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Ask A Mortician)’를 운영 중인 LA 장의사 케이틀린 도티(Caitlin Doughty).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라는 책을 썼다. 사진 케이틀린 도티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Ask A Mortician)’를 운영 중인 LA 장의사 케이틀린 도티(Caitlin Doughty).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라는 책을 썼다. 사진 케이틀린 도티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뉴스 화면엔 도시 곳곳에 늘어선 시신 트럭과 관이 등장했다. 죽음이 삶의 천막을 찢고 들어온 듯 서늘하고 일상적인 장면을 보며, 홀린 듯 장의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화장터엔 인간만사가 다 있다. 아끼고 돌보며 평생을 지내다 뼛가루까지 합쳐달라는 애틋한 부부부터 아홉 살 죽은 딸의 장례비를 백화점 카드로 결제하려는 철없는 부모까지. 어린 시절 쇼핑몰에서 추락사를 목격한 케이틀린 도티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기 위해 죽음을 공부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후 실전을 위해 찾아간 첫 직장이 시체를 태우는 ‘웨스트윈드 화장터’였다. 그곳에서의 파란만장한 경험을 녹여 죽음에 관한 리얼한 르포르타주(reportage·르포)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라는 책을 썼다.

솔직하며 철학적이며 참여적인 실전 장례 리포트를 읽는 동안,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이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그것은 두려움보다는 안도였다. 화장로 한가운데서 좋은 죽음을 사색하는 장례 숙련공이자 1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Ask A Mortician)’의 운영자인 케이틀린 도티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우리는 다 죽는다’와 ‘사랑하는 이의 시체를 모른 체하지 말라’. 시체를 태우며 얻은 결론에 따르면 ‘죽음은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천천히 우주로 이동 중인 상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올해 상반기에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다. 가슴 아프지만 처리되지 못한 시체가 냉동고에 쌓이는 모습을 봤다. 장의사로서 이 상황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나.
“한때 LA도 이동제한조치가 내려졌었다. 내가 운영하는 장례식장에도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들의 시신이 많이 들어왔다. 아직 감당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LA의 코로나19 치명률은 뉴욕에 비하면 낮다. 반면 뉴욕 시민과 그곳 장례업 동료들에게는 두려운 상황이다. 화장하지 못한 시신이 쌓이고, 일부 국가에서는 임시 매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응급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것조차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역병이 돌 때는 시신이 길바닥에 나뒹굴며 아수라장이 됐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엔 적절한 방법으로 화장 또는 매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화장장이라는 공간은 당신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
“화장장에 있다 보면 죽음을 들이마시게 된다. 삶을 호흡하면서 죽음을 마시는 거다.”

당신이 만난 첫 시신은 어떤 모습이었나.
“바이런이란 이름의 노인이었다. 두 발끝에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두 눈은 고인 연못 같았고 입은 벌어진 채 일그러져 있었다. 분홍색 면도기로 죽기 직전 며칠간 자란 까칠한 수염을 미는 게 나의 첫 임무였다. 그분은 두 시간 동안 타올랐고 나는 장갑을 끼고 화장로에서 따스한 두개골을 꺼내 부서뜨렸다. 회계사이자 아버지였던 바이런은 그 순간 완전히 과거 시제가 됐다.”

사람들이 장의사에게 무엇을 가장 많이 물어보나.
“정말 다양하다. ‘우리 어머니의 해골을 벽난로 위에 안치해도 되나요?’ ‘아버지를 활활 타는 바이킹 배에 실어 화장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와 같은 황당한 질문도 받는다. 대개는 눈에 보이는 장례식 이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궁금해한다. ‘화장하면 실제로 우리 엄마의 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방부처리액은 어떻게 작용하는 것이고 어떤 성분으로 되어 있을까?’ ‘우리 아빠가 무덤에 묻히고 나면 1년 뒤 그 시신은 어떤 모습일까?’ 같은 시체의 변화에 관한 질문들이다.”

장례 회사는 당신에게 좋은 직장이었는지, 그 일을 자랑스러워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했던 작업을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체와 인간 먼지를 다뤘던 경험은 내가 가졌던 직업 중 최고였다. 지금은 내 소유의 장례식장을 경영하고 있지만, 종종 화장장에서 했던 구체적인 일이 그립다. 매번 새로운 관을 만나고 태우는 일은 죽음과 순수하게 연결돼 있다. 하루가 시작되면 혼자서 시신을 가져다가 화장로에 넣고, 유골을 꺼내 마지막 분쇄 작업까지 마친 후 유골함에 담아 유족에게 드렸다. 한 사람의 시신이 유골함으로 옮겨지기까지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23세였다. 웨스트윈드 화장터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시체와 동고동락하면서 죽음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시체에서 무엇을 배웠나.
“예전엔 몰랐던 감정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망설임 없이 곧장 울거나 웃기 시작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면, 원수 같았던 사람을 용서하고 부모님께 전화하고 여행을 더 하고 사랑에 빠지고 싶을 거다.”

누구에게 영감을 받았나.
“죽음이 우리가 살면서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죽음의 부정’이라는 책을 쓴 어네스트 베커에게 배웠다. 우리는 글을 쓰고, 예술작품을 만들고, 건물을 짓고, 아이를 갖고, 일의 의미를 찾는다. 이유는 한가지다.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니까.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이 심장을 꿰뚫어야 오늘이 더 절실해진다. 우리는 다 죽는다.”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나.
“모린과 매슈를 화장했을 때다. 모린이 먼저 죽어 그녀의 아파트에 찾아가 그 재를 남편 매슈에게 건네줬다. 휠체어를 타던 50대 남자 매슈는 고맙다며 유골함을 가만히 흔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화장터로 매슈의 시체가 왔다. 아내의 재와 함께 태워달라는 당부와 함께. 그들의 육체가 섞여 하나의 먼지가 되는 걸 지켜봤고, 많이 울었다. 장의사라면 일하면서 눈물 흘렸던 기억이 있을 거다. 감정적인 거리를 통제하는 게 쉽지는 않다.”

마음에 자주 격동이 일어나는가.
“가령, 자녀가 있는 장의사라면 어린아이의 몸을 장례 절차를 위해 준비해야 할 때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화장장의 디렉터인 마이크(그는 아기 아빠였다)의 부탁으로, 11개월 된 아기의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대신 잘라준 적이 있다. 아이의 부모가 그걸 갖고 싶다고 했다. 내 경우엔 나와 비슷한 나이의 고인이 마약 남용으로 사망한 시체를 볼 때 많이 힘들다. ‘내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면 내가 저렇게 되었을 수 있겠구나’ 싶다.”

미국에는 매장이나 화장 전에 시체를 메이크업해서 유족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이 있다. 당신은 그 절차를 우리를 진짜 죽음에서 분리하는 ‘부자연스러운 쇼’라고 비판했다. 망자를 ‘애완 인형’으로 만든다고.
“맞다. 아무 처리도 하지 않은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입은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것처럼 벌어져 있다. 당신과 나,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죽음의 진짜 얼굴이다. 하지만 가족이 보고 싶어 하는 이미지는 아니다. 장의 업체는 가족들에게 500달러를 청구한다. 그 대가로 시신은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쉬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는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염습’ 문화가 있다. 가족이 원하면 수의를 입히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좀 더 자연스럽다고 알고 있다. 사실 미국의 죽음 산업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방부처리 문제. 부패를 막기 위해 포름알데히드와 같이 독성이 강한 물질을 시체에 주입하는데, 그 작업은 방부처리사에게도 위험하고 환경에도 좋지 않다. 둘째, 메이크업한 시체는 유족이 보기에만 좋을 뿐, 만질 수도 없고 어떤 관계를 맺을 수도 없는 대상물이 된다. 나는 유족들이 고인의 몸을 단장하는 과정에 참여해보길 권한다. 고인의 몸을 함께 준비하고 조문객을 맞이하면, 죽음이 삶의 한가운데 있다는 걸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장의 산업은 장벽을 높이 쌓아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가족들을 한없이 무능하게 격리한다. 시체와 분리되는 게, 최선의 애도는 아니다. 죽음은 추상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애도란 이렇다. ‘시체를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떠났으며 이제 더는 삶이라는 경기에서 활동하는 선수가 아님을 안다. 시체를 바라보면서 자신을 보고 자기 자신도 언젠가 죽을 것임을 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스스로 알아차림을 보는 것이고, 그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케이틀린 도티는 “우리가 죽음에서 너무 멀어져 부자연스럽고 인공화된 ‘시체 놀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 케이틀린 도티
케이틀린 도티는 “우리가 죽음에서 너무 멀어져 부자연스럽고 인공화된 ‘시체 놀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 케이틀린 도티

죽음의 풍경을 멀리하면서 우리가 정말로 잃어버리는 건 뭘까.
“우리가 잃는 것은 죽음에 대한 현실감이다. 숨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시신을 마주한 경험 없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의 모든 문화는 우리를 실체로서의 몸에서 떼어놓으려 한다. 정보통신(IT) 기술, 인공지능, 가상현실을 보라. 모두 육체 없는 세계로의 환상적인 모험이다. 나는 생명이 빠져나간 시체에 대한 감각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현실 세계로 끌어당겨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고, 우리는 이런 살덩어리를 입고 걸어 다니고 있지만, 결국 언젠가는 제아무리 노력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시체에서 배운다. 매일 아침,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건 중요하다. 인류가 수천 년 이어온 장례 전통에 참여하지 못하고, 시신을 다루던 자연적인 방식이 변할수록 우리는 중요한 생의 감각을 잃어버릴 거다.”

시체 트럭을 운전하고 하루에도 수십 구씩 여러 방식으로 시신을 다뤄왔으니, 당신은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겠군.
“나도 죽음이 두렵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과연 합당한 목표일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투쟁하거나 도피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차도로 뛰어들 게 분명하다. 다만 지금 나는 죽음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고, 죽음의 공포가 밀려올 때조차 차분히 그 상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현실에서 평범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시체를 어떻게 대면해야 하나.
“무작정 시체안치소에 들어가라면, 다들 끔찍하겠지.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 남편 혹은 자녀의 시신 곁에 있으라고 한다면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평생 사랑해온 가족이잖나. 엄마는 어린 시절의 당신을 돌봤다. 똥오줌을 닦아주고 깨끗하게 목욕시켜 주셨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이번엔 당신이 엄마를 닦아주고 씻어줄 수 있다. 남편이나 아내를 오래 간병해왔다면 그 돌봄을 마지막 과정에 할 수 있을 거다. 당신이 씻기고 닦아주던 아이라면 아이가 죽은 뒤에도 돌봐주고 싶지 않을까? 영혼이 떠난 집이지만, 사랑했던 이가 머물던 몸이니까. 이 경험은 우리가 이승과 저승을 좀 더 주도적으로 겪어낼 힘을 준다. 실제로 많은 경험자가 이후 긍정적인 변화를 겪는다. 슬픔을 감당하는 것은 어렵지만, 놀랍게도 그 현장에 직접 참여했던 것이 슬픔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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