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30~40대 음악가들. 왼쪽부터 테오도르 쿠렌치스(48)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 요아나 말비츠(34) 뉘른베르크 오페라 예술감독, 안드리스 넬손스(42)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사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30~40대 음악가들. 왼쪽부터 테오도르 쿠렌치스(48)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 요아나 말비츠(34) 뉘른베르크 오페라 예술감독, 안드리스 넬손스(42)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사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클래식 여름 축제가 무산됐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루체른 페스티벌이 취소됐고, BBC 프롬스는 무관중 스트리밍 서비스로 진행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이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e)은 5월 말까지 축제 진행 여부를 정한다고 공지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사무국은 올해 커다란 상업적 성과를 기대했다. 행정감독 헬가 라블 슈타들러가 2018년부터 서울을 비롯해 각지에서 100주년 기념 기자 회견을 열어 바람몰이에 나섰고, 세부 프로그램이 발표되기 전부터 여행사 단위의 단체 티켓 요청이 쇄도했다. 2019년 축제 땐 총 3억1200만유로(약 4140억원)를 벌었고, 티켓 매출과 6500명으로 구성된 후원회 기부금, 대기업 후원금으로 수입액의 75%가량을 채웠다.

축제 운영진은 실내 공연 대신 광장 행사로라도 100주년을 기념하려는 의지를 현지 언론에 밝혔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때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다나에의 사랑’을 드레스 리허설로 간소화해 축제를 단축 운영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모체는 1917년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주도로 설립된 잘츠부르크 축제 극장 협회다.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자문역으로 영입돼 1920년 8월 22일 잘츠부르크대성당 앞 광장에서 연극 ‘예더만’을 올리며 축제가 시작됐다. 클래식 장르는 1921년부터 본격적으로 편입됐고, 지금도 연극, 오페라, 콘서트가 축제의 세 축이다.

1924년 재정난으로 한 차례 취소됐지만, 냉전 기간에도 축제는 지휘자 카를 뵘(1894 ~1981),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의 카리스마로 흔들리지 않았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 필)가 먼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터를 잡았지만, 카라얀이 축제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자신이 지휘하는 라이벌 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 필)도 페스티벌에 들였다. 지휘계의 무서운 신인과 성악의 톱스타가 카라얀과 협업하기 위해 속속 잘츠부르크를 찾았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1975년 카라얀이 지휘한 ‘돈 카를로’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데뷔했고, 데뷔 40주년 음악회를 열만큼 축제는 도밍고와 밀접하다. 성 추문으로 세계 메이저 오페라하우스가 도밍고를 퇴출하는 와중에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여전히 올해 베르디 ‘시칠리아의 저녁 기도’에 도밍고 캐스팅을 유지한다. 2000년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배출한 ‘히로인(여주인공)’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도 올해 오페라 무대 ‘토스카’ 명단에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동상.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동상.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랜 기간 연주해 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랜 기간 연주해 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카라얀 카리스마 사라진 이후 흔들리는 잘츠부르크

카라얀 사망 이후 축제에 잠복했던 위험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총감독을 지낸 제라르 모르티에가 실험적 오페라를 통해 카라얀 색채 지우기에 나섰지만, 거장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반기를 들었고, 엘리트 음악가들은 클라우디오 아바도 전 베를린 필 음악감독이 주재한 루체른 페스티벌로 발길을 돌렸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예술감독을 지낸 페터 루시츠카는 2006년 모차르트 오페라 22개 전곡을 한 시즌에 올리는 대업을 이뤘지만, 축제가 공들인 성악 신인 아네테 다시, 모이차 에르트만의 대외적 명성은 기대와 멀었다.

전반적으로 2010년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관광 수입과 네슬레, 아우디, 지멘스, 롤렉스의 장기 후원으로 재정은 양호했다. 축제 공식 보고서가 밝힌 201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경제 효과는 3억9800만유로(약 5283억원)였다. 중앙정부 40%, 주 정부, 시, 시 관광청이 각각 20%씩 분담하는 공적 보조금 배분은 여타 축제들이 모델로 삼는다. 시니어 연령의 고액 티켓 구매자를 ‘노인’에서 ‘성인’으로 대접하는 마케팅 기술도 유명하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축제의 예술적 리더십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같은 레전드급 예술가의 기호에 끌려다녔다. 2010년대의 예술적 성취를 규정할 어떤 키워드가 없다. 2020년대에도 축제가 테오도르 쿠렌치스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같은 슈퍼스타를 보는 창구 중의 하나로 머문다면, 충격적인 명연으로 세계 클래식 시장을 재편하던 카라얀 시절의 영화(英華)는 다시 오기 어렵다.

사실 올해는 프로그램만 보면 모차르트 기념해에 비해 부실하다. 1991년(모차르트 서거 200주기), 2006년(모차르트 탄생 250주년)만큼 예술성이 담보된 대형 이벤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90대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93), 베르나르트 하이팅크(91)가 주축을 맡았던 예술가 인선(人選)과는 노선이 판이하다. 테오도르 쿠렌치스(48)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42)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등 40대 음악가들이 올해 페스티벌을 이끈다. 특히 독일 출신 여성 지휘자 요아나 말비츠(34) 뉘른베르크 오페라 예술감독의 연주 계획이 독일어권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폐쇄적이라고 알려진 교향악단 빈 필과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 피리’를 연주한다. 젊은 음악가들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미래에 비전을 제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