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소설 ‘밤의 책’을 내고, ‘분노의 날들’로 페미나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실비 제르맹(66). 사진 타데우시 클루바
첫 장편소설 ‘밤의 책’을 내고, ‘분노의 날들’로 페미나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실비 제르맹(66). 사진 타데우시 클루바

밤의 책
실비 제르맹 지음|김화영 옮김|문학동네
504쪽|1만5800원

유럽 예술사에서 16세기와 17세기는 바로크 시대였다. 바로크(baroque)는 구슬같이 반듯한 진주가 아니라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파생된 미학 용어다. 처음엔 건축과 조형 예술에서 바로크는 파격적 발상을 내세워 역동적이면서 화려한 문화의 융성을 주도했다.

문학에선 강한 대립과 긴장이 주조를 이룬 작품을 빚어냈다. 생명과 약동의 희열을 거침없이 분출하면서도, 유럽을 30년간 할퀴고 간 전쟁의 후유증을 앓는 인간의 절망을 담았다. 흐르는 물의 운동성을 통해 속세의 덧없음을 강조하면서도, 묘지 위로 솟아난 무지개와 형태가 바뀌는 구름의 색채로 기독교의 천국을 향한 갈망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프랑스 소설가 실비 제르맹(66)의 장편 소설 ‘밤의 책’은 1985년에 발표돼 바로크 문학의 부활과 쇄신을 한꺼번에 보여줬다. 1870년 보불전쟁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까지 다룬 소설이다. 전쟁에 내몰린 인간이 신의 침묵을 향해 던지는 외침이 상징적인 ‘밤’의 연속에 맞서 싸우는 인간 실존의 드라마로 형상화됐다. 신화적 상상력으로 현실에 환상의 숨결을 불어넣고, 기독교의 상징이나 고대 신화, 중세 전설의 비유를 암시하는 인물들의 삶과 꿈을 제시한 것이다.

소설 문체는 이야기 전달을 위한 산문의 차원을 뛰어넘어 울퉁불퉁한 진주처럼 미묘하게 파이고 꿈틀거리는 언어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춤추는 촛불 빛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단속적으로, 들쑥날쑥하게 빛나며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각조각 분리된 듯 보이는 그 얼굴은 살과 살갗으로 되어 있다기보다는 잘라냈다가 여러 방향으로 다시 붙인 종잇조각들의 유동적인 조합에서 생겨나는 모습 같았기에….”

이 소설의 작가 제르맹은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첫 장편소설 ‘밤의 책’ 이후 1989년 소설 ‘분노의 날들’로 페미나 문학상을 받아 오늘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섰다. ‘밤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지난 2006년 실비 제르맹의 소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처음 국내에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최근에 낸 ‘밤의 책’ 번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작가의 다른 작품은 물론이고 철학박사학위 논문까지 탐독하면서 깊이 연구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세상의 출현을 주재한 시간 밖의 밤 그리고 바람과 불이 그 낱장을 넘겨본 어떤 거대한 육신의 책인 양 세상의 역사를 연, 전대미문의 침묵의 외침”이란 부분을 인용한 뒤 신화 해석을 하듯이 해설을 썼다.

“그 신화적 통과 의례의 행로는 바다에서 민물로, 물에서 뭍으로, 숲에서 땅으로, 평지에서 높은 언덕 위의 농가로 그리고 수많은 전쟁의 진창과 참호와 불비를 통과하고 그 밤과 외침의 역사는 마침내 모든 존재들을 불 바람으로 다 태운 다음 ‘재’로 돌아간다. 그 잿더미에서 아이가 태어나 새로운 생명을 외친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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