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강공순할매집’ 교보점의 ‘할매탕’.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 여의도 ‘강공순할매집’ 교보점의 ‘할매탕’. 사진 조선일보 DB

해장국은 한국만의 독특한 식문화다. 물론 숙취와 해장은 인류가 술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이래로 끊임없이 고민해온 주제. 고대 그리스인도 숙취로 꽤 고생했는지, 숙취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알고스(algos)’는 어원이 ‘고통’이다. 세계 각국이 해장을 위해 먹는 음식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아예 ‘해장국’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진 음식은 드물다. 해장국은 물론 콩나물국, 북엇국, 라면, 짬뽕 등 다양한 국물 음식이 해장을 위해 대량 소비되는 나라는 한국 외에 찾기 힘들다. 그래서 한국에 오면 주당(酒黨)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해장국을 먹어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많다.

한국에선 왜 해장 문화가 발달했을까. 타고난 유전자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아시안 플러시(Asian Flush)’란 표현이 있다. 플러시란 술을 마시면 얼굴이 발그스름해지는 홍조 현상을 뜻한다. 이 홍조 현상이 다른 지역이나 인종보다 아시아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숙취의 주요 원인은 에탄올(알코올)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 그런데 동아시아인 인구의 절반은 아세트알데히드를 유난히 빨리 분해하는 반면 배출은 느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한국인은 술에 약한 체질을 타고난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시는 술의 양은 어느 민족보다 많다. 술병으로 고생할 수밖에 없고 쓰린 속을 달랠 해장국이 다양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해장국에 대한 최초의 국내 기록은 고려 말기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老乞大)’에 나오는 ‘성주탕(醒酒湯)’이다. 술 깨는 국이란 뜻이다. 고깃국물에 고기를 잘게 썰어 국수와 함께 넣고 천초(川椒) 가루와 파를 넣는다고 나온다. 천초는 초피나무 열매인 초피(椒皮)를 말한다. 요즘 인기인 마라탕의 핵심 양념인 화자오(花椒)가 초피다. 마라탕의 얼얼한 매운맛이 화자오에서 나온다. 초피와 화자오는 엄격하게 구분하면 조금 다르지만, 둘 다 초피나무 속이라 얼얼한 풍미가 거의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고추가 도입되기 전 김치 담글 때 매운맛과 방부 효과를 위해 넣어왔다. 요즘도 추어탕에 넣어 먹는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해장국이 나오지 않는다. 당시 조리서는 사대부 가문에서 집안 음식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썼던 것이지, 해장국처럼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소개하려고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신윤복의 ‘주막도’ 등 조선 말기 풍속화에 해장국이 등장한다. 문헌도 있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소개된 ‘효종갱(曉鍾羹)’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비싸지만, 당시 서민은 구경하기도 힘들었을 해삼과 전복, 송이·표고버섯, 소갈비 등 귀한 재료를 배추속대, 콩나물 등과 함께 끓이는 고급 해장국이다. 경기도 광주가 효종갱 잘 끓이기로 소문났는데, 서울 고관대작들이 즐겨 주문해 먹었다고 한다. 온종일 푹 끓인 효종갱을 밤에 항아리에 담아 식지 않게 솜으로 싸서 서울로 보내면 효종(曉鐘), 즉 새벽종이 울릴 때 재상 집에 배달된다고 하여 효종갱이다.


서울 여의도 ‘강공순할매집’의 기본 반찬. 특이하게 떡볶이가 있다. 사진 김성윤 조선일보 기자
서울 여의도 ‘강공순할매집’의 기본 반찬. 특이하게 떡볶이가 있다. 사진 김성윤 조선일보 기자

속이 저절로 풀리는 칼칼한 매운맛

‘강공순할매집’은 해장국으로 서울 여의도 일대를 평정했다고 평가받는 식당이다. 대표 메뉴인 ‘할매탕’은 전복과 낙지 등 값비싼 재료가 듬뿍 들어간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효종갱과 비슷하다. 강공순할매집은 여의도에만 3개점이 있다. 이 중 교보증권빌딩 지하에 있는 ‘교보점’에서 할매탕을 맛봤다. 외관은 허름하다. 여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빌딩 지하상가 식당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내부는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넓다.

자리 잡고 할매탕을 주문하자 반찬 6가지가 먼저 상에 깔린다. 특이하게 떡볶이가 반찬으로 나왔다. 식당 주인은 “우리 집은 할매탕만큼이나 떡볶이가 반찬으로 나오는 게 유명하다”며 “다른 반찬은 그때그때 바뀌지만, 떡볶이와 달걀말이는 반드시 나온다”고 했다. 주인의 자부심 담긴 설명대로 떡볶이와 달걀말이 둘 다 맛있다. 떡볶이는 적당히 매우면서 달콤하니 계속 젓가락을 부른다. 잘게 다진 채소를 넣고 도톰하게 말아서 부친 달걀말이는 부드럽고 포슬포슬하다. 깍두기와 열무김치, 잡채, 낙지젓 등 나머지 반찬도 간이 꼭 맞는다.

반찬을 집어 먹는 사이 검은 뚝배기에 담겨 펄펄 끓는 할매탕이 나왔다. 맑은 국물 위에 미나리와 대파가 떠 있고 그 아래로 낙지와 전복이 뚝배기를 가득 채웠다. 국물이 기름기 하나 없이 말갛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의외로 매운맛이 강하다. 청양고추를 써서 텁텁하지 않으면서 칼칼하다. 아린 혀를 국물이 달래준다. 잡스러운 맛이나 향이 전혀 없이 깨끗하고 시원하다. 국물을 꿀꺽 삼켰다. 칼칼하고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더니, 순식간에 오장육부와 몸 전체로 퍼져 나간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속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속이 쓰렸다면 얼마나 개운했을지 상상이 된다.

묘하게 중독성 있는 국물을 끓임없이 퍼마시다 전복과 낙지가 생각났다. 둘 다 숟가락으로 쉽게 뜰 수 있는, 한입에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잘려져 있다. 그 양이 웬만한 요리 한 접시 만들 수 있을 만큼 많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와사비(고추냉이)를 살짝 푼 간장에 찍어도 좋다. 중간중간 파와 미나리를 집어 먹으면 입안이 개운하게 정리된다. 아삭한 식감이 죽지 않게 살짝 숨만 죽을 정도로 끓인 솜씨에서 내공이 느껴진다. 뚝배기가 절반쯤 비었으면 공깃밥을 말아 먹는다. 완벽하게 해장된 위장이 곡기(穀氣)를 반갑게 맞아준다. 숙취로 힘들어하며 입장한 직장인들이 한결 편안한 얼굴로 자리에서 씩씩하게 일어선다.

전복을 넣어 훨씬 시원한 ‘전복라면’이나 조개 중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백합을 넣고 맑게 끓이는 ‘생합탕’도 할매탕만큼이나 걸출한 ‘해장력’을 지녔다. 살아 꿈틀대는 낙지는 미식을 즐기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에서 맛보고 싶은 음식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으니, 함께 시켜주면 좋아하겠다.


강공순할매집 교보점

분위기 허름하지만 깨끗하다. 오래됐지만 잘 관리된 식당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서비스 정중하거나 깍듯하지는 않지만 푸근하고 친절하다.

추천 메뉴 할매탕 1만4000원(특 2만원), 멍게·꼬막 비빔밥 각 1만2000원, 산낙지볶음 1만5000원, 전복죽 1만2000원, 전복라면 1만원, 생합탕 1만5000원, 산낙지철판·박속연포탕·전복해물탕 각 5만5000·6만5000원, 산낙지·홍삼·피문어· 갑오징어 시가

음료 소주, 맥주, 막걸리 등 대중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을 낸다. 와인이나 위스키 등 값비싼 외국 술이 있다면 오히려 어색할 집이다.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오후 3~5시 브레이크타임)

예약 권장

주차 편리. 건물 주차장 이용

휠체어 접근성 편리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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