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인 테슬라 모델S는 보닛 아래 수납 공간이 있다. 전기차인데 전기모터를 뒤쪽에 얹었기 때문이다. 사진 테슬라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S는 보닛 아래 수납 공간이 있다. 전기차인데 전기모터를 뒤쪽에 얹었기 때문이다. 사진 테슬라

“선배, 그거 보셨어요?”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옆에 앉은 후배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응? 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요. 저 1회 보고 완전 빠졌잖아요.” 요즘 나와 후배는 그 드라마 얘기로 월요일을 시작한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여자가 치밀하게 복수를 계획한다는 흔하디흔한 ‘불륜 드라마’인데, 그 스토리를 끌고 가는 방식이 묘하게 스릴 있고 긴장감이 넘친다.

가장 스릴 넘치는 장면 중 하나는 여주인공(김희애)이 남편의 외도와 관련된 증거를 찾기 위해 차를 뒤지는 장면이다. 차 안을 샅샅이 뒤지고 트렁크까지 헤집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 망연자실해 있던 김희애. 뭔가 생각난 듯 다시 트렁크를 열고 바닥 덮개를 들추자 또 하나의 수납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 잘 숨어 있던 낡은 백팩을 들어 내용물을 쏟아내는 순간, 난 잠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만약 이게 간접광고(PPL)라면 작가는 정말 천재적이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차의 숨은 수납공간을 보여준 예는 없었으니까.

드라마를 본 사람은 트렁크 바닥에 또 다른 수납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쩌면 남편들은 트렁크 바닥 아래 수납공간이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에 탄식했을지 모른다. 반대로 아내들은 당장 주차장으로 내려가 트렁크 바닥을 살폈을지도. 하지만 자동차의 숨은 수납공간이 트렁크 바닥에만 있는 건 아니다. 여러 자동차가 다양한 곳에 수납공간을 숨겨 놓고 있다. 꼭 숨기려고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애써 찾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납공간을 지금부터 알려드리겠다. 자동차 수납공간은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 있다.

휘발유나 디젤 엔진을 얹는 대다수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보닛 아래 엔진이 있다. 그런데 포르셰 박스터는 엔진이 시트 뒤에 있다. 그래서 보닛 아래 여유 공간이 생겼다. 포르셰는 이곳에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보닛을 열면 엔진 대신 수납공간이 나타난다. 테슬라 모델S와 모델3 역시 보닛 아래 수납공간이 있다. 엔진이 없는 전기차인 데다 전기모터를 뒤쪽에 얹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전기차가 보닛 아래 수납공간을 마련한 건 아니다. 재규어 I 페이스나 메르세데스‑벤츠 EQC는 전기모터를 앞에 얹어 보닛 아래 수납공간 대신 전기모터가 자리한다. 포르셰와 테슬라의 보닛 아래 수납공간은 제법 넉넉해 큼직한 가방을 넣을 수 있다. 아내 몰래 야금야금 사 모은 게임기와 게임 CD를 숨기기에도 그만.

볼보 XC40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지만 수납공간은 여느 대형 SUV 못지않게 풍성하다. 트렁크 바닥 아래에 넉넉한 수납공간이 있고, 센터콘솔은 커다란 티슈 상자를 꿀꺽 삼킬 만큼 큼직하다.

하지만 운전석 시트 아래에 수납공간이 있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오른쪽 아래 레버를 당기면 가로×세로가 20㎝쯤 되고 높이가 3㎝ 정도 되는 납작한 수납공간이 서랍처럼 열린다. 휴대전화 두 대쯤 넣을 수 있는 공간이다. 납작한 책 안에 비상금을 넣어 숨기기거나 전자담배를 두기에도 적당하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는 센터패시아(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공조장치 등이 있는 곳)에 수납공간을 숨겨 놨다. ‘오픈’이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누르면 덮개가 앞으로 열리면서 수납공간이 나타난다. 넉넉하진 않지만 지갑이나 담배 정도는 둘 수 있다. ‘오픈’이라는 글자만 가리면 완벽하다. 디스커버리를 비롯한 랜드로버 모델에는 발레 모드가 있다. 발레파킹을 맡겼을 때 다른 사람이 귀중품이나 물건에 손대지 못하도록 글러브박스를 잠그는 기능인데,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에서 발레 모드를 터치한 다음 비밀번호 네 자리를 설정하면 호텔 객실 금고처럼 아무도 열 수 없게 된다. 대놓고 수납공간이지만 나만 열 수 있는 수납공간이 될 수도 있단 뜻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는 센터패시아에 수납 공간이 있다. 푸조는 뒷좌석 매트 아래에 공간이 있다. 뒷좌석 등받이에 공간을 숨겨놓은 GMC시에라. 사진 랜드로버 ·푸조·GMC
(왼쪽부터 시계방향)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는 센터패시아에 수납 공간이 있다. 푸조는 뒷좌석 매트 아래에 공간이 있다. 뒷좌석 등받이에 공간을 숨겨놓은 GMC시에라. 사진 랜드로버 ·푸조·GMC

차량 곳곳에 숨어있는 비밀 수납공간

푸조 5008에도 비밀 수납공간이 있다. 바닥은 바닥이지만 트렁크 바닥은 아니다. 조수석 뒤쪽 2열 매트를 들추면 큼직한 덮개가 있는데 이걸 열면 수납공간이 나타난다. 깊이가 깊지 않아 커다란 운동화를 넣으면 덮개가 불룩해지지만 납작한 슬리퍼나 요즘 유행하는 ‘블로퍼’는 충분히 넣을 수 있다. 12개월 할부로 산 노트북도 거뜬하다. 매트로 덮으면 감쪽같이 숨길 수 있다. 2열 바닥에 수납공간을 마련한 건 5008뿐이 아니다. 미국산 픽업트럭 램 1500 역시 2열 바닥에 수납공간이 있지만 5008과 달리 세로로 깊어 캔 음료나 500mL 페트병을 넣기에 좋다.

미국산 픽업트럭과 대형 SUV는 참신하고 다양한 수납공간으로도 유명하다. GMC 시에라는 시트 등받이에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고리를 당겨 덮개를 열면 벽장 속에 숨겨진 것 같은 수납공간이 나타난다. 한 뼘보다 조금 큰 정사각형 모양 수납공간에는 세로로 넣을 수 있는 것들을 넣기에 적당하다. 단, 덮개를 열었을 때 물건이 앞으로 쏟아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닷지 저니는 시트 쿠션에 수납공간이 있다. 엉덩이 쿠션을 안쪽에서 위로 들면 그 아래 네모난 수납공간이 나타난다. 깊이가 10㎝ 안팎이라 자잘한 물건은 물론 은밀한 물건도 숨길 수 있다.

위에 소개한 다양한 수납공간 가운데 비상금이나 담배, 과속 딱지 등을 숨기기에 가장 좋은 곳은 랜드로버의 글러브박스다. 발레 모드로 잠글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안 열리냐?”고 묻는다면 “고장 났다”고 둘러대면 된다. 만약 당신이 아내라면 남편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시길. 여러분이 찾는 그것(?)이 거기에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