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릉지대에 펼쳐진 키안티 지역의 포도밭. 사진 콘소르지오 비노 키안티 클라시코
구릉지대에 펼쳐진 키안티 지역의 포도밭. 사진 콘소르지오 비노 키안티 클라시코

필자가 와인 초보였던 시절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는 레드와인을 ‘닭 표 와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렇게 괴상한 별명으로 부른 이유는 병목 부분에 검은 수탉 마크가 있기 때문이다. 키안티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8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와인과 수탉 사이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어떤 맛이 나길래 그리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온 걸까? 키안티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특징, 등급, 어울리는 음식 등에 대해 알아보자.

로마가 패망한 뒤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로 쪼개져 대립이 끊이질 않았다. 토스카나 지방에서도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영토 싸움이 치열했다. 지리멸렬한 싸움이 지속하자 어느 한쪽도 얻는 것 없이 피해만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양측은 마침내 평화롭게 전쟁을 끝낼 묘안에 합의했다. 새벽 첫닭이 울면 각 나라 성문에서 기사가 말을 달려 서로 만나는 지점을 국경으로 정하자고 한 것이다.

시에나는 아름다운 흰 수탉을 골랐다. 한눈에 보기에도 ‘목청’이 좋아 보이는 튼실한 닭이었다. 피렌체는 검은 수탉을 선택했지만, 닭에게 모이를 한 톨도 주지 않고 쫄쫄 굶겼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피렌체의 검은 수탉은 동이 트기도 전에 울어댔다. 어서 빨리 밥을 달라는 호소였다. 반대로 시에나의 흰 수탉은 날이 밝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피렌체의 기사는 먼저 출발했고, 피렌체가 시에나보다 훨씬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토스카나에서는 검은 수탉이 ‘승리의 상징’이 됐다.

키안티는 피렌체와 시에나가 서로 차지하려고 혈전을 벌였던 바로 그 땅의 옛 이름이다. 이곳은 구릉이 많아 땅이 평평하지 않고 고도가 다양해(해발 250~610m) 곡식을 기르기엔 적당치 않다. 하지만 포도만큼은 잘 자라는데, 가장 많이 재배되는 포도가 산지오베제(sangiovese·이탈리아어로 ‘신의 피’라는 뜻)다. 키안티는 곧 지명이자 이 지역에서 산지오베제로 만든 레드와인의 이름인 것이다.

키안티 와인은 신선한 체리 향과 함께 토마토, 허브, 발사믹 식초, 커피 등 다채로운 향미를 자랑한다. 질감이 탄탄하고 신맛이 산뜻해 새콤하고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 1716년 토스카나를 통치하던 코시모 데 메디치 3세는 키안티 지역의 몇 개 마을을 키안티 와인 생산지로 규정하는 포고령을 발포했다. 이미 300년 전에 원산지 개념이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하지만 키안티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자 생산지는 갈수록 늘어났고,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원래보다 두 배 이상 넓어지고 말았다. 이에 토스카나는 1716년에 정한 원산지에서 생산된 와인을 키안티 클라시코, 확장된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키안티로 부르기 시작했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병목에 검은 수탉도 그려 넣었다. 그래서 피렌체 사람은 키안티 클라시코를 ‘갈로 네로(Gallo Nero이탈리아어로 검은 수탉이라는 뜻)’라고 부르기도 한다.


토스카나식 티본스테이크와 밀짚을 두른 구식 플라스크 병에 담긴 키안티 와인. 사진 김상미
토스카나식 티본스테이크와 밀짚을 두른 구식 플라스크 병에 담긴 키안티 와인. 사진 김상미

다양한 키안티 와인 100% 즐기기

언뜻 생각하면 키안티보다 키안티 클라시코가 더 고급일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키안티 클라시코가 전통적인 맛과 향을 보여준다면, 키안티는 가볍고 마시기 편하며 생산지에 따라 스타일이 다양하다. 예를 들어 토스카나 북부에 있는 루피나(Rufina) 지역에서 생산된 키안티에서는 우아함이 느껴지고, 남부에 있는 콜리 세네시(Colli Senesi)의 키안티는 달콤한 과일 향이 풍부하다.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에는 각기 세 가지 등급이 있다. 먼저 키안티부터 살펴보자. 레이블에 키안티라고만 적혀 있는 와인은 기본 등급이며 가볍고 상큼해 마시기 편하다. 비교적 어린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숙성 기간은 6개월 정도로 짧은 편이다. 셀러(cellar·저장고)에 묵히기보다는 신선할 때 빨리 마시는 용도다. 키안티 수페리오레(Superiore)는 12개월 이상 숙성시킨 와인으로 풍부한 과일 향이 특징이다. 키안티 리제르바(Riserva)는 24개월 이상 숙성시킨 와인이어서 깊은 풍미와 탄탄함을 자랑한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최소 숙성 기간이 12개월이다. 원산지에서 자란 산지오베제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하는 스타일로, 체리와 라즈베리 등 과일 향이 풍부하고 보디감에서도 힘이 느껴진다.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24개월 이상 숙성시킨 와인으로 커피, 다크초콜릿 등 복합미와 응축된 과일 향의 조화가 아름답다. 키안티 클라시코의 백미는 그란 셀레지오네(Gran Selezione)다. 30개월 이상 숙성시켜 출시하는 이 와인은 향미의 집중도가 탁월하고 오랜 숙성으로 발달한 다양한 향미가 우아함을 뽐낸다.  매끈하고 강건한 구조감과 긴 여운이 무척 고급스럽다.

키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은 모두 신맛과 타닌이 도드라지는 편이어서 음식에 곁들여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신선함이 돋보이는 키안티는 우리가 즐겨 먹는 배달 음식과 즐기기 좋다. 피자, 파스타, 치킨은 물론이고 탕수육이나 깐풍기 같은 중화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키안티 클라시코는 키안티보다 질감이 탄탄하고 향미가 복합적이다. 스테이크는 키안티 클라시코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토스카나를 여행할 때 티본스테이크와 키안티 클라시코를 꼭 먹어보라고 추천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한식 중에는 빈대떡이 추천할 만하다. 빈대떡에 들어가는 고사리와 와인의 마른 허브 향이 서로 잘 맞고, 상큼한 신맛이 음식의 기름진 뒷맛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활동이 뜸한 요즘, 키안티 와인 한 잔 음미하며 마음이나마 잠시 토스카나로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나른한 봄날 지친 입맛에도 좋은 활력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