 네트렙코, 요나스 카우프만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성악가들이 아리아를 곁들이기도 한다.


빈 오페라 하우스. 1945년 파괴됐지만 오스트리아인은 전후 다시 복원했다. 사진 AFP연합
빈 오페라 하우스. 1945년 파괴됐지만 오스트리아인은 전후 다시 복원했다. 사진 AFP연합
2월 20일 빈 오페라 무도회에서 춤추는 데뷔탕트(성년에 이른 상류층 자녀). 사진 AFP연합
2월 20일 빈 오페라 무도회에서 춤추는 데뷔탕트(성년에 이른 상류층 자녀). 사진 AFP연합

무도회는 약 180쌍의 데뷔탕트(성년에 이른 상류층 자녀)가 무대 중앙에 자리한 가운데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축사와 더불어 시작된다. 보통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바르샤바 폴카’와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 등의 연주로 폴로네이즈 춤을 춘다. 이어서 “알레스 발처(Alles Walzer·왈츠의 시작을 알리는 구호)!”라는 외침과 함께 오페라 하우스에 있는 약 7000명의 군중이 춤을 춘다. 보통 빈 오페라 하우스는 일반 관객들에게 공연장과 공용 공간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보안상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곳이지만, 이날만큼은 지하 창고, 옥탑 발코니, 심지어 레스토랑 부엌까지 모두 개방하고 이 모든 장소에서 춤을 출 수 있게 허용한다. 무도회는 새벽 4시까지 이어지며 도나우 왈츠, 라데츠키 행진곡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라벨의 작품에 묘사된 역사의 굴곡에 굴하지 않고, 알레스 발처라는 구호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을 춤과 음악에 녹여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전통과 문화에 감탄하곤 한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를 빈에서 한참 떨어진 이역만리 대한민국에서 들어도 마음속에서 저절로 삶의 기쁨이 솟아나는 것이 바로 이 때문 아닐까.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요한 슈트라우스
‘알레스 발처(Alles Walzer)!’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빈 오페라 무도회 개장부터 폐장까지 연주된 곡들이 순서대로 나열돼 있다. 빈 왈츠 및 폴카 등 춤곡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곡들로 가득 차 있다. 음반을 들어보며 빈 오페라 무도회장의 황홀한 감성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모리스 라벨
‘라 발스(La Valse)’

빈 왈츠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라 발스’다. 1919년도 작곡 당시 ‘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려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전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라 발스(La Valse·프랑스어로 왈츠를 이르는 말)’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라벨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은 곡을 듣는 내내 수많은 색채가 눈앞으로 쏟아지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제국 시절 빈의 황금기 및 그 종말을 인상주의적 기법으로 눈앞에 그려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