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바뀐 바다’ 표지. 사진 김진영
‘뒤바뀐 바다’ 표지. 사진 김진영

20세기 기적의 소재라 불리던 플라스틱은 오늘날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여겨진다. 과거에 플라스틱을 무분별하게 사용했다면, 이제는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점점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 쓰레기통에 그리고 분리수거함에 넣어 버림으로써 당장 눈앞에서 사라진 플라스틱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다에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인간이 버린 형태 그대로, 또는 바람·햇볕·파도 등에 의해 작게 쪼개진 형태로 플라스틱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바다에 사는 다양한 생명체는 이 작디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또 다른 생명체로 오인해 집어삼켜 배 속에 플라스틱을 안고 살아간다. 돌고 돌아 눈에는 보이지 않는 5㎜ 미만의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자란 생물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고 만다.

맨디 바커(Mandy Barker)는 대양을 떠도는 플라스틱 잔해물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다. ‘뒤바뀐 바다(Altered Ocean)’는 작가의 지난 10여 년간의 작업을 담은 사진집이다.

영국 북부 지방의 바닷가 도시에서 태어난 작가는 바닷가에서 조개나 나뭇조각 등을 수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점점 인간이 만들어 쓰다 버린 물건들을 바닷가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는 조사를 진행하면서 북태평양 환류 지대에 해류로 인해 쓰레기가 거대하게 모여 만들어진 일명 쓰레기 섬(Garbage Patch)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의 해양에 있는 쓰레기 섬을 사진으로 찍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이 문제를 표현할 다른 방식을 고민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조개나 나뭇조각을 주울 때처럼 다시 바닷가로 향했다. 대신 이번에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에 주목했다. 처음에 그녀가 찍은 사진은 ‘뒤바뀐 바다’에 실린 사진과는 달리 평범한 이미지로,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쓰레기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은 환경 오염에 대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호소력 없는 실패한 사진임을 깨달은 맨디 바커는 작가로서 자신만의 시각적 해석을 고안했다.

맨디 바커는 우선 바닷가에서 플라스틱 잔해를 수집해 검은색 벨벳 배경 천을 설치해 둔 스튜디오로 가지고 가, 발견한 모습 그대로를 촬영했다. 그 결과, 이 잔해가 바다 깊숙이 어딘가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본 적도, 그리하여 생각지도 못한 어두컴컴한 바닷속 쓰레기의 존재를 상상하도록 하는 사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수집한 쓰레기를 전달받기도 하고, 바다의 플라스틱을 조사하는 과학 탐사선에 탑승해 쓰레기를 수집하기도 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수집한 플라스틱 페트병, 라이터, 축구공, 장난감 등 물건들을 그녀는 종류·패턴·색상 등으로 분류하고 모았다. 그리고 크기별로 다시 나누어 가장 작은 조각, 중간 크기 조각, 큰 조각을 흩뿌려 놓고 촬영했다. 포토샵에 사물의 크기별로 세 가지 레이어를 만들어 이미지를 넣어 합성하자, 바닷속 깊이감과 원근감이 표현됐다.

이러한 촬영과 합성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최종 이미지 속 잔해는 한데 모여 헤엄치는 살아있는 물고기 떼를 연상시키듯, 군집하여 바닷속을 유영한다. 맨디 바커의 시각적 해석을 통해 버려진 쓰레기 조각들은 새로운 종류의 해양 생물체라는 형식으로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 속 사물을 더 궁금해하도록, 그리하여 플라스틱 환경 오염이라는 문제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뒤바뀐 바다’는 이런 방식으로 21세기 바다의 새로운 주인공이 돼 버린 쓰레기를 보여준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사진작가로서 지난 10년간 나의 동기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쓰레기양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오랜 시간에 걸쳐 쓰레기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그리하여 쓰레기가 해양 생물에게,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기록함으로써, 전 세계 바다의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내 사진이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내 작업은 근본적으로 예술과 과학의 교차로에 서 있다.”

그녀는 플라스틱 환경 오염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연구를 기반으로 사실 조사와 통계 수치를 철저히 파악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 기반을 두고 미적으로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점 때문에 맨디 바커는 자신의 작업이 예술과 과학의 교차로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후반부에 실린 작가의 작업 노트는 작가가 얼마나 성실하고 끈질기게 환경 오염 문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미적으로’ 풀어내고자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해류, 지역별 차이, 매립지 문제를 조사한 부분은 과학자의 자세를 연상하게 한다. 다른 한편 물고기의 실제 움직임을 쓰레기의 움직임으로 시각화하고, 바닷가에 떠 있는 잔해물을 덩어리가 떠 있는 수프로 연결한 부분은 예술가의 작업 전개 과정을 담고 있다.


벨벳 배경 천 위에 플라스틱 잔해물을 얹은 모습. 사진 김진영
벨벳 배경 천 위에 플라스틱 잔해물을 얹은 모습. 사진 김진영
작업 전개 과정을 담았다. 사진 김진영
작업 전개 과정을 담았다. 사진 김진영

‘심미화 함정’ 피하려 꼼꼼한 설명 달아

바닷가에서 찍은 평범한 쓰레기 사진과 달리 맨디 바커가 만들어낸 ‘뒤바뀐 바다’ 속 이미지는 새로움으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을 수 있다. 관객이 보게 하는 데는 성공한다 하더라도, 환경 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이자 비평가인 리즈 웰스(Liz Wells)는 아름다움이 지닐 수 있는 역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맨디 바커는 아름다움을 사용해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녀는 관객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차례 늦게 깨닫게끔 한다.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전략은 보는 것이 함축하고 있는 바가 심미적 즐거움에 압도되고 마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즉 관객이 사진에 담긴 심각한 사회 문제를 숙고하기보다, 그저 펼쳐진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미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맨디 바커가 갤러리 전시에서 사진을 어떻게 다시 환경 오염이라는 문제로 맥락화하는지를 리즈 웰스는 강조한다. 갤러리에는 환경 오염과 관련된 많은 자료가 함께 제시되고, 관객에게 관련 질문을 담은 응답지가 전달된다. 사진집 ‘뒤바뀐 바다’의 경우에도 사진마다 꼼꼼히 설명이 붙어 있어, 이미지를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깊게 생각하도록 한다.

맨디 바커의 작업은 플라스틱 환경 오염이라는 문제를 사회 고발적 시선이 아니라 미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배를 갈랐더니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는 물고기나 고래의 사진을 보도사진으로 종종 만난다. 이러한 사진도 환경 오염에 대한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가로서 맨디 바커가 택한 방식은 달랐다. 매력적이고 시선을 끄는 이미지를 만들어 사람들이 우선 이미지를 보도록 하고, 이를 통해 인류가 놓여 있는 충격적인 현실에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 그녀가 의도한 바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