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서울 안암동의 연구실에서 만난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사회역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 교수는 ‘우리 몸이 세계라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두 권의 저서를 쓴 스타 학자다. 사진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3월 30일 서울 안암동의 연구실에서 만난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사회역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 교수는 ‘우리 몸이 세계라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두 권의 저서를 쓴 스타 학자다. 사진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세상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세계의 중심 뉴욕 맨해튼이 비현실적으로 텅 비고, 시체를 채운 냉동 컨테이너 행렬만 도로에 즐비하다. 중국산 마스크를 차지하려고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국가들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주가는 폭락했다. 어떤 리더는 거짓말로 화를 키우고, 어떤 리더는 굳은 얼굴로 재난을 직시한다.

바이러스는 동시에 지구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인간의 움직임이 멈추자 지구가 깨끗해졌다. 중국의 탄소 배출이 25% 이상 줄어들면서 대기질이 깨끗해졌고,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던 베네치아 운하에는 60년 만에 물고기가 돌아왔다. 시리아·예멘의 전투가 중지됐으며, 각국의 사회 보장이 강화됐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좀 더 들여다보기 위해,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의 개척자인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김승섭 교수에게 만남을 청했다. 그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라는 두 편의 저서를 통해 그간, 우리 사회 약자들의 질병 사회사와 공중 보건의 역사를 통찰해 냈다. 김승섭은 연세대 의대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을 거쳐,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상황을 보면 처참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시체 운반을 위해 군인이 동원됐고, 뉴욕시는 시신 안치 가방 10만 개를 긴급 요청하기도 했다.
“(한숨을 쉬며) 콜레라가 유행하면 마을 전체가 증발하는 아프리카 저소득 국가에서만 보던 모습이다. 선진국에서는 처음 겪는 일이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로 그동안 부실해진 공공 의료 시스템이 세상에 까발려지고 있다. 아픈데 병원에 못 가고 검진받지 못하는 숫자가 코로나19의 확산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식과 기술은 압도적인 톱인데, 실제 감염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안타깝지만, 위기 상황에서 리더와 국가의 능력이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가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으로 갈 거라고 예상했나.
“못 했다.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이 사망했다는데, 실제 팬데믹을 몸으로 겪은 건 처음이다.”

전 세계는 마치 ‘폭탄을 돌리듯’ 빠른 주기로 혐오와 낙인을 주고받았다.
“감염원이 누구인가? 확진자가 어디에 몰렸나? 이걸로 ‘혐오 돌리기’를 했다. 중국, 대구, 아시아, 미국과 유럽으로. 초창기엔 맨해튼에서 한국인이 폭행당하기도 했고, 일본은 조선인 유치원에 마스크를 주지 않았다. 왜 그럴까? 한 인간, 하나의 문화권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낙인은 그런 비용을 치르지 않는다. 특정 인구 집단 전체를 매도해버리면 쉽고 짜릿하다. 그 비과학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단기간에 극적으로 펼쳐진 거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태도에 변화가 생길까.
“어떤 현상이 배움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과적으로 밝혀졌지만, 이후 과적이 단속되고 중지됐나? 아니다. 낙인의 비합리성을 경험했다고 바로 바뀌지 않는다. 낙인은 직관적이고 감정적이며, 합리적 태도는 복잡하고 어렵다.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질병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누구의 언어에 영향을 받았나. 수전 손택? 아툴 가완디?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에이즈를 연구하면서 읽었다. 내가 영향받은 사람은 플라톤과 백석이다. 미국 유학 갈 때 들고 간 책도 플라톤의 ‘국가론’과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다. 그분들은 가장 깊은 세계를 일상의 언어로 표현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다 죽음에 이르렀지만, 플라톤은 그 상처를 복수로 풀지 않고 철학으로 풀어냈다. 차마 닿을 수 없는 존재라도, 백석과 플라톤의 방향이라도 닮고 싶은 거다.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자세, 그 언어의 결이 얼마나 중요한가.”

코로나19 이야기를 해보자. 역사적으로 인류는 감염병에 어떻게 대응했나.
“인간이 바이러스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게 150년 정도 전이다. 그전까지 역병이 돌면 정체도 모르고 당했다. 한 사회가 지켜오던 예의가 무참하게 무너졌다. 기원전 43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 그리스는 장례식이 매우 중요했는데 역병으로 시체가 거리에 널려있어도 새조차 건드리지 않았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흑사병이 돌았을 때, 1348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버리고 집도 재산도 버리고 다른 토지를 찾아 떠났다. 1525년 중종 때는 역병으로 2만5000명이 사망했다. 평안도 전체가 텅 비었다. 그 시절에도 나름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중종은 큰 불확실성 속에서도 행동지침을 내놨다. 사망자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지역 관리를 크게 나무랐다는 기록도 있다.”

모든 재난에서 지도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재난 규모를 축소하는 노력이라고 했다. 측정이 안 되면 분석할 수 없고 현황을 모르면 대책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평등하지 않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리진 않지만, 바이러스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이 사람마다 차별적이다.” 사진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바이러스는 평등하지 않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리진 않지만, 바이러스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이 사람마다 차별적이다.” 사진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바이러스는 사회적 계급과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덮쳐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이러스에도 차별이 있다고.
“바이러스는 평등하지 않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리진 않지만, 바이러스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이 사람마다 차별적이다. 더 많이 더 가까이 노출되고 치료가 늦어진다. 바이러스가 의도하지 않아도 재난 속에서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은 차별적이다. 흑사병 당시의 부동산 양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남자보다 여자의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그전엔 물론 남자 사망률이 높았다. 에볼라 바이러스로 서아프리카 사람 수천 명이 죽어 나갈 때도 세계는 긴장하지 않았다. 미국인 2명이 감염되고 나서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재난으로 선포됐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사회적 비용이라, 약자의 소리는 확장되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우주 탐사로 미래를 준비하던 인류가 바이러스 공격에 우왕좌왕하며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생명 연장으로 신이 될 미래 사회를 염려했지만, 공상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학자는 학자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의료 현장에서 적용 중인 AI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게 더 급박할지도 모른다. 피부암을 진단하는 AI 알고리즘도 판단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논문이 나왔다. 현실은 항생제가 개발된 지 100년도 안 됐다. 120년 전, 그러니까 1880년대 논문에 이르러야 균이 나온다. 항생제 치료가 시작됐을 때, 이제 감염병은 끝이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그 뒤로 무수한 바이러스가 새로 나왔다.”

균은 계속 나오고 그때마다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의료 현장도 다르지 않다. 1847년 산부인과 의사인 제멜바이스가 손 씻기를 강조하기 전까지, 의사의 손에 감염되어 죽는 산모 사망률이 20%였다. 멸균 장갑과 마스크, 세균 오염 방지를 위한 완벽한 준비가 이뤄지는 데만 140년이 걸렸다.

미국의 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 아툴 가완디도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 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라고 했다.
“1900년대 기준으로 미국의 사망 원인 1·2·3위가 감염성 질환이었다. 2010년에 이르면 심장병, 암, 만성 호흡기 질환 등으로 바뀐다. 항생제와 백신이 나오면서 감염에 저항할 수 있게 되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세포 노화로 암이 생겼다. 암에 대한 연구도 100년이 안 됐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사실 모르는 것 천지다. 그래서 큰 줄기로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 있나.
“코로나19로 경제와 건강 불평등이 더 깊어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 가장 약한 사람이 위험에 더 자주 노출되는 세계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낮게 날지 못하도록 그물을 쳐도 비는 내린다.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 택배 노동자가 사고 위험에 몰린다. 마스크가 없는 노인은 무료 급식소 출입이 안 된다. 나이 많고 기저 질환이 있는 노인이 죽음으로 내몰린다. 소득 수준에 따라 기저 질환도 다르다.”

청도대남병원의 사례가 마음이 아팠다. 정신병원, 요양병원으로 코호트가 발동됐던 그곳을 패쇄병동의 지리학으로 설명했다. 외출 기록은 아예 없고 면회 기록도 드물어서, 타인에게 전염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이 슬픈 아이러니다.
“103명 중 101명이 감염됐다. 98%다. 장기 입원 환자가 대부분이고 의료 급여를 받는 빈곤층이 84명이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표정이 어두워지며) 이런 상황을 접하면 데이터 과학자가 아니라 다른 언어가 있었으면 싶다.”

우리에겐 안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미 고립된 사회적 약자들에겐 큰 위협으로 다가온 것인가.
“맞다. 지금 장애인에게 시급한 건 ‘사회적 거리 좁히기’다. 그분들은 일상에서도 시민 범주에서 배제되고 고립된 채 있다. 이미 격리된 분들이다. 코로나19는 위생이 중요한데 혼자서 잘 씻지도 먹지도 못해서 생존을 위협받는다. 듣고 나면 당연해도, 그걸 건져 올리기가 어렵다. 공동체가 어떤 가치와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가가 그렇게 언어에 녹아 있다.”

한편으론 마스크 기부와 재난 기금 등으로 사회적 기여를 하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세상의 역동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라는 책을 보면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일상적이고 직관적이고 깊은 언어다.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과학적이고 긍정적인 언어다. 지금과 같은 환경의 맥락에서 쓸 수 있는 좋은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들까.
“아무도 답할 수 없다. 주요 변수를 측정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신천지라는 변수도 몰랐고 미국이나 유럽의 변수도 몰랐다.”

백신 개발은 언제쯤으로 예상하나.
“2020년의 과학 기술 역량이 최단기간에 답을 찾을 것이다. 시점은 역시 모른다. 상용화까지 최소 1년은 걸리지 않겠나. 에이즈는 지난 30년간 획기적인 치료가 가능해졌다. 지금은 20세에 걸려도 70세까지 살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백인이 주 소비층이었기 때문이다. 결핵이나 말라리아는 최악이었다. 아프리카 저소득 국가가 소비층이라 오래 걸렸다. 코로나19는 현재 소비력이 높은 국가에 퍼져 있다. 명백히 돈이 되는 일이라 과학 기술과 제약 회사의 역량이 총집중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