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예 디자이너, 마린 세르와 마스크계의 애플 에어리넘의 컬래버레이션 마스크가 파리 패션위크에 등장했다. 사진 에어리넘의 인스타그램2 이번 뉴욕 패션위크에서 더 블론즈는 화려한 금속과 꽃 코르사주 장식의 피타 마스크를 선보였다. 사진 더 블론즈의 인스타그램3 슈퍼 모델 나오미 캠벨은 새하얀 방역복에 하늘색 방역 마스크, 보호용 고글을 착용하고 있다. 사진 나오미 캠벨의 인스타그램
1 신예 디자이너, 마린 세르와 마스크계의 애플 에어리넘의 컬래버레이션 마스크가 파리 패션위크에 등장했다. 사진 에어리넘의 인스타그램
2 이번 뉴욕 패션위크에서 더 블론즈는 화려한 금속과 꽃 코르사주 장식의 피타 마스크를 선보였다. 사진 더 블론즈의 인스타그램
3 슈퍼 모델 나오미 캠벨은 새하얀 방역복에 하늘색 방역 마스크, 보호용 고글을 착용하고 있다. 사진 나오미 캠벨의 인스타그램

코코 샤넬은 “패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투영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혼돈에 빠진 이 시대의 패션 키워드는 ‘안티-바이럴 패션(Anti-Viral Fashion·바이러스에 저항하는 패션)’이다. 지난 2~3월에 진행된 2020년 가을·겨울 시즌 세계 4대 패션위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액세서리는 작은 사이즈의 미니 백도, 화려한 주얼리도 아니었다. 각기 다른 컬러, 패턴과 장식으로 꾸며진 마스크였다. 패션위크에 초대된 게스트들은 패션쇼가 열리는 기간에 그들만의 패션쇼를 펼친다. 스타 패션 인플루언서(온라인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쇼 룩으로 파파라치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 것을 즐긴다. 올해 파파라치들은 단연 독특한 안티-바이럴 패션을 연출한 패션쇼 게스트들에게 몰려들었다.

가장 럭셔리한 안티-바이럴 패션 중 하나는 샤넬 로고와 샤넬의 카멜리아꽃 코르사주가 장식된 마스크 룩이었다. 샤넬이 마스크를 디자인해 판매하지는 않지만, 몇몇 패셔니스타가 샤넬 로고와 카멜리아 꽃을 직접 마스크에 패치워크(patchwork·천을 덧대는 방법)해 샤넬 백이나 벨트와 함께 스타일링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마린 세르(Marine Serre)의 대표적인 패턴인 초승달 프린트의 마스크를 쓰고 패션쇼장을 누비는 모델에게도 파파라치들의 카메라가 몰려들었다. 그런가 하면 테이프로 X 모양의 패턴을 만들어 붙이거나, 갈기갈기 찢긴 듯한 마스크 룩으로 반항적인 스트리트 마스크 룩을 연출한 패션 인플루언서들도 있었다.

사실 천으로 만든 마스크는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다. 그런데도 패션 인플루언서들은 코로나19 비상사태를 반영한 마스크 룩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패션 개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최소한의 보호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또한 마스크가 주는 극도의 공포감을 패션 스타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서구 문화에서 마스크는 하나의 공포 코드다. 마스크를 미세먼지나 감염으로부터 보호와 예방의 심볼로 여기는 아시아 문화권과 달리, 미주와 유럽 지역에선 범죄자의 위협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뉴욕에 사는 유명 패션 블로거인 에스더 버그(Esther Berg)는 코로나19 비상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독감 시즌마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샤넬 로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그녀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슈프림 로고나 미키마우스가 장식된 마스크를 만들기도 했다. 에스더 버그는 “스타일리시하게 건강을 지키는 마스크 이미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이러스 차단 효과와 스타일을 모두 얻기 위해, 필터 마스크 위에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패션 마스크를 착용하는 패셔니스타도 있다. 이렇게 마스크에서조차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 때문에 오프 화이트(Off-White) 블랙 천 마스크는 95달러나 하는 고가임에도 순식간에 전 세계에서 매진되기도 했다.

마스크는 패션쇼에 올려져 런웨이 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뉴욕 패션위크에서 ‘더 블론즈(The Blonds)’는 반짝이는 스터드(stud·금속 장식), 꽃 코르사주와 크리스털로 화려하게 장식한 피타(Pitta) 마스크를 이번 컬렉션의 메인 패션 액세서리로 선보였다.

얇은 착용감과 미래적인 디자인, 비비드한 컬러로 연예인 마스크로 알려진 피타 마스크는 바이러스 보호 효과는 없다. 꽃가루 알레르기와 감기 예방을 위한 보온 효과 정도만 기대할 수 있는데, 연예인들이 많이 착용하면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스타일리시한 디자인 때문에 해외의 패셔니스타도 피타 마스크를 착용한 걸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가장 기대되는 신예 디자이너 중 한 명인 마린 세르(Marine Serre)는 파리 패션위크에서 에어리넘(Airinum)과 협업한 ‘에어리넘×마린 세르’ 마스크를 런웨이 룩으로 올렸다. 마린 세르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프린트인 초승달 패턴의 마스크는 모델들을 중심으로 영 패셔니스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마스크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에어리넘 마스크는 N95의 강력한 필터를 장착할 수 있다.

‘에어리넘×마린 세르’ 컬래버레이션은 세계 기후 변화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제작됐다. 환경 파괴에 의한 세계 종말을 테마로 한 디자이너 마린 세르의 ‘안티-폴루션(Anti-pollution)’ 마스크 룩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와 시기적으로 일치한 셈이다.


코로나19, 해외 스타의 공항 룩을 바꾸다

코로나19 비상사태는 해외 셀러브리티의 공항 룩도 바꿨다. 슈퍼모델 출신의 나오미 캠벨은 아마존에서 구매했다고 밝힌 방역복에 안전 고글과 장갑, 마스크로 풀 장착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오미 캠벨은 평상시 결벽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안티-바이럴 패션을 선택한 것이라 말했다. 그녀는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몇 가지 안티-바이럴 패션 룩을 업데이트했다.

영화 ‘컨테이젼’에서 미국 대륙 최초의 변종 바이러스 전파자이자 첫 번째 사망자를 연기했던 귀네스 팰트로도 마스크 공항 룩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녀는 에어리넘의 블랙 마스크를 착용하고 “파리로 가는 길, 편집증? 신중함? 패닉? 차분함? 팬데믹? 난 그저 비행기에서 자려고 한다. 이미 영화에서 겪어 봤다”고 코멘트를 남기고, “악수하지 말고 손을 자주 씻어라”라고 덧붙였다.

귀네스 팰트로가 착용한 에어리넘 마스크는 고가임에도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매진된 상태다. 미국의 코미디언 스티브 하비는 크리스털로 장식된 화려한 마스크를 끼고 손소독제를 들고 촬영한 기내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그 외에도 벨라 하디드, 케이트 허드슨, 셀레나 고메즈 등 수많은 해외 셀러브리티들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마스크를 착용한 기내 룩을 올렸다.

코로나19로 인한 패션 산업의 타격도 천문학적이다. 수많은 패션쇼와 이벤트가 취소되고 패션의 중심인 파리‧밀라노·뉴욕 도시 전체가 봉쇄되고 모든 작업실과 사무실·공장이 스톱된 상태다. 이렇게 전 세계적인 팬데믹 비상사태로 치달으며 인명과 경제적 피해를 가늠할 수 없는 지금, 화려한 장식의 마스크 룩이나 고가의 마스크 착용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스크 룩으로 대표되는 ‘안티-바이럴 패션’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패션은 그 시대의 세계를 투영한다”는 코코 샤넬의 말처럼, 패션은 그 시대의 이슈를 조화시킨 종합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