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 마틴은 ‘DB6 마크2 볼란테’의 구동계를 전기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2018년에 발표했다. 사진 애스턴 마틴
애스턴 마틴은 ‘DB6 마크2 볼란테’의 구동계를 전기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2018년에 발표했다. 사진 애스턴 마틴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클래식카에 전기 구동계를 이식하는 실험이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재규어나 애스턴 마틴 같은 회사는 역대 손꼽히는 클래식 모델을 전기차로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클래식카가 전기차로 구동계를 바꾸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클래식카는 생산된 시대의 향수를 담은 차를 뜻한다. 또한 올드카라는 국적 불명의 용어와도 구분되며 원형이 보존된 오래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클래식카의 아름답고 멋진 디자인에 전기 구동계를 넣는 방식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양산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시장성과 기술적인 문제로 프로토타입(시험 생산 모델)이나 쇼카(전시용) 수준에서 끝난 경우가 많다. 클래식카를 전기차로 즐긴다는 것은 차를 단순한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형 보존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마니아나 수집가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불편함도 오래된 기름 냄새도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개조된 오래된 차에 전기 구동계를 넣으려는 시도는 ‘클래식카 전기차(EV) 컨버전’이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부터 국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몇 프로젝트는 여건상 취소되기도 했고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여전히 합리적이지 못한 국내 자동차 법규 문제가 가장 크지만, 프로젝트 진행자들의 접근 방식 자체가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내에서 자동차 관련 법규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면 기술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전기 구동계를 이식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경향이 많다.

2018년 영국 해리 왕자의 결혼식 피로연에 깜짝 등장했던 재규어 ‘E 타입 제로’는 재규어의 대표 클래식 모델 E 타입에 전기 구동계를 이식한 모델이다. 이미 재규어는 다양한 라인업의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전기차 레이스인 포뮬러 E에서도 활동 중이다. 재규어는 E 타입 제로를 통해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행사에서 그들이 가진 헤리티지와 최신 기술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원래 이 차는 양산 계획이 없었으나 공개 후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2019년 일반 판매에 들어간다고 재규어 측은 발표했다. 그러나 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재규어 E 타입 제로의 소식은 ‘개발 중단’ 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재규어는 E 타입 제로의 양산 계획을 처음 발표했을 때 판매 조건에 대해 ‘재규어 E 타입을 소유한 소비자의 차를 의뢰받아 내연기관을 제거하고 전기 구동계를 올리는 방식’이라고 명시했다. 재규어 E 타입 제로가 개발 중단된 이면에는 E 타입이 가진 향수와 역사적인 가치가 전기 구동계의 편리함보다 훨씬 크다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재규어 E 타입을 소유한 사람 중에 이 차의 구동계를 전기로 바꾸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런 문제가 개발 중단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애스턴 마틴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컨버터블 ‘DB6 마크2 볼란테’의 구동계를 전기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지난 2018년에 발표했다. 이 역시도 DB6를 가진 기존 소유자들이 대상이며 애스턴 마틴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카세트 시스템이라는 EV 제어 패키지를 개발했다. 카세트 시스템은 기존 내연기관을 대신하며 원할 경우 원래 내연기관으로 복구할 수도 있다.

애스턴 마틴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클래식 모델의 전기 구동계 컨버전이 기존 클래식카 수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소유자들과 컬렉터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클래식카 시장에서 희소가치가 높기로 유명한 DB6의 소유자 중에 선뜻 구동계를 바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8년 영국 해리 왕자의 결혼식 피로연에 깜짝 등장했던 재규어 ‘E 타입 제로’. 사진 재규어
2018년 영국 해리 왕자의 결혼식 피로연에 깜짝 등장했던 재규어 ‘E 타입 제로’. 사진 재규어
현대차는 소형차 ‘포니’를 재해석한 ‘45 EV’ 콘셉트를 발표했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소형차 ‘포니’를 재해석한 ‘45 EV’ 콘셉트를 발표했다. 사진 현대차

한국서도 클래식카 EV 개조 진행 중

한국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클래식 ‘미니’나 ‘포니 픽업’ 등 소형 보디를 가진 차에 전기 구동계를 넣는다는 계획인데, 대부분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선 한국에서 클래식카의 전기 구동계 컨버전을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각보다 많다. 일단 클래식카라 불릴 만한 변변한 모델이 없다. 클래식카로 불리기 위해선 최소 1975년 이전에 생산된 차라야 한다. 검증된 기술로 만들어진 자동차용 전기 구동계를 제작하는 곳도 찾기 어렵다. 전기 구동계에 대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터를 이용한 전기 구동계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안전성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국내에서 오래된 모델이든 최신 모델이든 내연 기관을 제거하고 전기 구동계로 개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동차 업체에서 판매하는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전기차는 일반 자동차와 똑같은 형식 승인 과정과 안전도 테스트를 거쳐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는 대량 생산 중심의 대규모 완성차 업체를 제외하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기존 차체에 구동계만 바꾸는 것은 가능한데, 국내 자동차 관리법상 이때는 구조변경이 가능한 튜닝에 해당한다. 관련 규정은 국가법령정보 행정규정에서 찾을 수 있으며 자동차 튜닝에 관한 규정 제3장에 전기자동차의 튜닝 항목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면 번호판을 달기 위한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 역시 매우 복잡하다. 여기에는 안전도와 안정성 테스트도 포함되는데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그다지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멋과 낭만이 있는 클래식카를 전기 구동계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매우 회의적이다. 물론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자신들의 헤리티지와 최신 기술을 배합해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현대차도 지난해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를 재해석한 ‘45 EV’ 콘셉트를 발표하며 2021년쯤 양산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45 EV도 과거 모델에서 디자인만 차용했을 뿐 차체 크기도 커지고 45년 전 포니가 처음 나왔을 때의 시대상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디자인 빼고는 전혀 없어 클래식 전기차라고는 볼 수 없다.

황욱익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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