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전염병으로 인해 폐쇄된 도시의 참상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사진 갈리마르출판사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전염병으로 인해 폐쇄된 도시의 참상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사진 갈리마르출판사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유호식 옮김│문학동네
384쪽│1만4000원

알베르 카뮈가 1947년 발표한 소설 ‘페스트’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 중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파급 효과에 따른 현상이다.

이 소설은 우리말로 여러 차례 옮겨졌지만,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은 직후 공교롭게도 새 번역본이 추가됐다. 유호식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역자 해설을 통해 “굳이 메르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근 우리 사회는 사회 안전망이 붕괴하고 갖가지 형태의 무능과 무기력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안정된 삶이라고 믿었던 현실이 사실은 하나의 베일에 둘러싸인 허구에 불과할 때, 그 베일은 찢어지기 마련이다. 그 순간 드러나는 ‘지하 묘지의 질서’, 소설 ‘페스트’는 바로 그것이 감춰진 현실이라고 설파한다.”

소설 ‘페스트’는 지중해 연안 도시 ‘오랑’을 무대로 삼았지만, 실제 그곳에서 일어나지 않은 페스트 창궐을 연대기(年代記) 형식으로 서술했다. “이 연대기에서 다루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일어났다”라는 첫 문장은 발생 연도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이 소설이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 또는 미래에 일어날 재앙의 은유라는 작가의 의도를 선언했다. 카뮈는 전쟁의 참상과 실존의 부조리를 우화적으로 뒤섞으려고 했다. “나는 페스트라는 질병을 통해서, 우리들이 고통스럽게 겪은 위협과 귀양살이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동시에 그 같은 해석을 삶 전체라는 일반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고 싶다.”(카뮈 ‘작가 수첩’ 중에서)

이 소설은 페스트 창궐 때문에 폐쇄된 도시의 참상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12월 내내 페스트는 우리 시민들의 가슴에서 타올랐고, 화장터의 가마에 불을 지폈으며, 빈손으로 헤매는 유령 같은 사람들로 수용소를 가득 채웠다”라는 것.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시민들은 절망과 공포를 딛고 일어나 공동체 정신으로 질병에 맞서 싸우고, 마침내 상황이 종식되는 축제의 환희를 맛본다. 소설이 끝날 때 화자(話者)로 밝혀지는 ‘그’는 페스트가 시민들을 절망에 빠뜨렸지만, 역설적으로 공동체의 희망을 실현하도록 자극을 줬다고 풀이한다. “페스트 환자 수천 명의 목소리에 자신의 마음을 섞어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었을 때도 그는 자신의 괴로움 중 그 어느 것도 다른 사람의 괴로움이 아닌 것이 없으며, 혼자 고통을 겪는 일이 빈번한 이 세계에서 그런 사정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에서 참았던 것이다. 요컨대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 소설을 통해 카뮈는 인간의 실존적 연대(連帶)가 지닌 긍정의 힘을 그려냈다. 카뮈의 첫 소설 ‘이방인’이 삶의 부정적 측면을 다룬 것과는 달리 ‘페스트’는 긍정적 측면을 조명했다. 카뮈는 에세이 ‘반항적 인간’에서 실존의 부조리에 맞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삶의 양식을 ‘반항’으로 개념화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라고 선언했다. ‘나’의 실존을 위한 반항이 ‘우리’의 존재 근거가 된다는 것. 소설 ‘페스트’가 그것을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받기에 지구촌이 역병에 시달릴 때마다 다시 널리 읽힌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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