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를 중심으로 한 슈퍼 프로젝트 ‘USA for Africa’가 ‘We Are The World’를 부르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85년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를 중심으로 한 슈퍼 프로젝트 ‘USA for Africa’가 ‘We Are The World’를 부르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85년 4월 13일 자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는? 누구나 아는 노래다. 바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다. 스티비 원더, 폴 사이먼, 케니 로저스, 티나 터너, 빌리 조엘, 밥 딜런, 신디 로퍼, 다이애나 로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미국 팝스타 45명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함께 녹음했다. 작곡은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했다.

마치 판테온의 신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 미천한 인간들을 위해 합창한 듯한 이 명곡은, 재능과 선의와 연대가 하나 됐을 때 탄생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었다. 이 노래가 빌보드 정상에 오른 지 딱 35년 후인 2020년 4월의 세계, 그런 낭만을 위한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때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팬데믹(pandemic·감염증 대유행)의 시대가 한순간에 현실이 됐다. 라이오넬 리치는 최근 잡지 ‘피플’과 인터뷰에서 음악인들이 다시 한번 모여 ‘We Are The World’의 두 번째 리메이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 여기(미국)에도 닥쳤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재앙은) 들이닥칠 거예요.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함께 있습니다.”

‘We Are The World’는 아프리카, 아이티만을 위한 노래가 아니게 됐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사된다 해도 참가 뮤지션들이 다닥다닥 붙어 합창하는 장면은 찍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다. 라이오넬 리치의 바람이 설레기보다는 씁쓸한 이유는.


시대에 불어닥친 우울함 기록한 뮤지션들

시대에 불어닥치는 우울함을, 뮤지션들은 손과 목으로 기록해왔다. 때로는 냉랭했고 때로는 위안이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리스트들이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비행기를 들이받았을 때 21세기는 우리가 기대하던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쌍둥이 빌딩이 한순간에 사라진 자리에는 그라운드 제로가 21세기의 오벨리스크로 남았다.

9·11 테러 직후 뉴욕 음악계는 스트록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로 대변되는 개러지 록 밴드의 흐름에 인터폴, 더 워크맨 같은 팀이 더해졌다. 1970년대 후반 영국 음악계를 상징하는 조이 디비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그들의 음악은 어두웠다. 활기찬 리듬의 곡마저 멜로디의 조도가 낮았다. 9·11 테러 이후 맨해튼 거리 곳곳에 묻었을 쌍둥이 빌딩의 먼지가 그들의 성대와 기타에도 묻은 듯했다.

여타 뮤지션들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록 뮤지션 가운데 한 명인 존 메이어는 라이브 앨범 ‘애니 기븐 서스데이(Any Given Thursday)’에서 ‘커버드 인 레인(Covered In Rain)’을 불렀다. “세상이 점점 차가워지는 요즘”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존 메이어는 9·11 테러 당시 느꼈던 감정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라져버린 표지판 아래 서서”라는 가사가 그라운드 제로를 연상케 하지만, 무엇보다 막연한 상실감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은 5분여 동안 울어대는 그의 기타 연주다. 소닉 유스는 2002년 앨범 ‘뮤레이 스트리트(Murray Street)’를 통해, R.E.M.은 ‘어라운드 더 선(Around The Sun)’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당시의 소회를 잔잔하게 묘사했다. 분명히 그 직전까지 이어진 그들 음악의 흐름과는 달랐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뉴욕 시민들의 무의식을 반영한 게 아니었을까.


아일랜드 밴드 U2의 리드보컬 보노. 사진 위키피디아
아일랜드 밴드 U2의 리드보컬 보노. 사진 위키피디아

한국 대중음악계가 세운 슬픔의 비석

한국 음악계가 슬픔의 비석을 세운 날은 2014년 4월 16일이다. 바로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다. 유희열은 김윤아의 허밍을 더해 ‘엄마의 바다’를 발표했다. 에프엑스(f(x))는 ‘레드 라이트’에 세월호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비교적 직후의 일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한동안 은유와 직설의 경계에서 음악인들의 화두였다. 애도, 분노, 답답함이 혼재됐다. 오랫동안 휴면 상태였던 밴드 허클베리핀은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를 홀연히 발표했다. “푸른 바다 높은 탑 젖은 몸의 널 기다리며, 깊은 잠에 빠진 널 멀리에서 그저 바라보는”이라고 그들은 노래한다. 루시드폴은 2015년 7집에서 ‘아직, 있다.’라는 곡을 담았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제목은 마침표로 끝난다.

같은 해 연말, 언니네 이발관은 8년 만에 ‘혼자 추는 춤’을 발표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난 꿈을 꾸지, 여기 아닌 어딘가에 있는 꿈을, 작은 희망들이 있는 곳,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곳, 내가 살아가고 싶은 곳, 누구도 포기 않는 곳.”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에게 어떤 노래를 안길 것인가. 인류의 마음을 흙먼지가 덮었을 때, 음악의 방향은 양쪽으로 향하곤 했다. 9·11 테러와 세월호처럼 사건과 사고로 인했을 때는 음악의 채도도 낮아졌다. 베트남전 때부터 아프가니스탄 때까지 탄생했던 반전(反戰)의 명곡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하지만 고난이 극복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음악의 손가락은 희망을 가리켰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의 주제가였던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양희은의 ‘상록수’가 그랬다. 이한철의 주도하에 ‘방방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리고 있는 ‘슈퍼스타’는 오롯한 희망의 합창이다.


미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노래하며 코로나19로 힘든 팬들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 크리스 마틴 인스타그램
미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홀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노래하며 코로나19로 힘든 팬들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 크리스 마틴 인스타그램

4월 19일 세계 음악인 110팀 온라인 공연

고립된 이탈리아의 국민이 각자의 집 발코니에서 연주한 노래들이 침묵의 거리에서 합주로 태어나는 순간에 감동해 U2의 보노가 발표한 ‘렛 유어 러브 비 노운(Let Your Love Be Known)’은 안개 속에서 등불을 발견한 자가 부르는,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인간 찬가다.

많은 뮤지션이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극복과 격려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던 중, 결국 음악은 하나의 길에 모이게됐다.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TogetherAthome’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했다.

이걸 시작으로 한국 시각 기준 4월 19일 오전 6시부터 세계의 음악인 110팀이 동시에 모인다. 레이디 가가가 기획했고 엘튼 존, 폴 매카트니, 스티비 원더 같은 전설들부터 빌리 아일리시, 찰리 푸스 같은 이 시대의 스타들 그리고 슈퍼M처럼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음악인들이 ‘One World: Together At Home’이란 온라인 공연을 한다.

TV는 물론이고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도 중계된다. 언택트(untact·비접촉)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된 시대의 ‘라이브 에이드’이자 ‘We Are The World’다. 그 어떤 참가자도 모이지 못할 테지만 괜찮다.

‘언택트 보디, 컨택트 소울(untact body, contact soul)’은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일 터. 그날의 음악적 경험은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출항시키는 새로운 바람일 테니까.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 및 자문 위원.

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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