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엔딩에는 어떤 비유도 없다. “지표면의 필사적인 손아귀를 벗어나 솟아오르고” 있었다는 말에 눈썹을 찌푸리고 찾아내야 할 이면의 의미는 없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끝, 사라짐, 죽음, 이별. 지표면에서 멀어지며 고도를 높이는 남자는 점점 더 하늘에 가까워지며 생의 엔딩을 맞고 있다. 하늘에 가까워진 그가 어디로 날아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을을 벗어나고 지구를 벗어나고 존재를 벗어나려는 듯한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가벼워질 수 있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이런 방법으로 생의 마지막을 맞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풍선에 매달린 것처럼 둥실둥실 떠오르는 기이한 비행이 마냥 부럽다는 말은 아니다. 기구나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워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게도 그토록 가벼웠던 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번쯤 상상해 보고 싶은 것이다. 땅에 매여 있지 않아 사소한 바람에도 휩쓸릴 수 있는 가벼움에 대해서 말이다.

‘고도에서’는 몸무게가 줄어드는 남자와 그 이웃들의 이야기를 소박하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그린 작품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몸무게가 줄어드는 스콧은 맨발로 서면 키가 195㎝에 이르는 장신이다. 처음엔 살이 빠지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살이 빠져가는 모양새가 이상했다. 겉보기엔 109㎏쯤으로 보이는데 체중계 위에만 올라가면 96㎏, 95.5㎏, 95㎏…, 보이는 무게와 측정된 무게 사이에 오차가 너무 컸다. 물리적 차원에서 변화가 없는데도 체중이 줄어드는 기이 현상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각과 완전히 반대인 경우다. 일상에서의 고민은 차라리 이런 것이다. 물리적으로 발목을 잡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 우리의 무거움이 결코 우리의 행복을 위한 무거움이 아닌 것과 달리 스콧의 가벼움은 그의 행복을 위한 가벼움이 된다. 끝내 하늘로 올라간 스콧이 어디에 도착할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몸에서 빠져나간 무게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 불합리한 이유로 이 땅에, 이 마을에 뿌리 내리지 못한 사람들. 그들이 적응할수록 스콧이 떠날 시간이 가까워져 온다.

에너지는 이동하되 전체 에너지의 질량은 보존된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모든 수학, 과학 시간에 배운 법칙들을 통틀어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법칙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사라진 에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으니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괜스레 안심이 되고 마음이 훈훈하게 달궈지는 기분이다. 나는 이 소설의 엔딩이 좋다. 남자의 몸에서 빠져나간 에너지가 지상에 발붙이고 살 수 없는 소외된 자들의 삶에 필요한 에너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가령 스콧과 한마을에 사는 사람 중에는 식당을 운영하는 레즈비언 커플이 있다. 그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식당 운영에 곤란함을 겪고 있을 때 스콧의 기지가 커플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편견을 없앤다.


힘의 분배는 정의로운가

한편의 동화 같은 상상력을 보여 주는 이 소설은 ‘나는 전설이다’로 잘 알려진 공상과학(SF) 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 ‘줄어드는 남자’를 오마주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날, 몸이 줄어드는 병에 걸린 중년 남성이 겪는 고통과 외로움을 다룬 작품이다. 184㎝였던 키가 하루하루 조금씩 줄어들며 몸이 작아지자 직장을 잃게 되고 아내는 잠자리를 피하며 어린 딸은 더는 자신을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 데다 가족과 대화는 서서히 단절된다.

결국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작아진 채 지하실에 떨어진 그는 질병과 배고픔 그리고 그를 사냥하려는 거미로부터 목숨을 지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한다. 원작소설의 주인공인 스콧은 줄어들면서 고통받지만, 스티븐 킹의 주인공 스콧은 줄어들면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에게서 빠져나간 에너지가 에너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행복을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원작의 스콧은 소외로부터 고통받지만 스티븐 킹의 스콧은 고통받는 그들의 편이 된다. 어찌 됐든 스티븐 킹의 ‘고도에서’ 전체 에너지는 줄어들지 않는다.

몸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은 스콧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는 마음 또한 내려놓는 방식으로써만 우리는 성숙한 시민이자 의연한 어른이고 다정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다. 더 일찍 내려놓으면 더 빨리 가벼워질 수 있겠지. 고도에서는 공동체에서 힘의 분배가 정의롭게 이뤄지고 있는지도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사람에게 너무 많이 집중된 힘은 곧 다른 사람에게 결핍된 힘을 뜻하리라. 스콧의 잃어버린 무게가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너무 늦은 질문이 되지 않도록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내 생의 한 컷으로 저장해 두기로 한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스티븐 킹(Stephen King)

1947년 미국 메인주(州)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형이 발행하던 동네 신문에 기사를 쓰며 글쓰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1974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캐리’로 이름을 알렸다.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던 원고를 아내가 설득해 고쳐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지금까지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3억50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스티븐 킹은 ‘공포의 제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간 내면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데 탁월한 작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포 소설뿐만 아니라 공상과학(SF), 판타지,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는 동시에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명실공히 ‘이야기의 제왕’으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에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 도서상에서 미국 문단에 이바지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1996년에는 오 헨리상, 2011년에는 ‘LA 타임스’ 도서상을 받으며 문학성을 입증했다. 이외에도 브램 스토커상을 15회, 영국환상문학상과 호러 길드상을 각 6회, 로커스상 5회, 세계환상문학상을 4회 받았다. 2015년에는 처음 도전한 탐정 추리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로 영미 최고의 추리상인 에드거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