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하기비스 영향으로 일본 공연 후 내한공연이 취소된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와 지휘자 로빈 티치아티. 사진 카이 비네르트
태풍 하기비스 영향으로 일본 공연 후 내한공연이 취소된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와 지휘자 로빈 티치아티. 사진 카이 비네르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국제 공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1950년대 후반 제트기 도입 이후 국제 공연 투어는 단기간 내에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진행됐다.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선언한 이후 국제 공연 투어는 모두 멈췄다.

유럽연합(EU) 대다수 회원국이 해외 입국자를 2주간 격리했고 4월 1일부터 한국도 같은 조치를 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에 사는 연주자가 내한 공연을 하려면 한국에서 2주간 격리하고 공연을 마친 다음 본국에서 2주 동안 다시 격리해야 한다. 이런 여건에서 100여 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가 움직이기는 어렵다. 단원들 숙박비만 약 1억5000만원이 증가하는 탓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투어 도중 악단원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는 것이다. 투어 인원을 전수 검사해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예정된 연주는 불가능하다. 악단원의 심리적 동요로 정상적인 투어 진행은 어려워진다. 유럽의 투어 매니지먼트사는 상당 기간 백신 개발이 어렵다고 보고 2021년 상반기까지 오케스트라 투어 업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20-2021시즌이 시작되면 주최 측은 공연을 강행하겠지만, 아티스트는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 빈발할 수 있다.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일본 NHK 심포니 음악감독직을 병행하는 지휘자 파보 예르비는 스위스와 일본 중 한 곳의 공연을 포기해야 한다. 파보의 딜레마는 서울시향과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겸직하는 오스모 벤스케에게도 해당한다.

국제 공연 계약은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발생할 경우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표준이다. 하지만 각국 정부의 자가 격리 조치를 불가항력으로 해석하는 법률상 움직임은 미비하다. 만일 오케스트라가 연주에 불참한 연주자에게 소송을 건다면 아티스트는 승소 여부와 관계없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공연 취소를 불가항력으로 볼지 여부도 현재 국내법 체계상 불분명하다. 대법원은 불가항력을 ‘채무자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그 채무자가 통상의 수단을 다하였어도 이를 예견하거나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해석한다. 감염병 확산이 공연 계약상 불가항력에 해당하는지 판시한 사례는 없다. 무역 조건 협정서에서 감염병은 보통 불가항력이지만 공연 계약에선 국가별 시각차가 있다.

정부조차도 지침이 모호하다. 2월 22일 정부는 국무총리 명의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다중 이용 시설 이용과 행사는 당분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국공립 공연장은 이를 사실상 강제력 있는 행정명령으로 수용하는 반면, 민간 공연장은 원래 일정대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국공립과 민간에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국가는 한국 이외에 드물다.

6월 초 기준, 수도권 소재 국공립 공연장은 5월 28일 정부의 ‘수도권 지역 대상 강화된 방역조치’를 받아들여 좌석의 ‘자리 띄어 앉기’를 시행했다. 반면 민간 공연장은 자율에 맡기고 있다. 만일 민간 콘서트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공연장이나 주최 측에 관람자 전원에 대한 코로나19 검진 비용의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현재의 보건 정책 기조가 이어지면 NHK 음악감독 파보 예르비는 취리히 오케스트라 지휘차 스위스에 입국할 때 자가 격리해야 한다. 사진 타카시 모치즈키
현재의 보건 정책 기조가 이어지면 NHK 음악감독 파보 예르비는 취리히 오케스트라 지휘차 스위스에 입국할 때 자가 격리해야 한다. 사진 타카시 모치즈키
‘사회적 거리 두기’식 자리 배치로 오프라인 공연을 재개한 독일 비스바덴 극장. 사진 비스바덴 극장
‘사회적 거리 두기’식 자리 배치로 오프라인 공연을 재개한 독일 비스바덴 극장. 사진 비스바덴 극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일상적 자연재해’ 보험 필요

오래전부터 예술경영학계에서는 표준 공연 계약에 감염병을 ‘일상적 자연재해(natural disaster)’로 명문화하자는 대안이 나왔다. 그러나 민간 보험사 입장에선 예상 보험 가입자 수가 워낙 적어 감염병을 일상적 피해로 간주해 상품을 개발할 여지는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리스크 측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객관적 지표에 따라 피해를 보상하는 지수형 보험(Parametric Insurance)을 국제 공연계는 대안으로 참고할 만하다. 글로벌 보험중개사 마시(Marsh)는 2018년 리스크 모델링 기업과 합작해 ‘일상적 자연재해’에 대한 보험 상품을 개발했다.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을 비롯해 감염병도 보상 대상이다.

반면 한국은 보험 가입 문화가 미진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일본발 비행기 운항이 어려워지면서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가 공연 하루 전 내한 공연을 취소했다. 정작 공연 당일 한국 날씨는 갰고, 악단도 재개된 항공편으로 내한했지만 말이다. 손실은 막대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제2의 ‘하기비스’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공연 취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시와 같은 보험 상품의 개발과 가입이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