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를 한 명 말하라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그 이름은 쇼팽. 가장 싫어하는 작곡가를 한 명 말하라고 해도 바로 대답할 수 있다. 그 또한 쇼팽. 이유는 간단하다. 전자는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후자는 그의 음악에 아무리 사랑을 쏟아도 뜻대로 되지 않아서.
1810년부터 1849년까지 짧은 삶을 살다간 프레데리크 쇼팽은 아마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곡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으로 전달되는 감정을 글로 모두 표현해낼 수 없어서일까. 쇼팽의 곡에선 섬세하고, 고상하고, 모호하고, 동경하고 때로는 드라마틱한, 이러한 감정이 마치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안에 뒤섞여 있다. 쇼팽의 곡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도저히 손으로 잡으려 애써도 그 감정을 손에 넣기 힘든, 그런 아련한 노스탤지어(nostalgia·향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거나 그저 몇 단어로 자신의 음악을 구체화하고 정의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일례로 우리가 ‘이별곡’으로 부르는 연습곡 작품번호 10의 3번 그리고 ‘혁명’이라고 부르는 연습곡 작품번호 10의 12번은 그가 직접 부제를 붙이지 않았다.
게다가 ‘빗방울 전주곡’으로 불리며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프렐류드 작품번호 28의 15번 부제 또한 그의 의도가 아니라고 한다. 작곡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가 한 지인에게 남긴 편지에서, “내가 외출한 사이 쏟아진 폭풍우에 쇼팽이 극도로 걱정에 휩싸였고, 폭풍우가 지나가고 조용히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위로처럼 들려 음악으로 표현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상드는 이후 이어진 편지에서 “쇼팽에게 이를 몇 번이고는 물어봤지만, 본인은 절대로 하나의 현상을 복사하고 붙여넣듯이 음악으로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고 정색하면서 말했다”고 썼다.
이런 점으로 미뤄 봤을 때, 앞에서 필자가 그의 음악에 담긴 감성을 구름이라 표현했던 것처럼, 구름에 닿고 싶어 하늘 위로 올라간다 한들 그것을 잡을 수 없듯이, 아무리 작품에 담긴 감성이 좋아서 그것을 손안에 넣으려 발버둥 쳐도 결국 그의 음악은 필자의 곁에 가까워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로써 왜 그의 음악을 가장 사랑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한 답이 됐길 바란다.
최근 쇼팽 발라드 4곡 녹음 작업 프로젝트로 그의 발라드를 자주 연주했다. 20년 전 섣불리 도전했다가 쓴 실패를 맛보고 나름 그 음악에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이후 감히 다시 칠 엄두를 못 냈지만 이번 작업을 계기로 용기를 내어 악보 앞에 마주한 요즘, 악보에 담긴 무궁무진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며 매 순간 감흥을 느끼고 있다.
발라드는 원래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운율이 담긴 시 형식으로 이후 춤곡 형식으로 전해졌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당시 예술인이 동경했던 중세 기사도 문학이나 전설 등 환상을 담은 가곡으로 장르를 옮겨 왔다.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이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쇼팽은 폴란드 낭만주의 문학의 대가 아담 미키에비츠가 남긴 시를 보고 ‘발라드’라는 제목 아래 시의 운율이 담긴 피아노 독주곡을 작곡했다(물론 미키에비츠의 시가 직접적으로 그의 발라드에 투영됐는지에 대한 의견은 학자마다 분분하다). 발라드 장르가 담고 있는 역사적 사실처럼 쇼팽은 시의 운율처럼 반복되는 음의 재료에 극도로 섬세하고 예민한 음악적 감각을 농축해 놓았다.
하나의 현상 복사·붙여넣기 아닌, 한 편의 시를 담은 음악
쇼팽은 총 4곡의 발라드를 남겼다. 첫 번째 발라드는 1831년부터 35년까지 20대 초반인 그가 조국 폴란드를 떠나 합스부르크 왕궁이 있는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정주하는 큰 변화의 시기에 만들어졌다. 두 번째 발라드는 그로부터 몇 년 후 조르주 상드라는 연상의 연인을 만나 불꽃 같은 사랑을 시작하던 때, 세 번째 발라드는 1841년 그의 연인 상드가 프랑스 노앙에 가지고 있던 전원적인 별장에서 한때를 보내며 사랑이 절정에 달하고 있을 때 작곡됐다.
마지막 네 번째 발라드는 1842년 앓고있던 결핵이 이제 그를 죽음의 문턱으로 서서히 이끌기 시작했을 때 완성됐다. 특히 이 마지막 발라드는 그가 지금껏 연마한 특유의 화성 기법이나 그가 존경했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서 영향받은 대위법이 최고의 예술적 수준으로 녹아 있다. 기술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가장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곡이다. 영국의 피아니스트 존 오그돈은 이 작품을 두고 “쇼팽의 작품 중 가장 고귀하며 숭고한 힘이 들었고, 마치 12분 안에 그의 인생이 농축돼 있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발라드는 19세기 낭만주의 피아노 문헌 역사에서 최고의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음악은 당시 낭만주의 사조를 함께한 다른 작곡가들의 것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독일의 로베르트 슈만처럼 음악 안에서 소리 내 울지 않으며, 헝가리의 프란츠 리스트처럼 초인적인 기교로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지도 않는다.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저 사유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언젠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연주여행을 갔을 때, 오랜만에 만난 현지인 친구와 그림 같은 구시가지를 걸으며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폴란드는 오랜 세월 침략과 지배로 인한 슬픔이 많았다고, 그 슬픔 또한 마음 놓고 울면서 말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아래 그토록 섬세하고 예민한 이가 태어났으니 그의 음악에는 노스탤지어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쇼팽에게 물어보면 물론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상드의 편지에서 그녀가 썼듯이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고 정색하면서 말이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코르토가 연주하는 쇼팽(Cortot plays Chopin)’
알프레드 코르토
프레데리크 쇼팽의 발라드는 피아노 소리로 듣는 한 편의 시다. 필자는 20세기 초반 프랑스가 낳은 대(大)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의 음반을 추천해 본다. 비록 우리 귀에 익숙한 현대적인 해석은 아닐 수 있겠지만, 공기의 층과 같이 쌓이는 피아노 소리를 듣다 보면 마치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에서 형형색색으로 변화하는 뭉게구름이 떠오르는 것 같다. 연주를 감상하며 마음에 피어오르는 구름은 어떤 색깔의 감정일지 살펴보길 제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