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회현동 레스케이프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 ‘라망 시크레’ 내부. 사진 라망 시크레
서울 회현동 레스케이프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 ‘라망 시크레’ 내부. 사진 라망 시크레

서울 명동은 관광객이면 누구나 한번은 찾는 명소. 그리고 명동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은 관광객이면 반드시 맛보는 필수 코스다. 명동길 건너편 신세계백화점 뒤에 있는 레스케이프 호텔 ‘라망 시크레’는 명동의 길거리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아뮤즈 부시(amuse-bouche)를 선보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예쁜 피사체를 찾는 여성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레스토랑이다.

본격적인 코스가 시작되기에 앞서 입맛을 돋우라고 제공하는 아뮤즈 부시를 명동의 길거리 음식으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이 식당 헤드셰프 손종원씨가 냈다. 손 셰프는 “외국인 친구들이 좋아하는 맥반석오징어구이, 핫도그 등 한국의 길거리 음식을 파인다이닝(fine dining·고급 미식)으로 풀어내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고 했다.

‘명동 거리의 한 입 거리들’이라는 이름의 아뮤즈 부시는 이 메뉴를 위해 따로 제작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접시는 투명하고 동그란 아크릴판이고, 흰 종이를 오려 명동 거리를 재현한 장식이 꽂혀 있다. 접시 앞쪽에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로 만든 공갈빵이 놓여 있다.

하지만 그냥 공갈빵을 작게 줄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숙성한 도미살을 넣었다. 공갈빵 뒤에 꽂혀 있는 아이스크림도 단순한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사과를 갈아 말려 아이스크림콘처럼 만든 뒤 엔다이브와 피칸을 넣고 푸아그라(거위 간)를 얹었다.

회오리감자는 감자를 이용해 만든 튀일(바삭한 프랑스 과자) 안에 콩테·체다치즈무스를 넣었다. 접시 뒤쪽의 파인애플은 팔각·산초 등 향신료와 함께 조리해 이탈리쿠스라는 리큐르로 만든 젤과 민트를 얹었다.

길거리 음식을 앙증맞은 크기로 축소한 아뮤즈 부시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찍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귀엽고 예쁘다. 손 셰프는 “보는 순간 ‘귀엽다’며 웃음 지을 수 있는 메뉴를 원했다”고 했다. “파인다이닝은 무게 잡는 음식만 나온다는 편견을 깨고 싶기도 했고요.” 이처럼 손 셰프의 음식은 재미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음식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재해석한다.

지금은 메뉴에서 빠졌지만 얼마 전까지 메인으로 나오던 ‘남산비프가스’는 남산 왕돈가스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락없는 돈가스처럼 보이지만 먹어보면 최상급 투플러스 안심스테이크다.


‘명동 거리의 작은 한입거리들’. 사진 라망 시크레
‘명동 거리의 작은 한입거리들’. 사진 라망 시크레
큰 사랑을 받았던 ‘당근꽃 타르트’. 사진 조선일보 DB
큰 사랑을 받았던 ‘당근꽃 타르트’. 사진 조선일보 DB

음식에 담긴 대단한 정성과 수고

재밌지만 그렇다고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음식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정성과 수고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아뮤즈 부시 중 하나인 회오리감자는 감자를 작은 나선형으로 깎아 튀기고 양파를 진한 단맛이 나도록 볶아 만든 무스로 속을 채우고 알록달록한 식용 꽃을 얹는다. 남산비프가스는 스테이크에 얇은 크러스트를 얹어 돈가스처럼 보이게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요리는 지금은 메뉴에서 빠진 ‘당근꽃 타르트’. 미니 당근을 종잇장처럼 잘라 만든 꽃잎을 발효 버터에 커피를 갈아 섞은 무스로 모아 붙였다. 꽃잎 사이에는 당근 잎을 꽂아 장식했다. 먹기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입안에서는 그 맛이 대단히 정교했다.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배려는 음식뿐 아니라 식당 곳곳에서 느껴진다.

메뉴판은 손님 이름을 인쇄해 편지처럼 만든다. ‘나만을 위해 만든 맞춤 메뉴판’인 셈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아 찾은 손님에게는 축하 인사말도 적어준다. 손 셰프는 자신의 음식을 “뉴욕이나 파리에는 없는, 서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양식”으로 정의한다. 손 셰프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양 음식이 한국에 들어와 새로운 스타일로 바뀌었잖아요. 그것 또한 한국 식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명동, 남산 등 서울의 여러 장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라망 시크레의 음식은 외국인 손님들에게는 한식의 또 다른 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면 고속도로 휴게소 호두과자 봉지를 손님 손에 하나씩 쥐여준다. 봉지 안에는 호두과자처럼 생긴, 주방에서 직접 구운 호두 마들렌(프랑스 과자)이 들어있다. 전통 한식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한국적인 맛과 환대가 또 있을까. 외국인 특히 미식가인 손님을 모시고 가기에 좋은 곳인 이유다.


라망 시크레(L’Amant Secret)

분위기 살짝 퇴폐적이란 느낌이 들 만큼 강렬하게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고급스럽다. 벽이며 벨벳으로 씌운 의자와 소파 등 실내가 온통 붉은빛인 데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부분 조명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은밀하고 아늑하다. 연인이 기념일에 오기에 알맞겠다. 여자 친구들끼리 모임 하기에도 좋은 분위기다. 어디를 찍건 혹은 어디서 셀카를 찍어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듯하다.

서비스 개장 초기 어수선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금세 같은 그룹에서 운영하는 웨스틴조선호텔 수준으로 매끄러워졌다. 갈수록 능숙하고 섬세해지고 있다.

추천 메뉴 세트 코스만 있다. 셰프 테이스팅 메뉴가 점심 9만원, 저녁 15만원. 평일 점심에는 코스를 짧게 압축한 비즈니스 런치(5만5000원)도 있다.

음료 호텔 안에 있는 식당인 데다 바로 옆에 바까지 있으니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주문해 마실 수 있다. 셰프와 소믈리에가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와인을 코스별로 맞춰주는 와인 페어링을 추천한다. 3잔 7만5000원, 4잔 10만5000원. 와인 리스트는 요즘 유행하는 내추럴 와인을 비롯해 종류별로 빠짐없이 상세하게 구비돼 있다.

영업 시간 점심 월~토요일 오전 11시 30분~오후 3시·일요일 낮 12시~오후 3시, 저녁 오후 5시 30분~오후 10시·일요일 저녁 휴무

예약 권장

주차 편리. 발레파킹 서비스

휠체어 접근성 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