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티디(OOTD·Outfit Of The Day 그날의 룩을 뜻하는 소셜미디어상 패션 용어)’를 해시태그해서 매일 업데이트하는 패션 인플루언서(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의 패션쇼는 놀랍다. 그러나 트렌드에 따라 재빠르게 스타일을 바꾸며 엄청난 쇼핑 규모를 자랑하는 그들을 패션 인플루언서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지속 가능한(sustainable) 패션’에 깊이 동감하고, 반성하며, 지지하게 되는 순간, 진정한 패션 인플루언서가 누구인지 발견하게 된다.
환경운동가의 캠페인으로 시작한 ‘지속 가능한 패션’. 수년 전부터 움직임이 있었지만 최근 패션계의 주류 트렌드가 됐다. 지속 가능은 미래 세대의 필요를 위태롭게 하거나 파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 가능을 생각하지 않고는 패션 브랜드나 디자이너의 창의력, 영향력과 비전을 평가할 수 없을 정도다. 크게 세 가지 단계에서의 ‘최소화’를 목표로 한다. 생산 단계에서 환경 오염, 자연의 순환 파괴, 동물 학대 등을 하지 않고, 사용 단계에서 인체 유해 물질, 환경 오염 물질 등을 발생하지 않으며, 폐기 단계에서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재활용과 재생산을 늘리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밀라노 패션위크 마지막 날 열린 ‘그린 카펫 패션 어워즈(Green Carpet Fashion Awards)’에서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개척상을 받았다. 데뷔했을 때 매카트니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딸로만 주목받았지만, 그녀는 곧 패션계의 환경과 인권 운동 선두주자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키웠다. 매카트니는 세계 패션계가 아직 환경과 윤리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2001년부터 모든 컬렉션에 천연 가죽, 깃털, 모피의 사용을 지양했다. 지난 파리 컬렉션의 2020년 f/w 무대에서는 ‘#Cruelty-Free(크루얼티 프리·동물 실험이나 동물성 원료 등 동물 학대가 없는 제품)’란 메시지와 함께 동물 탈을 쓴 모델을 런웨이에 등장시켰고, 이탈리아 브루넬로 공장 등에서 자체 개발한 비동물성 및 폴리염화비닐(PVC) 무함유의 친환경 소재로 컬렉션을 채웠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2020년 컬렉션 동안 지속 가능한 패션 릴레이를 이어 갔다. 프라다는 플라스틱에서 얻은 재생 섬유로 만든 소재를 선보였고, 마르니는 의상뿐 아니라 무대까지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다.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메종 마르지엘라 쇼를 통해 빈티지 옷을 재활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재활용품에 디자인이나 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이는 작업) 패션으로 특유의 창의력을 발휘했다.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재생 울과 데님, 유기농 면과 나일론, 재활용 충전재를 사용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제냐는 ‘#UseTheExisting’ 슬로건으로 미국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앤 패턴스와 협업한 패션쇼를 펼쳤는데, 제냐 공장의 남은 원단으로 수천 개의 리본을 제작해 지속 가능한 패션이란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했다.
환경 오염의 리더였던 패션계의 반성
그간 패션계는 석유 다음으로 패션 산업이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경고받았다. 환경 단체 그린피스는 ‘디톡스 마이 패션(Detox My Fashion)’이란 캠페인을 통해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그린피스 보고에 의하면, 청바지 한 벌 제작에 물 7000L, 티셔츠 1장에는 2700L가 사용된다. 제조 과정에서 물이 심각하게 오염되는데, 특히 패션 제조 공장이 모여 있는 아시아 지역의 피해가 크다.
또 매년 의류와 신발이 6000만t 넘게 만들어지지만, 이 중 70%는 재고 판매에서도 팔리지 못한 채 쓰레기 매립장에 버려진다. 생산 과정에선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 가까이 배출하는데, 항공과 해운 산업 배출량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 특히 전 세계 패션 산업을 장악하는 패스트 패션이 ‘독성 패션’으로 질타받고 있다. 패스트 패션에 쓰이는 섬유는 주로 값이 저렴한 ‘폴리에스터’다. 이 폴리에스터 제조 과정에서 면섬유의 세 배나 되는 탄소가 배출되며, 의류 세탁 시 미세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져 나와 바다로 흘러가 해양 오염을 가속화한다. 매년 의류 세탁에서 배출되는 초극세사 플라스틱만 50만t에 달하는데, 이는 플라스틱병 500억 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화려하고 도도한 패션계가 사실 스타일과 트렌드 이전에, 환경 오염의 리더였다는 불편한 진실을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은 셈이다.
이제 패션계는 곧 쓰레기장에 매립될 트렌드만 반복 생산해내는 일에 변화를 줘야 함을 깨달아가고 있다. 대량 생산 이전으로 돌아가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만들어야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패션의 미래를 이끌 밀레니얼 세대의 70% 이상이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면 좀 더 비싼 값으로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 희망을 선사했다.
이런 미래의 새로운 패션 인플루언서를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들은 친환경 소재 개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최근 프라다는 유네스코와 해양 보호 관련 협약을 하고 ‘리나일론(Re-Nylon)’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섬유 생산 업체 아쿠아필과 협업해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과 정화 공정을 통해 새로운 재생 나일론 ‘에코닐(Econyl2)’을 개발했고, 기존의 나일론 제품 생산을 2021년 말까지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프라다의 리나일론 백에는 브랜드 시그니처인 삼각형 로고에 ‘재생’과 ‘순환’을 의미하는 로고가 추가될 예정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옥수수 등의 유기 섬유로 만든 깔창과 비화학적으로 공정한 실로 제작한 ‘지속 가능한 캡슐 컬렉션(Capsule Collection·제품 종류를 줄여 작은 단위로 발표하는 컬렉션) 42 Degrees’를 선보였다. 멀버리는 탄소 중립 공장에서 친환경 가죽과 재활용 실로 제작한 포토벨로(Portobello) 백을 선보였다. 에르노는 ‘에르노 글로브(Herno Globe)’ 컬렉션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 소재의 84%는 재활용 나일론과 지퍼, 버튼으로 제작했고, 충전재는 친환경 제조 과정을 통해 제작한 소재를 사용했다. 또한 염료 과정에서 수질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친환경 염료를 사용했다. 양파로 빛바랜 노란색을 냈고, 포도로 보라색, 대나무 숯으로 회색과 검은색, 올리브로 초록색 등을 물들였다.
환경 오염으로 가장 질타받아 온 패스트 패션의 스파(SPA·제품의 기획, 생산, 유통의 전 과정을 직접 맡아 관리하는 패션 업체) 브랜드들도 몇 년 사이 지속 가능한 패션을 선언하고 있다. 자라, 마시모두띠 등을 소유한 인디텍스(Inditex)의 파블로 이슬라 회장은 2025년까지의 ‘지속 가능성 전략’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모든 면, 린넨, 폴리에스터 등을 유기농 또는 지속 가능한 재활용된 재료로 바꾸고, 2020년까지 비닐백 사용을 없앤다. 또 2023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으며, 쓰레기 감축 프로그램을 통해 그룹 본사 및 물류 플랫폼, 매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100%를 재활용하거나 재사용할 것 등이 포함된다.
시릴 디옹과 프랑스 여배우 멜라니 로랑은 다큐멘터리 ‘내일’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여정을 담기도 했다. 2100년에 지구와 인류의 멸망을 예고한 한 리포트를 접한 그들이 내일을 바로 세우기 위해 희망의 증거를 수집하며 다큐멘터리는 시작된다. 멜라니 로랑이 만난 희망은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신재생에너지 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헌신과 열정이다.
또한 패션 운동가로 유명한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메시지가 있다. ‘적게 사고, 잘 고르고, 오래 입자(Buy Less, Choose Well, Make it Last)’. 지속 가능한 패션은 일부 환경 운동가, 혁명가, 전문가뿐만이 아닌 매일 옷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