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 있는 아귀찜 골목. 사진 이우석
마산에 있는 아귀찜 골목. 사진 이우석

“맛이 좋다.” 어느 말보다 반갑다. 살맛 난다, 죽을 맛이다. 결국 그렇게 ‘맛’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때론 여행도 그렇다.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에, 주야장천 쏟아붓는 장맛비에도 감히 어디 한번 떠나보려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결국 먹거리다. 먹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 딱 좋은 계절이 요즘이다. 꽃놀이도 피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마산이 좋다. 바닷가 푸근한 도시가 다양한 맛을 품었다. 사실은 창원이다. 마·창·진(마산·창원·진해)이 통합됐기 때문이다. 굳이 마산을 꼽냐 하면 남해안 최대 어시장이던 마산 어시장(마산수산시장)이 있어서다. 조창이 생긴 조선 후기 15대 어시장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남해를 대표하는 어시장으로 성장한 곳이다.

인근은 물론이며 경남 내륙 심심산골에서도 며칠을 걸어 제사용 음식을 사러 왔다. 여기서 마산의 수많은 ‘맛’이 추출된다. 식자재를 값싸게 구할 수 있으니 인심도 후했다. 섬유 제조 회사인 한일합섬 등에 다니는 근로자가 많이 사는 산업도시, 유학하는 학생이 많은 교육도시가 돼 이들을 상대로 한 값싸고 푸짐한 식당들까지 생겨났다. 마산 창동 거리를 걸어보면 대번에 느낀다. 뜬금없이 허기가 지면 아무 골목이나 들어서면 된다. 노포가 많은 까닭이다.

창동 신라초밥은 1977년에 문을 열었다. 세련된 강남 ‘오마카세(お任せ·주방장에게 맡긴다는 뜻)’ 일식집이 아니다. 옛날식 초밥집 분위기 그대로다. 정성껏 깔끔하게 빚어내는 초밥은 이미 일본의 ‘스시’가 아니다. 우리 입맛이 됐다. 김치로 싼 김치초밥이 이 집의 간판 메뉴다.

건너편에는 돌냄비에 끓여주는 ‘돌우동’과 메밀국수로 유명한 만미정이 있다. 허름한 분식점 분위기지만 엄연한 노포의 기품이 서려 있다. 보글보글 끓는 돌우동은 시원한 국물에 쫄깃한 면, 그리고 쫀득한 어묵이 들어 맛있기도 하거니와 꽤 든든하다. 시원한 판 메밀로 나오는 메밀국수 역시 진한 육수 맛이 일품이다. 냉모밀 받침 발이 대나무가 아닌 플라스틱이라 어쩐지 정겹다.

1971년 창업했다는 창동복희집 떡볶이도 오랜 시간 지역민의 입맛을 사로잡은 곳이다. 쫄깃하고 달콤한 쌀떡볶이는 맨입에도 짝짝 붙는다. 간 얼음 위에 오직 팥만 얹은 빙수는 정직해 보인다. 인절미도 미숫가루도 연유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정성 들여 갈아낸 팥만이 ‘내가 빙수요’ 하고 있다. 과연 단순함 속에 깊은 매력이 깃든다.

빵집 노포로는 1959년에 창업한 고려당이 있다. 전국에 빵 투어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는 집이다. 고려당 인근 부림시장에는 6·25 떡볶이가 있다. 노점으로 출발해 오랜 세월을 시민과 함께한 집이다. 노점 시절 다들 좌판이나 신문지를 깔고 떡볶이를 먹었는데 그 모습이 딱 피난민 같다고 해서 6·25 떡볶이란 이름이 붙었다.

창동에서 오동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엔 통술집이, 어시장 쪽으론 복국집이 가득하다. 가운데는 역시 아귀찜 골목이 자릴 지키고 섰다. 마산 통술집은 통영 닷지집, 진주 실비집, 전주 막걸릿집처럼 술만 주문하면 안주를 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도 아니고 관광객들이 몰려와 안주만 바라니, 지금은 대부분 ‘한 상에 얼마’씩으로 영업한다.

오동동 정아통술은 솜씨 좋은 주인이 차리는 푸짐하고 맛깔나는 음식으로 유명한 집이다. 다양하고 어느 것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음식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지니 끼니를 겸해 술 한잔 맛보기에 딱이다. 모든 통술집이 그렇듯 메뉴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대구볼살 등 생선구이부터 전복과 소라, 산낙지, 가리비, 석화, 해파리냉채, 대하구이, 오만디(미더덕과 비슷한 척삭동물), 장조림, 가오리찜 등에다 심지어 즉석에서 말아 나오는 충무김밥까지 든든하게 차렸다. 통술상이 아니라 잔칫상이래도 손색없다.


신라초밥의 김치로 싼 김치초밥. 사진 이우석
신라초밥의 김치로 싼 김치초밥. 사진 이우석
오동동할매아구찜의 아귀찜. 사진 이우석
오동동할매아구찜의 아귀찜. 사진 이우석
거북집의 도다리쑥국. 사진 이우석
거북집의 도다리쑥국. 사진 이우석

마산 하면 아귀찜…식당마다 특색 있어

역시 마산은 아귀찜이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아귀찜집 간판에는 보통 ‘마산’을 쓴다. 사실 마산 뒤에는 ‘아구찜’이라 붙인다. 아귀찜 골목 식당마다 각각 특색이 있으니 구수한 맛, 칼칼한 맛, 매콤한 맛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아귀찜뿐 아니라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의 아귀탕과 돼지고기와는 또 다른 수육 맛을 느낄 수 있는 아귀 수육도 별미다. 생아귀와 건아귀 두 가지 종류의 맛이 있으며 좀 더 고급스러운 생아귀찜을 주로 취급하는 다정식당은 아귀 수육과 찌개를 잘하는 집. 큼지막한 간을 비롯해 내장과 쫀득한 껍질이 곁들여진 수육이 특히 맛 좋다. 오동동할매아구찜은 명불허전, 굳건히 아성을 지키고 있으며 옛날우정아구찜, 오동동진짜초가집원조아구찜, 마산아구찜 등도 맛집으로 유명하다.

통술집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면 당연히 해장은 복국이다. 마산만에 복어가 많이 난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복국집이 생겨났다. 남성식당은 3대째 영업하는 집이다. 복국거리 광포복국집은 밀복, 참복, 까치복, 은복 등 다양한 복어로 국과 매운탕을 끓여낸다. 보통 맑은탕으로 즐기지만 화끈한 매운탕도 이열치열로 괜찮다. 신선한 횟감도 많지만 생선국 식사도 별미다.

어시장 ‘거북집’은 생선으로 끓여낸 미역국이나 맑은국, 생선구이 등을 잘하는 집이다. 미역 등 해초를 넣고 끓인 생선국에는 바다가 들었다. 그것도 물 맑은 남해가 한가득 들었다.

바다의 맛을 실컷 보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든든하다. 내륙도시에서 살아온 이들에겐 시원한 바닷바람을 배 속에 단단히 담아준다. 다음 여행 짐을 쌀 때까지 꺼지지 않을 청량한 바람이다.


▒ 이우석
놀고먹기 연구소 대표,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여행수첩

둘러볼 만한 곳 마산에는 돝섬과 저도(猪島) 등 돼지 이름을 가진 두 섬이 있다. 돝섬의 돝은 도야지의 ‘도’에서 유래했다. 윷놀이의 그 ‘도’다. 터미널에서 배로 불과 10분, 시내에서도 지척이다. 이은상의 노래 ‘가고파’ 배경이 된 곳으로 지금은 해상 시민공원이다. 아름다운 조각과 시비 등이 있어 한 바퀴 산책 코스로 좋다.

구산면 저도(猪島) 역시 돼지가 누운 형상이란다. 연륙교로 이어져 편히 갈 수 있다. 저도 해안일주 트레일 코스 ‘비치로드’가 걷기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윤슬을 눈에 담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코스에 따라 약 1~3시간. 영화 속 ‘콰이강의 다리’와 꼭 닮은 저도 연륙교는 바닥에 강화유리를 설치해 스카이워크로 인기를 끌고 있다.