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날치’ 프로필 사진, ‘추다혜차지스’ 앨범 뒷면. 사진 잔파·동양표준음악사
왼쪽부터 ‘이날치’ 프로필 사진, ‘추다혜차지스’ 앨범 뒷면. 사진 잔파·동양표준음악사

최근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작지만 뚜렷한 흐름이 있다.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융합이다. 한때 유행했던 퓨전 국악처럼 어설픈 물리적 결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융합, 즉 화학적 결합이다. 서구 록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국악 기반 록밴드 ‘잠비나이’와 거문고 명인 허윤정이 밴드 사운드와 함께한 ‘블랙스트링’이 대표적이다. 영화 ‘기생충’의 음악 감독 정재일과 소리꾼 한승석이 만든 명반 ‘바리abandoned’와 ‘끝내 바다에’도 좋은 예다. 이 흐름에 또 하나의 물결이 일었다.

시작은 ‘씽씽’이다. 경기민요 전승자인 이희문과 영화·무용·연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 감독으로 활동해온 장영규를 중심으로 2014년 결성됐던 이 팀은 미국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2017년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인기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출연하며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사시랭이소리’를 비롯한 민요를 레게와 펑크(funk)로 편곡해서 불렀다. 이희문, 추다혜, 신승택 등 세 명의 소리꾼은 한복도, 양복도 아닌 드랙 퀸(여장한 남성) 스타일의 옷과 스타일로 경기민요를 불렀다. 음악적, 청각적 쇼크였다. 이후 이들의 공연은 ‘국악’이나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보다 새로운 트렌드를 좇는 이들이 매진시켰다. 신드롬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들썩거림은 오래가지 못하고 소멸했다. 2018년 10월 해체했다. 이렇다 할 정규 앨범을 남기지도 않았다. 피지 못한 꽃봉오리로 끝났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그 뿌리가 다른 꽃을 피웠다. 음악 감독 장영규가 다른 소리꾼, 연주자들과 뜻을 모은 ‘이날치’의 정규앨범 ‘수궁가’가 나왔다. 철종과 고종대에 활동했던, 새소리를 냈더니 진짜 새들이 몰려왔다는 판소리 명창의 이름에서 팀명을 따왔다. 멤버 구성이 파격적이다. 일반적인 밴드와 달리 기타와 키보드가 없다. 대신 두 명의 베이시스트(장영규, 정중엽)와 드러머(이철희)로 이뤄졌다. 판소리가 북이 만들어내는 장단과 소리로만 이뤄졌다는 점에서 착안, 멜로디 악기를 뺐다. 이들이 만드는 리듬 위에 여자 셋, 남자 하나로 구성된 판소리 명인들이 내지르고 휘몰아치는 소리가 있다. 2019년 초 서울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데뷔 공연을 하자마자 조금씩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 9월 네이버 라이브 클립 ‘온 스테이지’로 이날치라는 이름의 동영상을 올렸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한 ‘범내려온다’의 라이브였다. 이보다 더 높은 페이지 뷰를 기록한 영상들은 모두 기존의 팬덤을 바탕으로 했지만, 싱글 하나 낸 적 없는 팀이 이런 화제를 모은 적은 없었다. 조선 시대 명창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입소문’을 탔다. 만약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그 입소문이 오프라인에서 폭발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기대와 함께 발매된 이날치의 데뷔 앨범 ‘수궁가’는 우리가 전에 들었던 것들을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낸다. 낯설되 친근하다. 참신하되 본능적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를 이날치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두 대의 베이스는 양쪽 귀에 멈춤 없는 리듬을 쏟아내고, 드럼은 디스코와 펑크, 레게와 사이키델릭을 오간다. 고고장 시절부터 홍대 댄스 클럽에 이르는 현대 청춘의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진양조장단보다 느리고 휘모리장단보다 빠른, 이 그루브를 타고 흐르는 네 명의 목소리는 여기에 흥과 난장을 더한다.

화성 없는 판소리에서 화성을 느끼게 하고, 랩의 속도감을 타령으로 전이시킨다. 그래서 ‘수궁가’는 그루브와 흥이 하나가 되고, 랩과 타령의 경계가 무너지며, 전통과 현대의 구분이 사라지는, 국적을 초월한 본질을 제시한다. 이들을 ‘인디’나 ‘국악’이라는 프레임으로 묶을 수 없는 이유다. 이날치가 스스로 ‘대안 음악’이라 불러 달라는 것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도시에서 나고 자란 힙스터부터 농촌 마을 잔치를 경험한 세대가 동시에 몸을 흔들 수 있는 밴드가 어디 있을까. 나는 이날치를 제외한 다른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겠다. ‘수궁가’는 오직 한국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힙합이자 록이며 디스코다.


접신과 트랜스를 융합한 ‘추다혜차지스’

당산나무 조각으로 만든 장식을 머리에 쓴 여인, ‘씽씽’의 히로인이었으며 서도민요 전수자인 추다혜다. 2018년 가을 밴드가 깨진 후 제주도로 갔다. 제주는 무속의 섬이다. 섬 고유의 설화와 신화가 많다. 생활 풍습조차 설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섬에서, 추다혜는 영등굿을 배웠다. 바다와 바람의 신인 영등 할망(할멈)에게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굿이다. 제주의 굿 문화를 대표한다. 전수한 서도민요와 영등굿을 바탕으로 새로운 프로젝트, ‘추다혜차지스’를 시작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멤버들과 함께 1년간의 작업 끝에 나온 첫 앨범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를 냈다.

한국 대중음악의 변방에서도 존재가 희미했던 무가를 전면에 내세운 앨범이다. 샤먼의 음기와 양기가 가득하다. 이날치의 ‘수궁가’가 인간계에서 벌어지는 축제라면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영적 한풀이와 씻김의 현장이다. ‘수궁가’가 소리꾼들과 밴드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흥의 탑이라면 이 앨범은 추다혜가 이끌어가는 굿을 밴드가 뒷받침하며 오르는 기원과 제의의 계단이다. 그 계단 끝에는 신명의 춤이 기다린다. 여섯 번째 곡인 ‘리추얼 댄스’는 그 정점이다. 펑크가 무가와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이 곡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익숙한 어깨춤에 양팔까지 덩실거리게 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접신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전 세계 샤머니즘의 공통인 접신 후의 황홀경, 즉 트랜스(trance)가 펼쳐지는 것이다. 민속사회에서 샤먼의 의식이 만들어낸 트랜스는 종교의 제의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록 밴드와 현대의 디제이에 의해 진화해왔다. 추구하는 본질은 같았다. 육체적 쾌락 이후의 무아지경이었다.

‘추다혜차지스’는 무가를 바탕으로 무속과 종교, 밴드와 디제이의 상징적 단계인 이 트랜스를 다른 방식으로, 더욱 본질적인 형태로 재창조한다. 굿에 숨어있던 힘을 나비의 날갯짓처럼 알린다. 이 또한 한국에서만 가능함은 물론이다. 모든 문화는 충돌과 융합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1+1=2라는 등식은 문화에서만큼은 반드시 성립하는 게 아니다. 하나에 하나가 더해지면 새로운 하나가 될 수도 있는 게 바로 문화다. 이 공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더해지고 합쳐지는 요소들을 동등하게 인식해야 한다. 우열을 정하면 어설픈 혼종만 나온다. 지난 시기의 퓨전 국악이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이날치’와 ‘추다혜차지스’는 전통음악과 서구 대중음악을 동등한 음악으로 바라본다.  차이에서도 같음을 찾아 어우른다. 구동존이(求同存異·공통점을 구하고 차이점은 놔둔다)에서 구동화이(求同化異·이견이 있는 분야까지 공감대를 형성한다)의 단계로 나아간다. 이들의 성과는 전통음악의 전유물도, 대중음악의 전유물도 아니다. 한국 음악의 진화이자, 세계 음악의 새순이다. 음악이 짓는 속(俗)과 영(靈)의 새 표정이다. 글로컬이라는 화두에 대한 음악의 대답이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 및 자문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