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무교동유정낙지의 낙지볶음(아래)과 백합조개탕.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 광화문 무교동유정낙지의 낙지볶음(아래)과 백합조개탕. 사진 조선일보 DB

낙지볶음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맛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대접하기 알맞은 음식이다. 매운 음식은 많지만, 한국의 매운맛은 ‘맛있게 맵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다. 단순하게 맵기만 한 게 아니라, 매운맛 아래서 단맛 혹은 감칠맛이 올라와 아리고 얼얼한 혀를 달래준다. 게다가 낙지나 문어는 유럽에선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바다의 악마’로 여겨 먹지 않았다. 그래서 낙지, 그것도 살아있는 낙지는 해외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음식인 동시에 미식가라면 도전해 보고픈 음식으로 꼽힌다.

낙지를 매운 음식의 대명사로 만든 건 서울 광화문 무교동의 낙지볶음집들이다. 그리고 무교동을 낙지볶음의 대명사로 만든 건 ‘무교동유정낙지’다. 1966년 김수만(86)씨는 무교동 청계천 주변 노점에서 할머니들이 막걸리 안주로 낙지 파는 걸 봤다. “광화문 일대 회사원, 공무원, 기자들이 퇴근하면서 매운 낙지볶음에 대포 한잔씩 하고 가더라고.”

김씨는 ‘이거다’ 싶었단다. 주방은 음식 솜씨 좋은 아내 김순득(81)씨에게 맡기고 식당 운영은 자신이 하기로 했다. 무교동 현 SK 본사 자리에 있던 한옥을 임대했다. 작명가에게 돈을 주고 ‘미정낙지’란 이름을 받았으나, 구청 직원 실수로 ‘유정낙지’로 등록됐다. 당시는 공무원이 “그냥 그대로 하세요”라면 별수 없던 시절이었다. 청계천 노점 할머니들은 김장김치 담글 때 쓰는 굵은 고춧가루로 낙지를 볶았다. 김씨 부부는 고춧가루를 가능한 한 곱게 갈았다. 전분도 섞었다. 이렇게 하니 소스가 따로 놀지 않고 낙지에 착 달라붙어 훨씬 맛있었다.

무교동 낙지볶음의 원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부부의 가게는 ‘대박’을 냈다. 주변에 비슷한 낙지볶음을 하는 식당이 여럿 생겨났다. 무교동 일대가 재개발되자 낙지볶음집들이 수성동 종로구청 앞, 청진동 등으로 이전했다. 여러 곳에 지점을 두고 있던 유정낙지는 본사를 경기도 성남으로 옮겼다가 2018년 가을 광화문으로 귀향(歸鄕)했다.

재개발로 완전히 달라진 무교동 대신 옛 광화문 분위기를 그나마 간직하고 있는 성공회 성당 맞은편에 열었다. 현재 자리에 들어선 지 2년도 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스럽다. 인테리어는 물론 양은쟁반과 거기 담겨 나오는 유리잔·접시·공기까지, 1960년대까지는 아니어도 1980~90년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다. 창업주의 딸이자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김정민씨가 어울리는 기물에 음식을 담아내기 위해 전국 시골 시장까지 이 잡듯 뒤져 찾아낸 물건들이라고 한다.

대표 메뉴인 ‘낙지볶음’은 옛 맛 그대로다. 캡사이신까지 이용해 비정상적으로 맵게 만든 낙지볶음이 대세가 됐지만, 김수만씨는 “낙지볶음이라면 속 쓰리도록 무식하게 맵기만 한 음식으로 안다”며 “낙지의 감칠맛을 살려주는 ‘맛있는 매운맛’이어야 한다”는 소신을 꺾지 않고 있다.


산낙지데침과 한우 업진 수육. 사진 무교동유정낙지
산낙지데침과 한우 업진 수육. 사진 무교동유정낙지
낙지 한마리 파전. 사진 무교동유정낙지
낙지 한마리 파전. 사진 무교동유정낙지

맛있는 매운맛 담은 낙지볶음

맵지만 가학적인 수준까지는 가지 않는다. 이마와 콧등에 송골송골 땀은 맺히지만, 속 쓰려서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랄까. 냉동 낙지를 쓰지만 질긴 맛 없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다. 낙지볶음과 거의 세트로 주문하는 조개탕은 백합조개를 고수한다. 흔히 사용하는 바지락이나 모시조개보다 비싸지만, 국물이 훨씬 시원하면서 비린내 없이 깔끔하다.

‘낙지 한마리 파전’은 익숙한 파전의 업그레이드 버전. 낙지를 통으로 파전에 올렸다. ‘낙지 감자전’은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독특한 메뉴. 감자 전분과 낙지가 서로의 탱탱한 식감을 상승시켜주는 상생의 조화를 보여준다.

낙지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입안에 착 감기는 감칠맛을 제대로 맛보려면 역시 산 낙지를 먹어야 한다. ‘산낙지볶음’은 일반 낙지볶음에서 한 차원 위의 맛을 보여준다. 일반 희석식 소주와 전통 증류식 소주의 차이와 비슷하다. 희석식 소주가 전통 소주보다 낫다는 주당이 많은 것처럼, 냉동 낙지를 쓰는 일반 낙지볶음이 익숙하고 낫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듯하다.

업진살은 소가 엎드렸을 때 배가 바닥에 닿는 부위. 살코기와 지방이 겹겹이 층을 이뤄 수육용으로는 최고로 친다. ‘산낙지데침과 한우 업진 수육’은 바다와 육지의 최고가 한 접시에서 만나 경합을 벌이는 메뉴이니, 미식가라면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상관없이 반할 맛이다.

함께 온 외국인 비즈니스 파트너가 진정한 미각 모험가라면 ‘산낙지 탕탕이’를 시켜준다. 산낙지를 통으로 먹기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개발됐다. 낙지를 칼로 탕탕 내리쳐 참기름에 버무려 낸다. 잘게 다져졌지만, 여전히 꿈틀대며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탕탕이는 본국에 돌아가 “살아있는 낙지를 먹었다”며 자랑하기에 충분하다.


무교동유정낙지 ★★

주방에서 창업자 부부 김순득(가운데), 김수만(왼쪽)씨와 현재 대표인 딸 김정민씨가 낙지볶음을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주방에서 창업자 부부 김순득(가운데), 김수만(왼쪽)씨와 현재 대표인 딸 김정민씨가 낙지볶음을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분위기 오래돼 보이지만 낡거나 허름하지 않고 깔끔하며 세련됐다.

서비스 편안하고 친절하다.

추천 메뉴 낙지볶음 1만4000원, 백합조개탕 1만5000원, 한우 낙지볶음 1만8000원, 낙지 덮밥(평일 점심) 9000원, 산낙지데침과 한우 업진 수육 4만9000원, 옛날 유정낙지 감자탕 1만2000원, 산낙지볶음(2인) 5만2000원, 산낙지 탕탕이 2만9000원, 낙지 초무침 2만8000원, 연포탕 4만8000원, 낙지 감자전 1만2000원, 낙지 한마리 파전 1만9000원

음료 일반적인 소주와 맥주 외에도 여러 지역의 맛 좋은 전통주를 두루 구비했다.

영업 시간 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10시,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오후 9시 30분

예약 권장

주차 인근 주차장에 알아서 해야 한다.

휠체어 접근성 정문 앞 계단 대신 가게가 있는 건물(태성빌딩) 정문으로 돌아 들어가면 휠체어도 무리 없이 출입할 수 있다.

★ 괜찮은 식당
★★ 뛰어난 식당
★★★ 흠잡을 곳 없는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